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경상흑자 36조원에도 엔화 가치 40년 만에 최저… 日 ‘장부상 흑자’ 함정
달러 쥐고 안 푸는 日 기업들
금리 격차가 만든 ‘달러 선호’
일본이 지난해 해외 공장과 주식·채권으로 41조5903억엔(약 378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순소득을 벌어 들였지만, 엔화 가치는 21일 기준 달러당 163.24엔까지 밀리며 약 4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환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이 해외에서 번 달러를 본국으로 가져와 엔화로 바꾸는 흐름이 가늘어진 탓에, 많이 버는 나라의 통화는 강해진다는 오랜 공식이 일본에서 더는 통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23일 오후 1시 기준 엔화는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62엔대 중반에 머무르고 있다. 21일 40년 만에 최고치까지 오른 (엔화 가치 약세)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22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소폭 반등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1986년 이후 가장 낮은 구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23일 장 중 한화 대비 엔화 환율 100엔당 899원 안팎으로, 900원 선까지 무너졌다. 중동발 유가 상승과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의 재정 확대 우려가 엔화를 끌어내리는 가운데, 일본 국제수지 안에서도 엔화를 떠받칠 자금줄이 점차 말라가는 추세다.

엔화 가치는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려는 주문이 많아야 오른다. 가령 일본 자동차회사가 미국에서 차를 팔아 100달러를 벌었다고 가정할 경우, 이 돈을 일본으로 가져와 직원 월급과 세금을 내려면 100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야 한다. 이때 외환시장에는 엔화를 찾는 주문이 생기면서 엔화 가치가 오른다. 반대로 일본 자동차회사의 미국 법인이나 자회사가 이 돈을 현지 공장 증설에 그대로 쓰면, 회사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같아도 엔화를 사는 거래는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 9일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최신 국제수지를 보면 일본은 지난 5월 한달 동안 해외와 거래해 3조9683억엔(약 36조원)을 남겼다. 한 나라가 해외에서 번 돈과 쓴 돈을 모두 합친 성적표를 경상수지라고 부르는데, 5월 경상수지에서 일본은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해 남긴 돈이 사실상 없었다. 5월 기준 상품 거래는 69억엔 흑자, 여행·운송·디지털 서비스 거래는 103억엔 적자로, 둘을 합치면 34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대신 해외 공장과 외국 주식·채권에서 받은 이익·배당·이자가 4조2756억엔에 달해 전체 흑자 107.7%를 책임졌다. 일본이 5월에 남긴 4조엔 가까운 이득은 물건을 팔아 번 수출대금이 아니라, 이미 해외에 쌓아둔 자산에서 나온 수익이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해외에 쌓아둔 돈은 이전과 달리 절반은 일본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일본 공장에서 만든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수출하고, 받은 달러를 일본으로 가져와 임금과 부품값, 세금을 냈다. 지금은 북미·유럽·아시아 현지법인이 직접 만들어 현지에서 팔고, 임금과 증설비도 현지 통화로 낸다. 해외 기업 인수와 자원·금융 투자가 늘면서 번 돈을 해외에서 다시 굴릴 곳도 많아졌다. 일본 재무성 집계를 보면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해외 자회사 소득 26조585억엔 중 11조3425억엔(43.5%)이 일본으로 투입되지 않고 현지에 남았다.

세계 기준에 비해 유난히 낮은 일본 금리도 자금 유입을 막는 장애물이다. 현행 일본 기준금리는 1%지만, 미국은 3.50~3.75%에 달한다. 달러로 가만히 두기만 해도 기대할 수 있는 이자 소득이 훨씬 많다. 미나미 다케시 노린추킨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에 “해외 투자가 국내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만큼 기업이 돈을 본국으로 가져올 이유가 적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환율 시장에 개입하며 엔화 가치 방어에 나서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은 4월 28일부터 5월 27일까지 월간 기준 사상 최대인 11조7349억엔(약 735억달러)을 들여 엔화를 사들였다. 그러나 엔화 가치는 정부 개입 전보다 날로 더 약해지고 있다.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은 22일 “필요가 생기면 언제든 적절하고 과감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정부는 연기금과 가계에 일본 자산 투자를 늘리라고 독려했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를 인용해 “일본은행 안에서도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플레이션이 촉발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며 “시장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상을 배제하지 않는 기류가 있다”고 전했다. 다나카 준페이 픽테자산운용 일본법인 투자전략책임자는 “재정 확대 우려가 커지면서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엔화 하락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늘고 있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李가 겨눈 초고가 ‘똘똘한 한 채’… “보유세 올려도 수요 안 줄어”
- [르포] “고출력 마이크로파로 드론 50대 무력화”… 英 판버러 에어쇼에 등장한 미래 전쟁 첨단
- 美 함정 건조 따낸 한화 필리조선소… 전투함까지는 과제 산적
- [시승기] 극도의 안락함에 달리기 성능까지… 미국 럭셔리 SUV 링컨 네비게이터
- [주간증시전망] 美 빅테크 이어 SK하이닉스도 실적 발표… FOMC 개최
- 29일 실적 발표하는 SK하이닉스…2분기 영업익 64조원 전망 솔솔
- “지휘관의 AI 문해력 필수… 공군 주도 우주軍 추진 바람직”
- 보안 좋고 연동 쉽고… 카드업계, MS 코파일럿 AI 도입 속도
- [경제 포커스] SK하이닉스 ADR 상장 계기로 다른 길 가는 원화-엔화
- 의대 입학시험 문제 유출에 들끓는 인도 Z세대… 모디 장기 집권 흔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