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일리 있다” 했는데…채용공고 92%는 아직도 ‘깜깜이 급여’[나유정]

김용훈 2026. 7. 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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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코리아 공고 103건 분석…급여 공개는 8건뿐
국회 대안서 임금공개 의무화 빠져
정부 “필요성 공감, 제도 설계는 숙제”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챗GPT를 활용해 제작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수많은 채용공고에서 임금 항목이 ‘회사 내규에 따름’, ‘면접 후 협의’ 등으로 표기돼 지원자들이 쉽게 알 수 없는 구조입니다.”

지난 3월 이재명 대통령 주재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발언자로 나선 국제의료재단노조 한다스리 위원장은 “이 같은 정보 비공개는 청년의 저임금 고착화로 이어진다”며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법 개정을 통해 채용공고에 임금을 의무적으로 명시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도 이에 대해 “일리 있는 말씀”이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채용시장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채용공고 103건 중 급여 공개는 8건뿐

23일 헤럴드경제가 잡코리아 신입·인턴 채용관에서 진행 중인 채용공고 103건(21일 기준)을 전수 분석한 결과, 연봉이나 월급을 숫자로 제시한 공고는 8건(7.8%)에 그쳤다. 교보증권(인턴), 코미코(KoMiCo), 롯데오토케어, 조선내화, 이랜드파크, 동아쏘시오그룹, 피에프디 등 민간기업 7곳이 월급 또는 연봉을 공개했고, 한국수자원공사 자회사인 케이워터기술도 연봉 범위를 명시했다.

반면 나머지 95건(92.2%)은 ‘회사 내규에 따름’, ‘면접 후 협의’ 등으로 급여를 공개하지 않았다.

공공부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잡코리아에 게시된 ‘(재)경기도일자리재단 경기청년 일자리 매치업 플러스 상시 채용공고’ 역시 급여를 ‘회사 내규에 따름’으로만 안내했다. 민간기업은 물론 일부 공공기관까지 임금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관행이 채용시장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청년 고용 상황이 악화하면서 ‘깜깜이 채용’에 대한 문제 의식도 커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6월 15~29세 청년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9만7000명 감소해 44개월 연속 줄었다. 청년 고용률은 43.9%로 전년보다 1.7%포인트 하락했고, 청년 실업률은 7.0%로 0.9%포인트 상승했다. 취업 기회가 줄어든 상황에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정보인 임금마저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이 청년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채용 과정에서 임금 정보에 대한 수요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2024년 한 채용플랫폼이 취업준비생 10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입사 의지를 높이는 요인으로 ‘명확하고 자세한 채용공고’(56%)가 가장 많이 꼽혔다. 기업 지원 시 가장 필요한 정보로는 ‘초봉 및 연봉 수준’(49%)이 1위를 차지했다. 앞서 2022년 고용노동부의 ‘공정채용법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도 국민들이 공정채용법에 담기 원하는 내용으로 ‘채용광고에 직무·근로조건 등 구체적 항목 기재’(23.7%)가 가장 높은 응답을 기록했다.

또 임금 공개가 오히려 일자리 미스매칭을 줄이고 채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근로조건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입사한 뒤 조기에 퇴사하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23년 신규 고용보험 가입자 608만3331명 가운데 54만7751명(9.0%)은 입사 후 30일 이내 퇴사했다. 또 노동부의 ‘2023년 하반기 기업 채용동향조사’에서는 매출액 500대 기업 입사자의 16.1%가 입사 후 1년 안에 회사를 떠났으며, 가장 큰 이유는 ‘더 좋은 근로조건으로 취업’이었다. 기업들도 조기 퇴사로 인한 1인당 손실비용이 2000만원 이상이라고 응답해 근로조건을 채용 단계에서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일자리 미스매칭’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회에선 채용공고의 임금 공개를 의무화하려는 입법이 추진됐지만 끝내 무산된 상황이다.

지난해 2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인자가 채용공고를 낼 때 임금 수준을 함께 기재하도록 하는 내용의 직업안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구직자가 입사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보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채용 과정의 정보 비대칭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올해 4월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가 관련 직업안정법 개정안들을 병합 심사해 마련한 ‘직업안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는 해당 조항이 반영되지 않았다.

최종 대안에는 거짓 구인광고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구인자의 신원 및 기업정보 검증, 산업재해 공표 사업장 정보의 채용공고 게재 의무화 등이 담겼지만, 채용공고에 임금 수준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규정은 제외됐다. 정작 구직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임금 정보는 기업 자율에 맡겨진 셈이다.

공고 감소 우려…공개 범위·제재 수위도 쟁점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챗GPT를 활용해 제작

정부도 임금 공개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실제 제도를 도입할 경우 기업들이 채용공고 자체를 줄이거나 공개채용을 기피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채용공고를 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면 구직자에게 돌아가는 일자리 정보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며 “구직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기업의 채용을 위축시키지 않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우선 무엇을 ‘임금’으로 공개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본급만 공개할지, 성과급과 직무수당, 복리후생을 포함한 총보수를 공개할지에 따라 구직자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의미가 달라진다. 성과급 비중이 큰 기업은 기본급만으로는 실제 보수 수준을 설명하기 어렵지만, 실적에 따라 달라지는 성과급까지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용공고에 어떤 방식으로 임금을 표시할지도 쉽지 않은 문제다. 같은 채용공고라도 지원자의 경력과 직무, 자격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단일 금액을 적을지, 연봉 범위를 제시할지, 최소 보장 수준만 공개할지 등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오히려 분쟁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업 규모별 여건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대기업은 직무별 임금체계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상당수 중소기업은 지원자의 역량과 협상 결과에 따라 처우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획일적인 공개 기준을 적용하면 중소기업의 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규 입사자의 처우가 공개되면서 기존 직원들과의 임금 격차가 드러나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정부가 검토하는 부분이다.

노동부는 임금 공개를 하지 않을 경우 ‘제재 수단’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회사 내규에 따름’이나 ‘면접 후 협의’처럼 사실상 임금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를 위반으로 볼 것인지, 단순 실수와 고의적인 허위·누락 공고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도 세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과태료나 과징금 등 제재 수준과 적용 범위까지 함께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해외에서는 이미 임금 공개를 의무화한 사례도 있다. 일본은 직업안정법에 따라 구인자가 채용공고를 낼 때 노동시간 뿐 아니라 ‘임금’도 주요 근로조건으로 명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구직자가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핵심 근로조건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국내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고용노동부에 채용공고 임금조건 공개 의무화를 검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나유정]은 ‘나에게 유용한 정책 정보’를 쉽게 풀어 소개하는 연재물입니다. 정책이 제안된 배경과 변화의 의미를 짚고, 누가·언제·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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