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평가 쓰면 "자퇴시키겠다"… '좋은 말 대잔치' 된 학생부

송옥진 2026. 7. 2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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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기록부의 상업적 이용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 시행을 앞둔 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생기부 컨설팅' 관련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학생부 연수를 하면 '부정적인 문구를 기입하는 경우 발전 가능성도 같이 언급을 해줘라'고 했어요. 그런데 학부모 항의에 몇 번 시달리더니 그 말도 쏙 들어갔어요. 올해부터는 '서술형 평가는 추천사라고 생각하고 써줘라'고 하더라고요. 부정적인 얘기는 쓰지 말라는 거죠."

경기도의 한 고교 2학년 담임 교사 A씨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와 관련된 여러 민원 사례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이 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학생부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 아이가 임원 활동을 했는데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는 뼈 있는 한 문장을 남겼다가 '수시는 글렀다' '자퇴시키겠다'며 펄펄 뛰는 학부모의 항의를 받아야 했다. A씨는 "학생부 연수에서도 학생의 실제 행동에 근거를 했어도 부정적 내용을 쓰면 행정소송에 걸릴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며 "많게는 200명 되는 애들한테 화려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다 잘했다는 학생부를 쓰고 있자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교직에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솔직한 평가는 선생님 마음속에..."

그래픽=신동준 기자

대입 수시 전형에서 학생부가 당락을 가르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역설적으로 변별력 있는 정성평가를 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학생부 내용에 그만큼 민감해져 부정적 평가 한 줄 쓰기도 현실적·구조적으로 어려워져서다. 교사들의 평가권과 기재권을 보장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교육부가 매년 공개하는 '2026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 '학생의 부정적인 행동특성을 입력하는 경우에는 변화 가능성을 함께 입력한다'는 지침이 올해 '학생의 부정적인 행동특성을 입력하는 경우에는 학생의 행동특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누가 기록(특정 활동이나 출결·학적 변동 등 학교생활의 사실을 날짜별로 누적해 기록·관리하는 것)할 것을 권장한다'고 바뀌었다. 민원과 소송 등에 대비해 부정적 특성을 기재할 때는 언제, 어떻게 등 근거를 분명히 하도록 기준이 강화된 것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이자 지난해 고3 담임을 했던 B씨도 학교 방침상 "학생부에 부정적인 표현은 절대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일부 학교는 '처음에는 속도가 느렸으나 성장했다' '친구들과 갈등이 있었으나 해결했다'는 식으로 발전 과정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부족함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부정적 의견을 드러내고 싶을 땐 최대 입력 글자 수보다 한참 짧게 써주는 정도"라며 "학생들이 다 보는 데 굳이 나쁘게 쓰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당해 연도엔 학생들이 자신의 학생부 서술형 기재 내용을 볼 수 없으나 대다수 학교가 학생부의 중요성을 감안해 미리 보여주고 확인을 거친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서울의 한 고교에서 2년 전 은퇴한 교사 C씨는 "단순히 민원이 무서워서 부정적 의견을 쓰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어차피 성적은 등급으로 다 나와 있는데, 교사가 제자의 평생 남는 기록에 잘못한 점을 세세하게 나열할 필요를 못 느끼고, 그게 어떤 교육적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생부 정성평가 더 중요해지는데...

현실이 이런데도 대입에서 학생부의 정성평가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신이 지난해부터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면서 변별력이 약화돼 상대적으로 정성평가를 주요하게 보는 대학들이 늘어날 전망이라서다. 학생부에는 담임 교사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교과 담당 교사가 작성하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진로 활동 등을 기록하는 '창의적체험활동'의 세 가지 서술형 평가가 담긴다.

특히 세특의 경우 교사 1인이 담당하는 학생 수가 150~200명 수준으로 과도하다는 점도 문제다. 과거엔 학교마다 30% 안팎의 일부 학생만 기재 대상이었지만, 2020년 대입 공정성 제고 방안에 따라 해당 수업을 수강한 모든 학생을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바뀌었다. 대상 학생이 급격히 늘면서 일부 교사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단어나 문구만 조금씩 바꿔 쓰거나 여러 학생에게 같은 내용을 복사해서 붙여넣기, '복붙'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2019년 11월 유은혜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감사원이 전날 공개한 서울시교육청 정기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21~2024년) 서울의 239개 고교 학생부 작성 실태를 점검한 결과, 교사 803명이 51명 이상 학생의 세특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동일한 내용을 기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51명이란 기준은 감사원이 임의적으로 정한 것으로 이를 50명 이하 학생에게 동일하게 기재하거나 단어 한두 개만 바꾼 사례는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피해는 오롯이 학생들 몫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고교학점제로 과목 수가 많아졌는데, 교사들이 학생 개별 특성을 반영해 코멘트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렇게 기재된 세특으로 대학에서 학생의 자질, 경쟁력, 학과 연계성을 얼마나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김지현 인턴기자 bem2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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