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AI를 이긴 것이 아니라… 격차를 줄였다는 확신”
경기 준비하면서 오히려 자신감 얻어
힘든 대국은 1국, 인상적 대국은 2국 꼽아
“AI 모방이 아닌 이해할 대상” 강조

“이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AI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22일 약 한 시간에 걸친 단독 전화 인터뷰에서 신진서 9단은 인공지능(AI) 카타고(KataGo)와의 승부를 이렇게 돌아봤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인간이 AI를 꺾은 보기 드문 사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성과를 과장하지 않았다.
“호선(맞바둑)으로는 아직 어렵습니다. 인간이 최선을 다해도 버티기 힘든 수준입니다.”
이번 승부가 두 점을 먼저 놓고 두는 접바둑 형태로 진행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진서 스스로가 선택한 조건이었다.
“도전하는 입장이었고, 저조차 쉽지 않을 거라고 봤습니다. 두려움이자 하나의 벽처럼 느껴졌죠. 다만 시합이 성사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감이 올라왔습니다.”
■확신은 100수 이전에 왔다
2000년 부산 사하구 다대동에서 태어난 그는 바둑학원을 운영하던 아버지 곁에서 바둑을 익혔다. 12세에 서울로 올라온 지 4개월 만에 프로에 입문했고, 현재 세계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시작한 이번 접바둑 실험에서 그는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승기를 감지했다.
“100수 이전, 비교적 이른 시점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집 모양에 큰 변화가 없을 것 같았고,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그 격차가 패배로 이어지지 않게 운영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판 전체의 구조를 읽어낸 판단이었다. AI와의 대결에서 ‘확신’을 언급하는 일 자체가 드문 만큼, 당시 그의 판세 장악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흔들린 1국, 버틴 2국… “유혹을 견딘 한 수”
세 판 중 가장 인상적인 대국으로 그는 2국을 꼽았다. 특히 178수와 180수를 “가장 마음에 드는 수”라고 언급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유혹을 잘 견뎌낸 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 수를 “AI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표현했다. 복잡한 선택지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최선의 흐름을 지켜낸 판단이었다.
실제로 2국은 내내 위태로운 흐름이었다. 중반까지 흐름이 좋지 않아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무너질 수 있는 국면이었다. “중반 내용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만회하려 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대국으로는 2국이 아닌 1국을 꼽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이기는 것도 어렵지만, 승부사에게 지는 건 더 힘든 일입니다.”
1국 패배의 원인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심리적 흔들림에 가까웠다. 특히 카타고의 초반 ‘이례적인 수’가 판단을 흐렸다. “분명 이상한 수처럼 보였는데 이후 계속 정수를 두면서 혼란이 왔습니다. 바둑판에만 집중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반전의 계기는 하루 동안의 휴식이었다. 그는 이 시간을 ‘재정비의 시간’으로 삼았다. 휴식일 중 별도의 온라인 대국에 참여해 승리를 거둔 것도 컨디션과 기분을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승 1패로 맞선 3국의 부담에 대해서는 예상과 다른 답을 내놓았다. “오히려 덜했습니다. 두 번의 대국에서 얻은 정보가 있었고, 무엇보다 이길 수 있다는 걸 한 번 확인한 것이 컸습니다.”
이번 대결을 준비한 기간은 약 한 달. 훈련의 중심에는 역시 AI가 있었다. “같은 AI라도 환경과 설정에 따라 전혀 다른 바둑을 둡니다.”
훈련은 개인의 고독한 연구에 그치지 않았다. 국가대표팀 코치진이 심리적·환경적 지원을 맡았다. “혼자 하는 것과 곁에서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존재 자체가 큰 힘이 됐습니다.”
■“끝이 아닌 시작” AI를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
신진서는 AI를 ‘모방의 대상’이 아닌 ‘이해하고 결합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AI의 수를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충분히 이해한 뒤 자신의 바둑에 녹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에게 AI는 더 이상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이미 체화된 학습 도구다. “AI의 한계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설정과 목적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이번 대국의 의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AI를 이겼다는 이야기보다,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합니다. 바둑에는 여전히 ‘인간 바둑’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스토리와 승부수, 묘수가 주는 재미와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최 측 역시 이번 이벤트를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대국으로 이어갈 뜻을 내비치고 있다. 신진서 역시 이번 대결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받아들였다.
“랭킹 1위를 오래했던 저조차도 AI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도전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격차를 조금씩 줄여나가고 싶습니다.”
AI 시대의 바둑은 더 이상 ‘인간 대 기계’의 대립 구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터뷰 말미, 신진서의 발언은 그 변화의 방향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었다.
한편 신진서는 오는 11월께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이 열릴 즈음 다시 부산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올해 초 그의 이름을 딴 대회(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가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