[카페 2030] ‘남 탓’하는 정일영 교수를 응원함

이해인 기자 2026. 7. 2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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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시간강사 정일영씨가 파리 실전 여행 강의를 하고 있다. 정씨는 정년 퇴직을 한 달 앞두고 지난달 교수로 임용됐다. /유튜브 캡처

몇 해 전 유튜브에서 나이 지긋한 프랑스어 강사 정일영씨의 여행 강의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 강사”라고 소개한 그는 진지한 얼굴로 실전(?) 여행 꿀팁을 쏟아냈다. 파리 식당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땐 일단 “빠뜨롱(Patron·사장) 나오라”고 소리를 친다. 말이 안 통하면 한국말로 더 크게 외친다. 단 무슨 일이 있어도 여권만큼은 절대로 뺏겨선 안 된다. 강단에 서신다는 분이 늘어놓는 황당한 조언에 헛웃음이 났다. 그가 나온 영상은 누적 조회수 수천만을 기록했다.

최근 이 강사의 반가운 소식이 다시 들렸다. 스스로를 ‘교수가 되지 못한 이무기’라 칭해왔던 그가 정년 퇴임 한 달을 앞두고 초빙교수로 임용된 것이다. 그는 “끝까지 버티면 길이 열리긴 열린다”며 “승리한 놈이 버티는 게 아니다. 버티는 놈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무기가 마침내 포효하는 것 같았다.

그가 겪어온 30년의 시간 강사의 삶은 눈물 겹다 못해 처절하다. 아버지 권유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박사학위를 따고 귀국했지만 그를 위한 교수 자리는 없었다. 제자들의 취업을 돕겠다며 기업을 찾아다녔지만 교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별다른 피드백을 얻지 못했다. 교수 임용 면접에서는 매번 떨어졌다. 사정이 안 좋을 때는 한 달 15만원을 벌었다.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50대를 꼽은 그는 “돈이 없으면 정말 외로운 나이”라며 잘못된 선택을 고민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인생에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느낄 때 그가 택한 생존법은 ‘남 탓’이었다. 그도 처음에는 모든 실패를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럴수록 무너지는 건 자신이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들이 많다. 그게 세상”이라며 “그래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했다. 그 때부터는 ‘남 탓’을 했다.

그의 ‘남 탓’론이 설득력을 얻는 건 그가 치열하게 쳐온 발버둥 때문일 것이다. 시간강사 월급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던 그는 EBS 강사에 도전했다. 면접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으로 오히려 타대학 출강이 제한됐을 때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50대에 펴낸 책만 40여권. 자존심을 접고 사설 학원에서도 강의했다. 어려울 때마다 ‘남 탓’을 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해왔던 것이다.

65세 시간강사의 30년 만의 교수 임용 소식에 오히려 2030이 더 열광했다. “이게 인생이지”, “이무기의 승천 스토리”라는 응원이 줄을 잇는다. 젊은 세대가 그에게 환호하는 건 지금 당장은 되는 일이 없어도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스스로를 응원하는 일일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늦더라도 기회는 온다는 정의에 대한 작은 기도이기도 하다. 65세 초빙교수 정일영씨와 그를 따라 ‘남 탓’하며 자기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2030을 함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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