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핵 ‘이중잣대’…이란과 달리 사우디 핵은 봐줬다

트럼프, 원자력 협정 최종 승인
우라늄 자체 농축 우회로 허용
핵심 기술 이전 않기로 했지만
UAE 등 중동 도미노 확산 우려
NYT “부시·오바마보다 후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자력 협력 협정을 최종 승인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사우디 원전 시장 진출을 확대하며 중국·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게 됐지만,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중동지역 핵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미국과 사우디 간 민간 원자력 협력 협정에 최종 서명했다. 양국 에너지장관도 협정에 서명했으며 22일 공식 발표한다.
이 협정은 미국 원자력법 제123조에 근거한 이른바 ‘123협정’이다. 미국 기업이 사우디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핵 인프라 개발을 주도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협정은 30년간 유효하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AP1000 원전 수출과 핵 인프라 구축 사업의 최대 수혜 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원전으로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원유를 수출로 돌려 수익을 늘릴 계획이다.
가장 큰 논란은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 가능성을 열어둔 점이다. 협정에 따르면 양국이 공동 연구를 통해 경제성과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 미국 기업이 사우디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건설할 수 있다. 다만 핵심 농축 기술은 이전하지 않는 ‘블랙박스’ 방식을 적용해 사우디가 관련 기술을 직접 확보하지 못하도록 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핵연료의 군사적 전용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이용한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이 반대할 경우 사우디는 10년 동안 다른 국가와도 자체 농축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
미국이 그동안 유지해온 핵비확산 원칙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동 연구 결과에 따라 사우디가 자국 내에서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할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09년 미국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맺은 협정보다 완화된 것이다. UAE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 가입과 자국 내 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포기를 약속해 ‘핵비확산의 골드 스탠더드’로 불렸다.
미국이 원자력 협정을 통해 우라늄 농축을 허용한 사례는 일본·프랑스·독일·영국 등 일부 국가에 불과하다.
한국은 미국과의 협정에서 농축·재처리 포기 조항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농축·재처리를 할 수 없다.
이번 합의는 이전 조 바이든 행정부의 협상 기조와도 차이를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와 원전 협력을 추진하며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를 제외한 채 협상을 마무리했다.
핵확산 우려도 적지 않다.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2018년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사우디도 핵무기를 갖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우디는 현재까지 IAEA 추가의정서 가입도 거부하고 있다. 헨리 소콜스키 미국 핵비확산정책교육센터 소장은 WSJ에 “사우디가 우라늄 농축을 허용받으면 UAE와 튀르키예, 이집트도 같은 권리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와의 핵 협정에서 조건을 완화한 것은 의미심장하다”며 “행정부는 미국이 사우디 핵 프로그램을 직접 관리·감시하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부시·오바마 행정부가 유지해온 핵비확산 원칙에서 후퇴한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이란엔 핵 프로그램 축소를 요구하면서 사우디에는 민간 핵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은 이중잣대라는 비판도 나온다.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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