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훈민정음, 백성 위한 게 아니었다? 한글날 100돌에 불거진 '불편한 논쟁'
"훈민정음 창제=애민정신" 통념 적극 반박
"부민고소법 폐지, 한글 보급 노력 부재 근거"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 본보서 반론 인터뷰
"세종은 현실적 개혁주의자… 민중 해방 역할"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따름이니라.
'훈민정음 어제서문'(국사편찬위원회 해석본)
조선 4대 국왕인 세종이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한 근간에 애민정신이 있다는 건 한국인의 오랜 상식이다. 갑오개혁기였던 1894년 11월 고종이 한글을 국가 공식 문자로 지정하고 외솔 최현배를 위시한 국어학자들이 학술 담론의 지평을 열면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인 올해 이 같은 통념을 뒤집는 책이 출간됐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쓴 '한글, 불편한 진실'이다. 강 교수는 '한국이 애민심으로 충만한 성군을 가졌다는 인식은 강력한 내셔널리즘에서 파생된 관념'이라며 세종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그가 주목하는 건 부민고소법. 민중이 관부와 지방수령 등의 비리를 고소할 수 있도록 한 법인데, 세종 2년(1420년) 당시 예조판서였던 허조의 건의를 받아들여 폐지된다. 그랬던 세종이 후에 문자 창제로 백성에게 '말할 기회'를 주려 했다는 건 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강 교수의 분석이다.
한글 제정 이후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민중이 일상 문자로 사용하길 바랐다면 응당 취했어야 하는 보급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거다. 이를 바탕으로 강 교수는 한글의 본질은 '훈민(訓民)' 즉, 백성에게 복종의 의무를 가르치는 통치·세뇌 수단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학계에선 '국수주의 사관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와 '역사 왜곡'이란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본보는 저자인 강 교수와 국내 대표 훈민정음 연구자인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에게 각각 서면, 대면으로 견해를 물었다. 아래는 이를 재구성한 것으로, 강 교수 답변 일부는 책 내용을 인용했다.

-한글 연구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김슬옹=고등학교 1학년이던 1977년 한글학회 부설 전국국어운동고등학생연합회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49년째 한글운동을 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최초 복간본 간행 책임자로 일했고, 현재는 국어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교육·연구기관인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으로 있다.
강명관=조선시대 역사를 왕과 사족 중심으로 서술하고 민중의 삶과 움직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다. 한글 창제도 성군 세종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만들어준 것이라고만 여기지 말고, 당시 민중의 현실적·객관적 상황을 고려해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집필하게 됐다.
-한글과 세종에 대한 통설이 자리 잡은 건 언제인가.
강명관=19세기 말 이래 주체적 근대화 실패, 식민지 전락, 분단과 전쟁 등은 한국인의 심성 내부에 깊은 상처와 부정적 감정을 새겨 넣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역으로 강력한 자기 긍정의 내셔널리즘이 형성됐고, 한글이 세계 최고 문자란 관념은 이 내셔널리즘이 만들어낸 것일 터이다.
김슬옹=한글의 근대적 위상이 주시경 선생 이후 정립됐고, 근대 민족운동 속에서 민족 상징으로 부각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에 상징화됐다'는 것이 '근대의 발명품'이란 건 아니다. 1444년 최만리의 반대 상소 등에서도 당대인들이 이미 문자 창제의 의의를 알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강 교수는 세종이 한글 창제 취지를 밝힌 훈민정음 어제서문 중 '어여삐 여겨(憫然)' 대목을 '마음이 짠하다'로 해석하면서, 이 같은 소극적 감정 상태는 갸륵한 애민정신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적다고 전제했다.
김슬옹=문헌학적으로는 '마음이 짠하다'는 해석이 맞다. 그러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유교가 말하는 측은지심, 즉 애민의 본령이다. 오히려 애민의 원형을 정확히 짚은 거다. 세종이 단지 동정심에서 그치지 않고 과학·의학·사법·농업 등 전 분야에 펼친 정책을 알고 있지 않은가.
강명관=측은지심이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타인의 고통을 해소하려는 구체적 실천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세종은 부민고소법을 폐기해 백성이 국가의 불법적 수탈에 항의할 길을 막고 한글을 익힐 구체적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 세종의 애민의식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이유다.

-부민고소법이 폐지된 건 세종 2년인 1420년이지만, 실제로는 상왕인 태종이 폐기를 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슬옹=세종이 폐지에 반대하자 허조는 태종을 찾아갔고, 태종이 '부민고소금지법' 제정을 승인했다. 실권 없는 견습군주가 부왕의 결정을 뒤집을 순 없었을 거다. 세종은 대신 백성의 억울함을 구제하는 방향으로 법을 고쳐 나갔다. 또 신문고 등을 통한 자기소원은 막지 않았다.
강명관=그렇다면 태종 사망 후엔 부민고소법을 복구해야 하지 않았을까. 세종은 부민고소법을 폐기하자는 관료들에게 계속 밀렸고 결국엔 폐지했다. 세종은 조선시대 왕 중에서는 분명 가장 빼어난 군주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지배계급 수장인 전근대의 왕일 뿐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내고 4년 뒤 사망했다. 한글 교육을 제도화할 여력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강명관=세종은 전제군주다. 그가 만약 한글을 민중에게 보급하려 했다면, 4년간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당시 책을 읽고 쓰는 건 지배계급의 독점적·특권적 문화였다. 세종 시기 시작된 경서 언해(한문을 한글로 풀어서 씀) 역시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김슬옹=세종은 단계적으로 정책을 펼쳐 나간 현실적 개혁주의자였다. 날로 건강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해례본을 내고 일부 과거시험 과목으로 훈민정음을 택했으며, 불경과 경서 언해 작업을 시작했다. 문해 교육이 제도화되지 못한 건 시간적 여력이 부족했던 데다 시대의 한계도 있었다.
-결국 훈민정음의 세 가지 창제 의도, 즉 ①백성을 가르치겠다 ②말하고자 하는 게 있는 백성에게 표현 수단을 주겠다 ③사용에 편리함을 주겠다 중 ①만 실현됐다는 게 강 교수 책의 핵심이다.
강명관=당시 한글 언해 텍스트들은 '교화'를 목적으로 한다. 조선시대 교화는 유교적 윤리를 주입하는 거다. 세종 시기 만들어져 성종 때 언해된 삼강행실도를 보자. 위계적 관계에서 하위자의 자발적 복종을 설파하는 게 교화의 속성이다. 복종은 효과적인 통치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김슬옹=교화를 '복종시키기'로만 환원하는 건 이념적 독해다. 언해된 텍스트들엔 도덕 함양만이 아니라 농사·의약 지식 등도 포함된다. 게다가 백성은 이내 소설·편지·여성 글쓰기 등으로 한글을 전유했다. 창제에 통치 의도를 인정하더라도, 장기적 효과는 분명히 민중을 해방시키는 쪽이었다.

-'한글,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강명관=한글의 발명은 물론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지만, 민중의 입장에서 의미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대부분 노비, 농민인 그들에게 문자를 익힐 기회가 주어졌을까. 역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생각에서 쓴 것이지 세종과 한글을 깎아내리기 위한 게 아니다. 오해 말기 바란다.
김슬옹=성군 신화와 무비판적 민족주의는 마땅히 검증받아야 하고, 감상적 과잉을 걷어내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학문적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우리 학계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좋은 자극제다. 다만 '과잉 신화화의 교정'과 '냉소적 환원으로의 과잉 교정'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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