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까지 지었다, 중국의 ‘AI 인재 가두리’ 전략
직원 아파트 4000채 시세 반값에 제공, 학교 2곳도 건설
업무·생활·교육 시설 한곳에 모아… 인재 외부 유출 막아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의 다찬완 컨테이너 부두를 지나자 바다를 향해 뻗은 미래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방문한 이곳은 중국 빅테크 텐센트가 해안 부지 80만9000㎡에 건설 중인 새 본사 단지 ‘펭귄 아일랜드’(연면적 300만㎡)다. 펭귄은 텐센트의 마스코트다. 이곳에는 직원용 펭귄아파트 4000채와 학교 두 곳 등 생활시설을 두루 갖춰 직원 8만명을 수용한다. 1단계 구역이 문을 열면서 현재 약 2만8000명이 입주 완료했다. 텐센트는 전체 직원 11만명 가운데 연구·개발 인력이 76%에 달하는데, 최고의 두뇌들을 한곳에 모아 살게 하려고 도시 하나를 세운 셈이다.
중국 첨단기술 산업의 경쟁축이 인재 확보로 이동하면서 빅테크와 지방정부가 앞다퉈 거대한 ‘인재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지난 1월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하이뎬구는 도심의 대형마트와 호텔이 있던 빌딩을 개조해 ‘인공지능(AI) 창업 마을’로 바꿨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업인 화웨이는 상하이·장쑤·저장 세 지역의 경계에 있는 농지에 자사 최대 연구도시를 세웠다. 중국 1위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와 스마트폰·가전 강자 샤오미도 앞다퉈 선전과 난징의 공터에 대규모 연구 거점을 조성했다. 이들 인재도시는 아파트·학교 등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협업과 실험에 필요한 시설을 한곳에 집적해 연구자들이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 중국식 ‘인재 저수지’인 셈이다.
◇AI 문제 해결 ’10분의 법칙‘… 한 도시서 中 개발자 1만명 머리 맞댄다
이날 텐센트 관계자는 ‘섬’ 안의 톱니 모양 사무동인 ‘윈하이(雲海)빌딩’을 가리키며 “사무 공간의 80%에서 바다가 보이고, 임원이 아닌 연구 인력에게 좋은 자리가 우선 배정된다”고 했다. 회의와 전시 공간으로 꾸민 ‘텅윈(腾云)센터’ 세 동은 ‘구름에 올라 날다’라는 이름처럼 지면에서 9m 높이에 띄워 지었다. 지상 공간을 최대한 비워 직원과 가족이 이용하는 보행·휴식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펭귄아파트 4000채는 시세의 절반 수준인 월 2000위안(약 40만원)에 제공되고, 자율주행 미니버스와 순찰·청소·안내 로봇이 섬 안에서 운영된다. 지난해 10월 섬의 다섯 구역 가운데 사무·주거 2개 구역이 먼저 문을 열었고, 2028년까지 ‘기술 엔진’이란 이름의 본사 빌딩과 컨벤션센터·호텔을 추가로 지어 전체 단지를 완공할 예정이다. 2019년부터 319억위안(약 7조원)을 들여 조성한 이곳은 직원이 저녁이면 빠져나가는 사옥이 아니라 전 직원이 가족과 함께 먹고 자며 아이를 키우는 생활권이다.

중국 빅테크들의 인재 도시 건설 경쟁은 사업 분야를 가리지 않고 불이 붙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지휘자 격인 화웨이는 상하이와 장쑤·저장이 만나는 행정 경계에 2024년 10월 자사 최대 연구기지인 롄추후연구개발센터를 세웠다. 상하이의 기술업계 투자자는 “3개 지역의 인재들을 모두 빨아들이는 ‘인재 블랙홀’”이라면서 “화웨이 신입 연구자들을 우선적으로 이곳에 배치해 2년 이상 몰두하게 한다”고 했다. 면적 206만㎡에 달하는 거대 단지엔 반도체 설계와 단말기 등 10여 개 연구개발 부문 인력 4만명이 근무한다. 화웨이는 직접 건설사를 세워 직원 주택 약 1만2000채를 공급하고, 내부 열차와 식당·상업 시설도 갖췄다.
화웨이는 앞서 2018년에 둥관 쑹산호에 ‘화웨이 유럽 마을’로 불리는 ‘시류베이포촌(村)’을 조성해 기술 총력전 기지로 활용한 노하우가 있다. 194억위안(약 4조3000억원)을 들여 유럽 도시 12곳을 본뜬 연구동을 만들고 연구자 약 2만5000명을 수용했다. 2019년 미국의 대중국 기술 제재가 시작되자 화웨이는 세계 각지 엔지니어 약 2000명을 이곳에 모아 ‘대체품’ 개발에 몰두했다.
중국 1위 전기차 회사 비야디(BYD)는 지난 6월 선전의 미개발 산지(山地)에 세운 룽강바오룽글로벌연구개발센터를 1단계 완공하고 오픈했다. BYD의 흩어진 11개 연구소와 50개 실험실을 한곳에 모은 곳으로, 6만명에 달하는 연구자 결집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에서 스마트폰·가전 강자로 군림하는 샤오미는 2024년부터 난징의 공터에 전기차와 AI 연구인력 약 7000명이 근무하는 난징과학기술원을 세우고 청년 아파트를 운영하고 있다. 샤오미의 인재 거점은 이곳 외에도 베이징 창핑·우한 광구 등 총 3곳에 달한다.

