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1주년 기획] AI가 바꾸는 산업지도…대구 제조업 대전환은 시작됐나
대구 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을까

과거 제조업 경쟁력은 값싼 노동력과 생산량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제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 로봇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공장의 설비는 사람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생산량을 조절하며, 불량을 예측한다. 산업혁명의 중심축이 '기계'에서 'AI'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주요 강국들은 이미 AI를 국가 산업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미국은 AI 기반 제조 혁신을 통해 리쇼어링(생산기지 국내 복귀)을 추진하고 있으며,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AI 중심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AI와 로봇을 결합한 차세대 생산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AI 전환(AX)을 본격화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시대를 겨냥해 반도체와 첨단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있고, SK그룹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축으로 사업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를 넘어 AI 기반 스마트팩토리와 휴머노이드 로봇을 미래 경쟁력으로 키우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들도 AI와 로봇 자동화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 제조업이 사람의 숙련도와 설비 규모, 생산량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AI와 로봇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이에 따라 대구도 거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섬유와 기계, 자동차부품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대구 제조업은 저성장과 고령화, 인력난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중국의 기술 추격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까지 겹치면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섬유 의존 벗어나 산업 다변화 통해 돌파구 마련
불과 40~50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식어는 '대한민국 섬유산업의 수도'였다.
산업화 초기 대구는 면직물과 직물, 염색가공 산업을 기반으로 국내 섬유산업을 이끌었다. 서문시장 등을 중심으로 원사와 직물이 거래됐고, 염색공단에서는 하루 종일 기계가 멈추지 않았다. 당시 섬유산업은 지역 경제와 고용을 책임지는 핵심 산업이었고, 수출 확대를 통해 국가 경제 성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워 세계 섬유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고, 노동집약적인 산업구조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대구가 선택한 해법은 산업 다변화였다. 성서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기계·금속·자동차부품 기업들이 잇따라 입주했고, 정밀기계와 안경산업 등 새로운 제조업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기존 섬유산업에서 축적한 생산기술과 숙련 인력을 활용해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구테크노폴리스와 국가산업단지 조성 등 대규모 산업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로봇, 자동차부품, 메카트로닉스 등이 지역 제조업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혔다. 또한,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지식기반 산업, 첨단 과학 분야 연구를 목표로 DGIST 등이 설립돠면서 연구개발(R&D) 기능도 갖추게 됐다.
2010년 이후 대구는 미래산업 육성에 더욱 속도를 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유치 이후 10여 년간 로봇 산업에 집중 투자를 펼친 대구는 250여 개의 로봇 기업들이 둥지를 틀면서 전국 로봇 매출의 9% 가량을 책임지는 국내 로봇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했다.

◆3대 메가프로젝트 배제…알맹이 빠진 대구 AI·로봇 산업
인공지능(AI)이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공장은 더 이상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하고 스스로 최적의 생산 공정을 설계하는 'AI 공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제조 강국들은 AI를 앞세워 국가 산업 경쟁력을 재편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도 AI를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초대형 투자에 나섰다. 약 4천700조 원이 투입되는 '3대 AI 메가프로젝트' 추진에 나선 것이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분야에 정부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메가프로젝트다. 대구 역시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발표에 귀를 기울였지만, 국내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고도 대형 발주 및 채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외면받았다.

◆대구만의 미래산업 육성…'AI 전환' 새로운 숙제
전국 최고 수준의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도 정부의 '3대 AI 메가프로젝트'에서 배제된 대구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갈림길에 서있다.
오랜 기간 축적한 제조 기반과 로봇 산업 인프라는 다른 지역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자산이다. 대구시도 정부의 '3대 AI 메가프로젝트' 발표 직후 대책회의를 열고 "대기업 유치에 목매기보다 자동차부품 집적지라는 강점을 살려 정공법으로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존의 로봇 산업을 전략 수정 없이 강점 확대에 집중하고, 국가로봇테스트필드와 휴머노이드 국가첨단특화단지 R&D 구축 등을 골자로 한 'AI 로봇 수도' 청사진을 올 연말쯤 공개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대구의 성장을 이끌어온 달성1차 일반산업단지를 인공지능(AI)과 미래모빌리티, 로봇산업이 융합된 스마트 산업단지로 재편하는 사업을 내년부터 2036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등 첨단 제조 생태계를 완성키로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와 인력 부족, 디지털 전환 속도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대구 제조업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이라고 지적했다.
최종태 대경ICT산업협회장은 "AI·로봇 공급에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구체적인 추진 절차와 투자 규모, 생산 연속성 확보, 도입 이후 운영 방식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 실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 제조업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으로 접어든 만큼 기업들이 AI 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재직자 교육부터 기획과 진단, 전문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기업 맞춤형 AX 통합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시는 지역 기업의 AI 대전환을 앞당기고 첨단 제조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난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 지역 혁신기관, 대학 등과 함께 '대구 AX 위원회'를 운영했다. 올해는 조직을 '대구 AX 창업 위원회'로 개편해 운영을 이어간다.
지역 AI 창업 생태계와 산업별 AX 수요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유망 AI 스타트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를 비롯해 로봇·제조·바이오·헬스케어 등 지역 주력산업의 AI 전환을 지원하는 실행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 회장은 "AI, 모빌리티·이차전지, 로봇·기계·금속 등 6개 분과를 중심으로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한 것은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다만 "거버넌스 구축에 그쳐서는 안 되며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구체적인 실행 사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AI 인재 확보 문제에 대해서도 산업 경쟁력과 정주 여건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대구 인구 이야기(2025년 12월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구의 청년인구(19~39세)는 55만9천16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2천77명 감소했다. 특히 전체 인구의 23.8%를 차지하는 청년층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청년 유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대구 청년 순이동은 마이너스(-) 4천673명으로 집계됐다.
최 회장은 "도시는 일할 곳과 놀 곳이 함께 있어야 젊어진다"며 기업 지원뿐 아니라 주거와 문화 등 정주환경을 개선해 양질의 일자리와 창업 생태계를 함께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청년정책에 더해 지역에 머무르며 일하고 창업하는 청년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대구 청년시대 마일리지' 제도와 같은 청년만을 위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권영진 기자 b0127kyj@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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