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에 이제 선거는 없다”

박강현 기자 2026. 7. 2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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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집권 오르테가 대통령, 종신 독재 시동… 극심한 폭정·생활고에 국민 20%가 고국 떠나
니카라과 공동 대통령인 다니엘 오르테가(오른쪽)와 아내 로사리오 무리요. 1980년대에 이어 2007년 재집권한 오르테가는 지난해 개헌을 통해 부통령이던 아내 무리요를 공동 대통령에 올렸다. /AP 연합뉴스

총 집권 기간이 25년에 육박하는 다니엘 오르테가(81) 니카라과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르테가는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독재의 도구로 악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중남미 반미(反美) 좌파 지도자인데 그 선거조차 치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기습적 군사작전으로 마두로 정권이 축출되는 것을 지켜본 오르테가가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국민을 인질로 잡고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와 미국의 대(對)쿠바 스페인어 방송 마르티 노티시아스 등에 따르면 오르테가는 지난 19일 수도 마나과에서 열린 산디니스타 혁명 47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야권 세력이) 정부를 빼앗기 위해 이용할 선거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쿠데타 세력과 반역자들을 막아낼 장벽을 세우는 법률을 제정하겠다”며 “양키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지원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이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야권을 쿠데타·반역자로 비난하고, 미국에 대한 멸칭을 쓰며 적개심을 표한 것이다.

산디니스타 혁명이란 1979년 오르테가가 좌익 게릴라 조직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현 집권 여당)을 이끌고 50년 가까이 세습 독재를 이어가던 소모사 가문을 축출하고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한 사건을 말한다. 오르테가는 이후 선거에서 승리해 대통령직에 오른 뒤 임기를 연장해 왔는데, 앞으로는 선거 없이 종신 독재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오르테가는 FSLN에서 함께 활동한 배우자 로사리오 무리요(75)를 부통령에 앉힌 데 이어 헌법까지 뜯어고치며 지난해 그를 ‘공동 대통령’으로 격상시켰다.

그래픽=박상훈

오르테가가 자신의 구상을 강행할 경우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부부 종신 독재 체제’가 들어서게 된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중남미의 반미·좌파 정부를 강력하게 압박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더욱 가속이 붙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는 1기 때였던 2018년 니카라과 오르테가 정권을 피델 카스트로·라울 카스트로 형제가 통치한 쿠바 공산정권, 우고 차베스·마두로로 이어진 베네수엘라 좌파정권과 함께 ‘폭정의 트로이카’로 칭한 바 있다. 미국은 오르테가 부부와 측근들을 겨냥해 여러 차례 제재를 가해왔다.

야권 인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친미·우파 성향의 비올레타 차모로 전 대통령(1990~1997 재임)의 조카이자 야권 지도자인 후안 세바스티안 차모로는 “오르테가의 연설은 니카라과를 중국, 북한, 쿠바와 같은 일당 국가로 만들고 싶다는 오랜 염원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 다른 야권 지도자 펠릭스 마라디아가는 “이번 연설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두려움의 고백”이라고 했다.

니카라과의 상황에 대해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세기 전 무장 조직을 이끌고 독재에 맞섰던 젊은 게릴라 지도자가 권력을 잡은 뒤 자신이 타도한 독재세력의 길을 그대로 걷고 있기 때문이다. 미주대륙의 허리에 있는 니카라과는 태평양·카리브해와 접한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1930년대부터 미국의 후원을 받은 소모사 일가가 50년 가까이 명목상으로는 대통령제인 가문 족벌 정치를 이어갔다. 독재와 폭정에 신음하던 서민들은 1960년대 등장한 FSLN과 젊은 반정부 게릴라 지도자 오르테가에 열광했다. 빠르게 민심을 얻은 오르테가는 1979년 실제로 소모사 가문을 축출하며 권력의 중심에 섰고, 이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해 당선됐다. 하지만 재임 시 잇따른 실정으로 민심을 잃고 1990년 대선에서 친미·우파 성향 여성 후보 차모로에게 패배했다.

야인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FSLN을 이끌고 정부를 흔들던 오르테가는 2006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이듬해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17년 만에 집권한 그는 독재 체제 구축에 골몰했다. 친정부 성향 법관들을 배치하고 군·경찰·사법부·선거관리기구를 충복들로 채우며 장기 집권의 길을 닦았다. 수백 명의 사망자가 속출하는데도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했고, 정부에 쓴소리를 하던 언론사와 시민 단체 수천 곳을 폐쇄했다. 폭정에 항거하던 천주교 성직자와 지식인 체포와 추방이 잇따르며 망명·실종자가 속출했다.

선거 제도를 비틀어 독재 연장의 도구로 활용한 수법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연상케 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 등 자유 진영 국가 다수가 부정선거로 규정한 2021년 대선은 오르테가 폭정의 민낯을 드러냈다. 경제 사정이 중남미 최빈곤 수준으로 떨어지며 민심이 흉흉한 상황에서 오르테가는 유력 대선 후보 7명에게 출마 금지 조치를 내리거나 체포하며 족쇄를 채웠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국민이 앞다퉈 고향을 등진 상황도 베네수엘라와 빼닮았다. 최근 수년간 니카라과를 떠난 국민은 전체 인구(약 670만명)의 5분의 1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는 ‘폭정의 트로이카’로 중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직접 제거했고, 쿠바 공산 정권에 대해서는 초강력 경제 제재로 고사시키며 군사 침공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순위인 니카라과에 대해서도 미국이 본격 ‘손보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부터 “오르테가·무리요 독재 정권에 책임을 묻고 자유와 정의를 향한 니카라과 국민의 열망을 뒷받침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국립외교원 하상섭 교수는 “가만히 있어도 제재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 없는 독재를 공개 선언하는 것은 미국에 새로운 압박 명분을 주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인 무리요를 공동 대통령으로 격상한 개헌과 연결하면, 오르테가의 이번 발언은 개인의 종신 집권뿐 아니라 후계 체제 구축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혁명을 내세워 집권한 세력이 결국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무너뜨리는 독재로 귀결되는 형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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