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30년을 버텨온 비결은 ‘성실’이에요”

이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6. 7. 2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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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30년 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혜연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시장에서 계속 달라지면서도 고유의 색을 잃지 않는 법을 들어보았다.

패션은 늘 변한다. 계절이 바뀌고, 유행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스타일도 쉼 없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혜연은 오히려 "유행보다 중요한 건 태도"라고 말한다. 스타일리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스타의 이미지를 만들고 브랜드의 방향을 설계하며 대한민국 패션 신(scene)의 중심을 지켜온 한혜연.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시대를 읽으면서도 자신만의 기준을 한 번도 놓지 않았다.

한혜연이 완성한 지금의 자리는 타고난 감각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성실함, 누구보다 많이 보고 배우려 했던 경험,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뛰어들었던 태도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잡지 화보에서 방송으로, 방송에서 유튜브와 숏폼으로 플랫폼이 바뀔 때마다 가장 먼저 변화를 받아들인 한혜연은 유튜브 채널 '슈스스’라는 이름으로 52만 구독자와 소통하며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사건과 코로나19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기보다 다시 몸을 움직였고, 새로운 배움과 도전을 이어가며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유행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사람을 오래 버티게 하는 힘은 결국 기본이라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온 셈이다.

인터뷰 내내 한혜연은 자신을 화려한 사람이 아닌 "그냥 성실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몸을 변화시키고 감각을 갱신하면서도 끝내 놓지 않았던 것은 유행이 아닌 태도였다. 유행보다 태도를, 감각보다 성실함을 먼저 믿어온 한혜연. 그가 30년 동안 지켜온 스타일의 본질과 지금도 변화를 멈추지 않는 이유를 들어봤다.

요즘도 계속 바쁘게 지내시나요.  

늘 바쁘긴 했는데, 요즘은 SNS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유튜브도 열심히 찍고 있고, 셀러브리티 스타일링이나 홈쇼핑, 라이브 방송까지 제가 초창기에 일할 때랑은 방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때는 매체가 정말 적었거든요. 지금은 SNS로 훨씬 많은 커머셜 활동을 하니, 저도 거기에 맞춰서 영역이 확장되고 있어요.

패션 관련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 정도 되셨다고요. 계기가 궁금해요.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그때만 해도 잡지가 여성지밖에 없던 시절이었어요. 잡지사 일을 하시던 교수님이 방학 때 촬영 현장을 체험할 기회를 주신 거예요. 거길 따라다니면서 저도 스타일링에 눈을 뜬 거죠. 저는 디자인 전공이지만, 디자인을 하면서 창조적인 결과물보다는 여러 아이템을 조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데 더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당시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이 업계에 발도 못 들였을 거예요.

‘슈스스’라는 이름으로 유명하신데, 이 이름은 어떻게 생긴 거예요.

슈스스는 '슈퍼스타를 스타일링하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뜻인데, 다들 제가 슈퍼스타라서 그렇게 부르는 줄 아시더라고요(웃음). 사실은 방송 활동을 왕성하게 할 때 어떤 PD님이 지어주신 거예요. 본명 이외에 쓰는 이름인 호(號)처럼 닉네임이 있으면 좋겠다면서요.

지금까지 현역으로 남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굉장히 보수적인 집에서 자랐고, 성실함 하나는 확실해요. 뭔가를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향이 있어요. 그게 완벽주의로 이어져서 스스로한테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편이긴 한데, 어쨌든 그 근면 성실함이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인 것 같아요. 그리고 긍정적인 편이에요. MBTI도 ENFP인데,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실행해야 직성이 풀려요. 해보고 아니면 포기하면 되니까요. 그런 추진력이 패션업계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 같아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서 방송인, 유튜버로 영역을 계속 확장해오셨어요. 

신문사에서 당시 '코디네이터’라 불리던 일을 할 때 선배들께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원고 쓰는 것까지, 원래 기자들이 해야 할 에디토리얼 작업을 다 맡기셨거든요. 그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지금은 온라인 매체가 훨씬 빠르게 퍼지는 분위기라 기획도 직접 하고, 이를 활용해서 SNS로 제품을 팔기도 하고, 전문가 입장에서 게스트로 참여도 하고 있지요. 남들이 잘 안 하려는 일이지만 저한테는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고,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것이 즐겁답니다.

개인 채널에서 여러 브랜드를 소개하시는데, 기준이 궁금해요.

광고 제안은 정말 많이 들어와요. 그런데 저와 안 어울리는 브랜드는 소개 안 해요. 제가 이 업계에 워낙 오래 있다 보니 사실 대부분 친숙한 브랜드거나 대표님들과 친분이 있어요. 하지만 정말 제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면 거의 거절하는 편이에요. 기준이라기보다 소개했을 때 활용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 직업적으로 소개할 가치가 있는지를 더 보는 것 같아요.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예전엔 잡지를 많이 봤는데, 지금은 사서 보는 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SNS를 많이 활용해요. 전시회도 자주 다니고, 책도 읽으려고 노력하고요. 또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경험하려고 해요.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의 특징이 결국 많이 입어봤다는 것이거든요. 저도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하고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가구랑 그림을 좀 파고 있어요. 현대미술이 패션만큼이나 범위가 넓어서, 젊은 작가들의 그림을 보러 다니는 게 제일 재밌어요.

