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9 수출 넥스트는?" 한화, 루마니아에서 유럽 방산 거점 만들까

신혜영 기자 2026. 7. 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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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생산 넘어 MRO까지… 루마니아에 유럽 방산 전초기지 구축
러시아 견제 핵심축 루마니아, K9 도입으로 포병 전력 현대화
K9 수출의 다음 단계… 현지화·공급망 구축으로 진화하는 K방산

최근 유럽 국가들이 역내 방산 협력을 강화하며 진입 장벽을 높이자 국내 방산기업들의 유럽 수주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가운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루마니아에 현지 생산시설을 건설하며 정면 돌파에 나섰다.

해당 시설은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조립∙통합∙MRO(유지·보수·정비) 등 장비의 전 주기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에 구축되는 루마니아 생산 거점이 장기적인 협력으로 이어져 유럽 방산 생태계에 진입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루마니아에 건설할 H-ACE Europe의 조감도.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단순 수출 넘어 현지 생산으로, K9 유럽 전초기지 조성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월 11일(현지시간) 루마니아에 지상 무기체계를 생산할 현지 공장(H-ACE Europe∙Hanwha Armoured vehicle Centre of Excellence Europe)을 착공했다고 밝혔다.

H-ACE Europe은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의 현지 생산을 위한 핵심 거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해당 시설을 통해 조립, 체계 통합, 시험, MRO를 포함한 전 주기 지원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앞서 2024년 7월 루마니아와 K9 자주포 54문, K10 탄약운반장갑차 36대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대규모 계약이었으며 H-ACE Europe 건설은 이 계약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K9 54문 가운데 18문은 한국에서 생산해 올해 안에 인도할 계획이다. 나머지 36문은 2027년 상반기부터 가동 예정인 H-ACE Europe에서 생산할 방침이다.

공장은 루마니아 듬보비차주 페트레슈티 지역에 조성되며 약 18만1055m² 규모 부지에 첨단 조립 라인과 성능∙검증 시험시설, 1751m 길이의 주행 시험로 등을 갖추게 된다.

사업은 이탈리아 상용차 업체 이베코(Iveco)와 루마니아 방산기업 프로옵티카(Pro Optica) 등 현지 방산업체들과 협력해 추진되며 30개 이상의 루마니아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지 기업들과의 원활한 협력을 위해 이미 부쿠레슈티에 사무소를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는 이곳을 유럽 방산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2025년 3월 당시 한화글로벌디펜스 CEO였던 마이클 쿨터는 루마니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현재 최우선 과제는 K9과 K10을 차질 없이 공급하는 것"이라면서도 "이미 나토와 유럽 여러 국가가 해당 장비를 운용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이곳에서 부품 생산과 MRO를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업으로 최대 2000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지 기술 인력들은 한국에서 교육을 받거나 한국 기술진으로부터 현지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현지시간)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도 니쿠쇼르 단 루마니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참여하는 루마니아 방산 사업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대통령은 해당 사업이 양국 간 경제 협력을 확대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루마니아 공장 착공식에서 개회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왜 루마니아인가? 안보와 산업 두 조건 갖춘 전략적 선택
루마니아는 이번 계약으로 K9 자주포 운용국 모임인 'K9 유저클럽'의 10번째 회원국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나토 회원국 가운데서는 6번째 운용국이다.

현재 K9을 운용하는 유럽 국가는 튀르키예,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등으로 대부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거나 동부·북부 핵심 방어축에 위치해 있다. K9의 유럽 내 운용이 북유럽 지역에서 시작해 발트해, 흑해 연안으로 확장된 점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K9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특히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는 서유럽 핵심 국가들과 달리 자국 방산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데다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한 전력 보강이 필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폴란드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동부전선 핵심 방어국으로 부상하면서 대규모 포병 전력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 K9을 선택했다.

루마니아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단순히 도입에서 그치지 않고 생산시설 구축이라는 전략을 택했다. 흑해를 끼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지정학적 긴장감이 높은 반면, 러시아와는 국경을 직접 접하지 않아 생산 거점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인접국에 비해 산업 기반과 인구·경제 규모가 큰 나토 국가라는 점에서 생산시설을 유치하기에 충분하다고 평가된다.

실제로 루마니아는 최근 해외 방산기업들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며 유럽 방산 생산 거점으로 도약하고 있다. 2022년에는 독일 라인메탈(Rheinmetall)이 부쿠레슈티 인근에 자주포 조립 시설을 설립했으며 이듬해에는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즈(Elbit Systems)가 루마니아 국영 방산기업 롬암(Romarm)과 협력해 포병 체계 생산시설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업으로 루마니아의 생산 기반이 더욱 확대되고 전력의 현대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루마니아군은 약 40문의 구형 122mm급 2S1 계열 자주포를 운용하고 있어 K9 도입 시 화력과 운용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 파급 효과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디펜스 익스프레스(Defense Express)에 따르면 루마니아 현지에서는 이번 계약 금액의 약 80%에 해당하는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단순 수출 사업이 아니라 방산 생태계 전반에 걸친 협력 사업이기 때문이다. 현지 생산, 고용 창출, 관련 산업 육성 등 현지 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현지 공장을 건설할 공장 부지 전경.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무기 수출 그 다음은… K방산, 유럽 생산망 구축 시동
K9은 운용국 수와 실적 측면에서 국내 방산 수출을 대표하는 무기체계다. 2000년 실전 배치 이후 튀르키예, 폴란드, 노르웨이, 호주 등으로 수출되며 K방산의 해외 시장 개척을 이끌었다. K10 탄약운반장갑차와 천무, 레드백 장갑차 등 후속 수출의 교두보 역할도 해왔다.

K9이 수출 교두보가 됐듯 이번 루마니아 생산시설은 유럽 방산 생태계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나토가 현지 생산과 산업 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조달 정책을 전환하는 가운데 이러한 기조에 부합하는 사례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현지 협력 기반 확보는 이미 수주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앞서 2024년 계약 당시 현지 안보·국방 분석가 알렉산드루 게오르게스쿠는 디펜스 뉴스(Defense News)를 통해 "한국 측이 루마니아 방위산업과의 산업 협력을 제안한 점이 현지 의사결정자들의 K9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루마니아 공장은 K9과 K10뿐 아니라 유럽 내 K9 운용국이 도입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산 제품의 생산과 MRO도 담당하게 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시설을 바탕으로 유럽 내 사업 기반을 확대하고 향후 보병전투차(IFV), 장거리 정밀타격체계, 무인지상차량(UGV) 등의 생산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루마니아를 유럽 방산 허브로 육성해 현지화율을 최대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번 사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면 향후 유럽·나토 사업 수주에 유리한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 생산시설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례를 제시하고 EU·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와의 신뢰관계를 입증하는 데서 오는 무게감은 현지 협력 모델의 청사진을 제안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K방산이 무기 수출을 넘어 유럽 방산 생태계 조성에 직접 참여하는 위치로 올라서면서 단기 수주 결과를 뛰어넘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이번 루마니아 공장은 현지 생산 역량을 확보하고 유럽에서 협력 기반을 마련하는 핵심 거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