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국가역할론’ 띄운 靑…관치로 AI 생태계 못 키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공지능(AI) 시대의 국가는 생산하는 국가도, 통제하는 국가도 아니다. 시장을 조직하는 국가”라며 AI 대전환을 위한 ‘국가역할론’을 또다시 제기했다. 김 실장은 2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AI 시대, 국가는 시장을 조직한다’라는 글에서 AI는 아무도 먼저 움직이지 않는 ‘잠긴 시장’이라면서 시장이 스스로 열지 못하는 문을 국가가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전면에서 AI 대전환을 주도하고 시장이 스스로 굴러가는 자생력을 확보하면 국가가 뒤로 물러나면 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AI 시대를 주도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큰 정부론’을 띄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 실장은 “국가는 더 이상 시장 규제자가 아니라 생산 플랫폼”이라며 AI 시대의 새 국가론을 누차 강조했다. 올해 5월 김 실장이 “AI발 초과 세수를 ‘국민배당금’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제안하자 정부는 두 달 만에 개념도 불명확한 ‘반도체 초과 이윤’ 활용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20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업 초과 이윤의 사회적 배분’을 논의하려다 돌연 취소하기도 했다.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은 이미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대항전이 된 지 오래다. 미래 국가 경쟁력은 물론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AI 육성을 위해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들도 앞다퉈 강력한 산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력·용수 등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설계자’를 자처하는 국가가 기업의 이익 처분과 투자 결정 등 핵심적 경영 판단까지 좌우하며 과도하게 개입한다면 순기능보다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
혁신 기반의 AI 생태계를 ‘관치’로는 조성할 수도, 키울 수도 없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업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시장 위에 군림하는 비대한 정부가 아니라 든든한 조력자이자 해결사로서의 정부다. 불합리한 규제 개선과 법·제도 정비, 세제 지원 등으로 기업들이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거창한 ‘국가론’을 펴기보다는 기업의 다양한 요구에 귀 기울여 AI 기본법 후속 개정안을 가다듬고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정을 원활하게 가동하기 위해 원전 증설 등 안정적 전력원을 확보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논설위원실 opini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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