진짜 스타일은 매너와 취향을 입는 것

인공지능(AI)이 스타일링 영역까지 들어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I가 할 수 없는 게 경험과 취향을 가이드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AI로 옷 조합을 물어보는 걸 좋아하는데, 답이 마음에 안 들 때가 많아요. 저는 그 사람의 상황, 취향, 느낌을 아니까 더 적재적소에 맞게 제안을 할 수 있잖아요. 그건 경험치가 쌓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많이 경험하고 실수도 해봐야 저만의 데이터가 쌓이거든요. 

이제는 인플루언서가 트렌드를 이끄는 시대가 됐어요.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온 입장에서 이런 변화가 어떻게 다가오나요. 

예전엔 한 가지가 유행하면 다들 그것만 따라서 샀어요. 그런데 지금은 각자 취향이 너무 확실해요. 인플루언서 역시 굳이 아이콘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본인만의 멋스러움과 일상, 스타일을 쉽게 보여줄 채널이 있고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아쉬운 점도 있나요. 

꼰대 같은 생각일 수도 있는데,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이제는 명확한 직업이 됐잖아요. 그래서 개인 생활이 노출되다 보니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SNS에는 보통 예쁜 모습만 올리지, 실수하거나 못생긴 모습은 잘 안 올리잖아요. 그런 걸 잘 컨트롤하지 않으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기 쉬우니 스스로 관리를 잘해야 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위기가 오잖아요. 저 역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할 틈조차 없이 머릿속이 하얗게 '블랙아웃’ 되는 시기가 있었어요.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그 시기가 저한테는 정말 길게 느껴졌어요. 공교롭게도 코로나 시기랑 겹치면서 여러 가지 힘겨운 일이 한꺼번에 왔거든요. 우울증, 공황, 갱년기까지 건강 문제도 같이 왔고요. 그런데 오히려 '뒤를 돌아보라고 주어진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뒤돌아볼 시간을 못 갖고 계속 달리기만 하잖아요. 그러다 문제가 생기는 거죠. 저는 그 시기를 빨리 인정하고, 변명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때 주변 지인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영어 선생님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아침마다 같이 1만 보씩 걸어주신 분도 있었고요. 그런 과정에서 '내가 인생을 잘못 살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회복됐어요. 스스로 다시 일어선 게 아니라, 주변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자신을 돌보기 위해 묵묵히 꾸려가는 한혜연의 소탈한 일상.
살을 갑자기 뺀 것도 화제였어요.

직업적인 이유는 아니었어요. 그냥 다 날씬하고 싶잖아요(웃음). 저는 체형을 옷으로 잘 가리는 편이라, 이전에도 주변에 제 체중을 말하면 깜짝 놀라곤 했어요. 힘들었던 일을 겪고 난 후 건강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어요.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몸도 같이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걷기 시작했어요. 매일 1만 보 이상 걷다 보니 지루해져서 조금씩 뛰기도 하고요. 새벽에 나가서 아무 소리도 안 듣고 그냥 걷는 게 저에게는 명상하는 시간 같아요. 식습관도 저한테 맞는 루틴을 찾았고요.

근면 성실함이 실제로 하루를 어떻게 채우고 있는지 궁금해요.

오후 11시에 자고 오전 6시 전에 일어나요. 날씨가 괜찮으면 아침에 걷고, 안 되면 집에서 스트레칭을 해요. 출근은 무조건 오전 9시 30분이에요. 밤엔 일을 거의 손에서 놓기 때문에, 아침에 의상 준비 등 대부분의 일을 다 하는 편이에요. 좋은 강연이나 책도 보통 아침 시간에 보고요. 골프도 사실 안 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나이 들면 안 놀아준다고 해서 시작했어요(웃음). 러닝 크루 활동도 하고 있고요.

계속 다양한 걸 시도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할머니께서 유치원을 오래 하셨는데, 제가 사춘기 때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하루에 딱 하나만 배운다고 생각하고 가자"고 하셨어요. 그게 저에겐 인생 모토가 됐고, 새로운 것을 배우러 다니는 걸 좋아해요. 꽃꽂이도 하고, 클래식 음악 감상법을 가이드해주는 수업도 듣고, 요리도 배우러 다니고요. 저의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에요.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후배들이 갖춰야 할 무기가 있다면요.

요즘에는 AI 툴을 잘 다루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2외국어나 기본적인 영어 실력이 있으면 어느 직업군에 가도 어필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근면 성실함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마음과 몸이 건강해야 오래 일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마시고요. 아르바이트하듯 일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마인드로는 패션업계에서 버티기 힘들어요. 근면 성실함을 기본으로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두세요.

앞으로 더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SNS 커머셜을 더 잘 해보고 싶어요. 여러 요소를 모아서 편집하고 세팅하는 걸 특화되게 잘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 실력을 더욱 발휘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 패션이 부흥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K-패션 퀄리티가 정말 좋은데, 최근 중국 브랜드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어요. 살아남으려면 저도 더 열심히 해야죠(웃음).

마지막으로 한혜연에게 '패션’이란 무엇인가요.

인생이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돼서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느 날 갑자기 싫어져서 그만둘 수도 있고요. 근데 지금은 정말 일이 재밌어요. 

옷을 잘 입는다는 건 결국 매너를 갖춰 입는 거고, 거기에 자기 취향 한 스푼이 들어가면 그 사람만의 스타일이 보이거든요. 비싼 걸로 휘감지 않아도 충분히 잘 입을 수 있는 방법이 많아요. 저는 그 방법들을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혜연 #슈스스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한혜연 

이혜진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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