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에서 국가사업으로 [왜 지금 북극항로인가①]
정부, 부산항을 싱가포르처럼 거점항으로 키워

북극항로 개척이 구호 단계를 넘어 국가사업으로 본격 추진된다. 관련 법이 통과됐고, 조직이 생겼고, 다음 달에는 우리 국적선이 북극항로를 따라 약 40일 일정의 시범 운항에 나선다.
민간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인프라 구축을 국가가 주도하면서 북극항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닌 현실화를 위한 첫 발을 내딛게 됐다.
22일 해양수산부 등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5월 ‘북극항로 활용 촉진 및 연관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총리실 산하 위원회와 해양수산부 전담 조직, 5년 단위 기본계획을 법으로 묶었다. 오는 8~9월에는 부산에서 출발하는 시범운항도 예정돼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북극항로가 더 이상 기업의 선제적 도전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항로 개척에 필요한 정보와 인프라, 외교적 협의, 안전 장치, 보험과 금융이 모두 분절돼 있어 민간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번 특별법으로 이런 불확실성을 국가가 책임지는 기반이 처음으로 마련됐다.
왜 지금 북극항로인가. 먼저 해상 물류의 불안이 커졌다. 수에즈와 홍해, 호르무즈를 둘러싼 리스크가 커지면서 기존 항로만으로는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또 북극의 얼음이 점차 줄면서 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길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관련 연구들은 2020년대 후반에서 2030년 전후 북극항로의 상용화 가능성을 제시해 왔다.
‘북극항로 활용 촉진 및 연관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북극항로위원회와 해수부 추진본부를 통해 범정부 조정 체계를 만들고, 연구개발과 전문인력 양성, 재정·금융 지원까지 정책 도구를 넓혔다. 북극항로를 개별 선사의 모험이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다.
북극항로 개척으로 부산이 거점항이 되면 아시아와 유럽 간 운항 거리와 시간이 크게 단축될 수 있다.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면30~34일가량 이동해야 하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1만3000km, 20~23일로 열흘 단축된다. 시간과 비용은 물론,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덜어낼 대안이 될 수 있다.
부산이 북극항로의 거점항만이 되면 경제적 파급효과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환적·정비·물류·극지 운항 관련 산업을 묶어 ‘해양수도권’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부산이 국제 해상 물류의 거점으로 성장한다면, 싱가포르처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항만도시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경제성과 안전, 환경 문제 등 풀어야 할 현실적 과제도 적지 않다. 북극항로가 고비용·고위험의 실험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러시아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는 물론이고, 떠다니는 얼음 덩어리로 인한 사고 가능성, 비싼 보험료, 선박 수리와 정비 시설 같은 인프라 문제도 남아 있다. 북극항로를 지나는 선박이 늘수록 환경 훼손과 오염 사고에 대한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북극항로 추진에 참여하는 한 관계자는 “과거와 지금의 북극항로의 차이는 정책적인 의지”라며 “민간 기업에 맡겨서는 당장 이윤이 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총대를 메고 뛰어들기 쉽지 않았지만, 국가 주도라면 얘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안전 항해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고 자연 환경도 아직은 운항에 불리한 점이 있는 만큼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며 “기름 유출 같은 환경오염 사고, 연안 어업 종사자들의 우려, 러시아의 바닷길 주장 같은 외교 리스크도 함께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지승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