중국 지방정부들도 앞다퉈 인재도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최근 찾아간 베이징 하이뎬구의 ‘AI 원점 마을’의 본부는 작년까지만 해도 대형마트가 성업하던 둥성빌딩에 조성돼 있었다. 쇼핑카트가 오가던 통로는 AI 제품 전시장으로 변했고 상품 진열대 자리에는 유리벽으로 나뉜 창업 사무실과 투자 상담 공간이 들어섰다. 마을엔 이런 창업시설 외에도 인재 아파트 4000여 채가 들어선 주거지가 포함됐다. 마을에 입주한 AI 기업은 300여 곳이고, 과학자 1000여 명·개발자 1만3000명이 인근에 둥지를 틀었다. 반경 1㎞ 안에 칭화대·베이징대·중국과학원을 비롯한 대학과 연구기관이 밀집해 마을 규모는 갈 수록 커질 전망이다.
하이뎬구 관계자는 “이곳은 투자자와 협력업체를 만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몇 층만 오르내리면 되는 ‘10분 혁신권’”이라며 “입주자들은 위아래층이 산업 사슬의 상류와 하류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건물 고층 카페에 조성된 무료 교류 공간에는 “AI 농도가 높으니 조심하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중국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던 2000년대 초에는 상하이 장장하이테크단지 같은 기술개발구가 토지와 공장·세금 감면을 통해 기업들을 유치했다면, 지금은 지방 정부들이 인재를 한곳에 모아 기업을 유인하는 모양새다. 이를 위해 둥관(쑹산호과학성)·쑤저우(두수후과학교육혁신구)·선전(광밍과학성)·싼야(야저우완과학기술성) 등 대도시 지방정부가 인재들을 위한 집과 학교·연구장비·컴퓨팅 자원·투자자를 끌어와 담장을 쌓고 인재를 붙잡는 중이다.

인재도시는 ‘두뇌 밀집’ 효과를 누리고 있다. 연구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신제품과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결정·부품 조달·제품 시험에 걸리는 시간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한 기술 투자자는 “중국 기술 업계가 공감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인재’란 사실이고, 인재가 연구 외의 일에 빼앗기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갈수록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인재도시는 거대한 기술 실험장이 되기도 한다. 펭귄아일랜드의 경우 자율주행 셔틀과 순찰 로봇, 휴머노이드 안내 로봇, 손바닥 결제 기술이 직원들의 일상에 적용되고 있고, BYD 본사에선 ‘하늘 열차’가 운행 중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직원들은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인 동시에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이자 실증 데이터를 만드는 시험 참가자가 되는 셈이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장과 생활의 경계가 사라지면 장시간 노동과 회사 의존이 심해질 수 있고, 주택과 자녀 학교·인간관계까지 특정 기업에 묶이면 이직의 자유를 사실상 제한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펭귄아일랜드에서 만난 직원은 “회사 실적이 악화하면 잃게 되는 건 직장뿐 아니라 아이의 학교와 일상이 되기에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시민 “뉴이재명 수장은 李대통령… 내버려두면 어물전 썩은내”
- 구글 실적 발표 D-1, 반도체주 반등 분수령 될까…관건은 ‘돈 버는 AI’
- 5월 국내은행 대출 연체율 0.67%, 9년 7개월 만에 최고...中企 연체율은 11년만에 최고
- 컨테이너 운임 10주 연속 상승 이후 2주 연속 하락
- [그 영화 어때] ‘호프’를 알아보자② 조인성은 왜 총각김치를 먹었나
- 대학 연구실이 아니라, 교수 딸 ‘입시 스펙’ 만드는 공장이었다
- [단독] 인권위원장 “인권위 결정 폐기하고 사과하는 건 법치국가서 용납 안돼”
- 베테랑의 노하우를... 암묵지 데이터화 나선 스타트업
- [김한수의 오마이갓] 휴가지 주변의 기도하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성당들
- 유가·반도체 가격 올라…생산자 물가 두 달 연속 8% 넘게 상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