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일본의 보육원은 한국의 어린이집과 같은 개념이다. 보육료의 경우, 3~5살은 무상화 정책으로 무료이며, 0~2살은 가구 소득에 따라 다르다. 내가 사는 후쿠오카시는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두번째 아이부터는 보육료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둘째, 셋째의 손을 잡고 등원하는 학부모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처음엔 보육료를 면제해준다 한들 이렇게 많이 낳을 일인가 싶었는데 아이를 기관에 맡겨두니 알겠다. 낳고 조금 키워 보육원에 보내면 삶이 이렇게 수월해지니 둘째도, 셋째도 낳아 볼까 하는 마음이 된다는 걸.
임신했을 때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보육원 견학이었다. 파트너는 육아 책을 읽더니 아이를 낳은 뒤에는 힘들어서 못 다닌다고 지금 방문해 두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보육원에 가본 적도 없어서 어떤 보육원이 좋을지 어느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벌써 둘러봐야 하나 싶었지만 잠자코 따랐다. 몇개의 보육원을 견학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동네를 산책하다 공원 옆에 있는 보육원을 발견했다. 이사 갈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 몬테소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과도한 미디어 노출은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에 집에서 티브이를 시청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고 했다. 0살 반은 12명이 정원이고 선생님 숫자는 4명이라고 했다. 보육사의 표정도 밝았고 아이들도 우리가 누군지 궁금해하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이웃 사람은 이곳이 아이들에게 걸레로 청소하는 교육을 하는 등 좀 오래된 교육 철학을 가진 점이 별로였다고 했지만, 나는 에이아이(AI) 시대에 그런 걸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내심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이곳이 아니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 있었는데, 바로 에이포(A4) 용지에 양면 인쇄해 나온 내용이었다. 보육원에서 워드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직접 만든 것 같은 소박한 전단지였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각 반에는 몇명이 다니는지, 연장 보육은 어떻게 하는지 등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문구는 이것이었다.
‘장애아동 보육: 장애나 발달 지연이 있는 아이와 다른 아이가 같은 보육원에서 생생하게 생활해, 함께 자라 풍부한 인간성을 기릅니다. 대상은 가정에서 보육할 수 없는 아이 중, 심신 장애나 발달 지연이 있어도 집단생활을 통해 발달을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아이입니다.’
장애아동 보육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당사자에게도 꼭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정부 인가로 어쩔 수 없이 장애아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동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보육원에 다니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학부모가 전화해서 우리 아이가 다닐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단지에 이런 정보가 나와 있다는 점이 좋았다. 교육 기관 등의 누리집에서 우리는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은 다양성을 가진 구성원을 환영한다고 적어두거나 항공사 누리집에서 수유·착유를 하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안내한 대목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환영하는 자세로 인해 환대받는 마음이 되는 것 말이다.
견학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였다. 파트너가 이제 곧 태어날 아기가 한국어·일본어·수어 등 여러 문화와 언어를 경험할 것이라고 하자, 보육사는 원에도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 참 좋겠어요”라고 했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소득 수준이나 발전 정도가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한 나라 사람들이 만나 이룬 다문화 가정이다. 그래서 그의 태도가 모든 다문화 가정에 대해 보인 반응이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대응이 마음에 들었다.
이 보육원에서 실제 장애아동이나 다문화 가정에 속하는 아동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안내 전단지에 장애아동의 입소를 환대한다고 쓴 곳이라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견학을 마치자마자 파트너와 나 모두 이곳을 1순위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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