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대청봉에서 웨딩 촬영하다 [독자산행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한 번쯤 함께 해주면 된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지리산 화대종주와 영남알프스 태극종주를 걷고,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 산에 오르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워진다. 반면 남편은 산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등산 경험도 많지 않고, 힘든 건 질색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웨딩촬영을 했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조명이 가득한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남겼다. 사진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산에서 웨딩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남았다. 원래는 지리산과 설악산, 한라산에서 모두 웨딩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바빴고, 현실적으로 세 곳을 모두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고민 없이 고른 곳은 설악산이었다. 몇 번을 올라도 늘 설레는 산. 웅장한 능선과 변화무쌍한 풍경, 그리고 정상에 섰을 때의 벅찬 기분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이었다. 물론 남편의 생각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설악산은 낭만보다 고생이 먼저 떠오르는 곳일 테니까. 그럼에도 남편은 함께 해준다고 했다. 원래 계획은 오색에서 출발해 대청봉을 지나 한계령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설악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코스지만, 산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촬영 당일, 우리는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내 배낭에는 원피스가, 남편 배낭에는 와이셔츠와 촬영 소품들이 들어 있었다. 클라이밍장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온 세 명의 언니들도 함께했다. 함께 산에 다니고 운동도 하면서 어느새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의 사촌 누나이다.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 준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그 언니가 아니었다면 이날의 웨딩촬영도 없었을지 모른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평소 산을 즐기지 않는 남편에게는 더욱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괜찮아?" "응"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는 대청봉을 지나 한계령까지 내려올 계획이었기 때문에 물과 간식도 넉넉하게 챙겨 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배낭은 생각보다 묵직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시선은 자꾸 다른 등산객들의 배낭으로 향했다.
"다들 배낭이 엄청 가벼워 보이는데? 우리만 왜 이렇게 무거워?"
처음에는 웃으며 넘겼지만, 나중에는 쉴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급기야 나에게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부터는 물이랑 간식 조금만 들고 와."
생각해 보면 억울할 만도 했다. 나 때문에 설악산에서 고생하는데 배낭까지 무겁게 챙겨온 내가 욕심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한계령까지 갈 생각에 이것저것 챙겨 왔지만, 남편은 그 무게까지 고스란히 짊어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문득 결혼생활도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때로는 상대에게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남편은 정상까지 꾸준히 올라주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거의 영혼만 남은 상태였다. 반면 설악산은 최고의 선물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공룡능선이 선명하게 펼쳐졌고, 멀리 동해까지 시원하게 보였다.
나는 원피스를 입고, 남편은 와이셔츠를 입었다. 대청봉 정상석 앞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중이었다. 나는 앞에 계신 등산객 아저씨와 이런저런 설악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룡능선도 가봐야지!"
아저씨의 말에 나는 반갑게 대답했다.
"다녀왔는데 또 가고 싶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내 뒤쪽을 한번 쓱 바라보셨다. 그 시선 끝에는 세상 모든 고통을 짊어진 표정을 짓고 앉아 있는 남편이 있었다.
아저씨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남편은 데려가지 마. 공룡은 진짜 힘들잖아."
사실 그날 남편의 표정을 생각하면 아저씨 말씀이 맞았다. 공룡능선은커녕, 다시 산에 데려갈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다. 줄이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언니들은 연신 셔터를 눌렀다. 클라이밍장에서 만난 언니들, 그리고 산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를 위해 여기까지 올라온 남편. 문득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설악산 정상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정상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는 한계령으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남편을 위해 조금 더 짧은 코스인 오색으로 원점회귀하기로 했다. 하산길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남편은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자꾸 속도를 내려고 했다. 나는 일부러 남편을 계속 쉬게 했다.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다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쉬고, 걷고, 다시 쉬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내려왔다.
그날 남편을 보며 문득 결혼도 산행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앞서가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조금 더 쉬어 가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힘이 남아 있고, 누군가는 지쳐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빨리 가냐가 아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무사히 내려오는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함께 오른 대청봉. 어쩌면 그날의 웨딩사진은 단순한 기념사진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산을 남편이 함께 걸어주었고,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도를 맞추는 법을 배웠다. 정상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풍경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은 아마 그 과정일 것이다. 그날 깨달았다.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정상이 아니라, 서로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온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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