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누르기 방지법', PBR 0.8배 미만이면 무조건?…정부안 달라질까
PBR 0.8배 일률 적용 신중 기류도…업종별 기준·예외 범위 관건

주가를 낮게 유지해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는 행위를 막자는 이른바 '주가누르기 방지법'의 입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다만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를 기준으로 과세 방식을 달리하는 안이 업종별 특성과 시장 변동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이달 말 내놓을 세제개편안에는 법안의 취지를 살리되 다른 적용 기준을 담을 가능성이 거론된다.시가 대신 보충평가…'주가누르기' 차단
PB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자산과 비교한 지표다. 통상 1배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보다 낮다는 의미다. PBR 0.8배는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의 80% 수준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PBR이 0.8배 미만인 상장주식에 보충적 평가방식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충적 평가방식은 시장 주가만으로 가치를 산정하지 않고 기업의 순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함께 반영해 주식 가치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현행법은 상장주식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평가 기준일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간의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한다. 상속을 앞둔 최대주주가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주가를 낮게 유지하면 세금 부담도 줄어드는 구조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개정안은 주가가 순자산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기업에 평가 하한을 두겠다는 취지다.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만으로 세금을 매기지 않고 회사가 보유한 순자산가치도 반영해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할 유인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제도 도입 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내에 과도한 현금을 쌓아두거나 계열사 간 내부거래 등을 통해 기업가치를 낮출 유인도 줄어들 수 있다."0.8배 정하면 0.81배 맞출 수도"
다만 PBR 0.8배를 일률적인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낮아 시장에서 할인받는 기업도 있어 낮은 PBR만으로 최대주주의 주가누르기 의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금융과 제조업, 건설업 등은 산업 구조와 자산 구성에 따라 PBR이 낮게 형성될 수 있다는 특성도 있다.
지난 21일 열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주가누르기방지법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PBR은 시장 평가가 반영되는 밸류에이션 지표인 만큼 변동성이 굉장히 크다"며 "토지 가격을 재평가하면 순자산이 늘어 PBR이 낮아질 수 있고 반대로 자본잠식으로 순자산이 줄면 기업가치가 개선되지 않았는데도 PBR은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기순환 업종 여부와 회계 평가 방법 등 여러 요인이 있기 때문에 최대주주의 사익 목적에 따른 주가누르기와 일반적인 저평가를 구별할 수 있는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도 획일적인 수치 적용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조진우 한국거래소 부장은 "PBR은 업종별 편차가 매우 크다"며 "업종 평균이나 업종 중간값 대비 미달한 기업 등을 기준으로 해야 정책 수용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평가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보다 PBR을 기준선 바로 위에 맞추는 새로운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PBR 0.8배 아래에서는 순자산가치를 반영하고 이를 넘으면 시가를 적용할 경우, 기업이 제도 적용을 피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주가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목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 대표는 "PBR이 0.8배가 되면 0.81배에 맞추는 일이 많이 벌어질 수 있다"며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을 29.9%나 19.9%에 맞춘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짚었다."재무곤경 기업 예외두자"…정부도 신중론
VIP자산운용은 업종별 예외를 두기보다 재무적 곤경 기업만 예외로 인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업종은 경기 사이클과 기업별 수익성, 재무구조에 따라 저평가 수준이 크게 달라지고 정책이나 기술 변화에 따라 단기간에 재평가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업종 전체를 일률적으로 제외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최근 3개 사업연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법인과 채권금융기관의 경영정상화 계획을 이행 중인 법인, 산업 구조조정 대상 업종에 해당하는 법인 등은 예외를 두는 식이다.
정부도 PBR을 일률적인 적용 기준으로 삼는 데 신중한 입장이다. 주가를 낮게 유지할 세제상 유인을 없애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PBR만으로 적용 대상을 정하면 업종별 특성과 회계상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김만기 재정경제부 재산세제과 사무관은 "제도의 취지와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PBR이 낮은 기업만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PBR도 중요한 고려 요소지만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로 봐야 한다"며 "현재 상장주식 평가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면 정상가치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14일 발표한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지나치게 저평가된 상장주식의 상속·증여세 평가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적용 대상과 평가 기준은 이달 말 발표할 세제개편안에 담길 예정이다.
백유진 (by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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