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신진서, AI ‘카타고’에 완승…10년 만에 다시 쏜 ‘희망의 한 수’

이규화 2026. 7. 21. 17:1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I 시대 인간 대표의 반격…1패 뒤 2연승
철저한 집 바둑 전략으로 ‘바둑의 신’ 눌러
그러나 ‘2점 접바둑’이라는 조건에서 승리
제한된 조건서 AI 능가할 수 있다는 메시지


바둑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바둑 AI 프로그램 카타고(KataGo)와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3번기를 치르기에 앞서 21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경기에서 대국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인간은 이제 인공지능(AI)의 상대가 되지 않는 걸까. 10년 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인간 대표 이세돌 9단을 꺾자 전 세계 바둑계가 던졌던 질문이다.

10년 후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 비록 완전한 맞대결은 아니었지만,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조건에서 AI를 꺾으며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신진서 9단은 21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최종 3국에서 현존 최강 바둑 AI인 ‘카타고’(KataGo)를 221수만에 11집 반 차로 완파했다. 1국 패배 뒤 2국과 3국을 연달아 승리하며 최종 전적 2승 1패의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AI를 상대로 인간 대표가 만들어낸 극적인 반전이었다.

이번 대결은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세기의 승부 이후 10년 만에 열린 인간과 AI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이세돌 9단은 “5대 0, 아니면 4대1 승리”를 말하며 자신했지만 결과는 거꾸로였다. 알파고는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계산력으로 초반 세 판을 내리 가져가며 승부를 끝냈고, 이세돌은 역사적인 제 4국 ‘신의 한 수’로 단 한 차례 승리만 거둘 수 있었다. 최종 성적은 1승 4패였다.

이세돌과 알파고 간 대결은 AI가 인간의 사고 영역마저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각인시키며 인공지능 시대를 알리는 이정표로 기록됐다.

10년이 흐른 지금 AI는 당시보다 훨씬 강해졌다. 신진서가 상대한 카타고는 미국 컴퓨터 과학자 데이비드 우가 개발한 오픈소스 바둑 AI로, 현재 프로기사들의 연구와 복기, 해설에 널리 활용되는 사실상 극강 수준의 바둑 인공지능이다. 인터넷 바둑 플랫폼 타이젬은 RTX3090 그래픽카드 4장을 병렬 연결한 전용 시스템으로 카타고를 운용했고, 한국기원 소속 이단비 초단이 대리 착수했다.

대국의 흐름은 인간의 끈질긴 적응 과정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신진서는 첫 판에서 카타고의 예상 밖 수법에 흔들리며 완패했다. 이후 AI의 의도를 읽어내면서 정면 전투를 피하고 집을 차곡차곡 확보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바꿨다. 특히 마지막 3국에서는 초반부터 복잡한 전투를 자제하며 자신이 예고했던 ‘집바둑’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중반 상변과 중앙에 거대한 흑집을 구축한 뒤에는 형세를 무리하게 확대하지 않고 끝까지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승리를 지켜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막판이었다.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뒤에도 신진서는 방심하지 않았다. 앞선 두 대국에서 승률 99%의 우세가 흔들리는 경험을 했던 그는 여러 차례 계가를 반복하며 마지막까지 정확성을 유지했다. AI 특유의 막판 추격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끝에 11집 반이라는 큰 차이의 완승을 거두며 인간 최고 기사의 집중력을 보여줬다.

이번 승리는 AI가 인간의 계산력과 수읽기를 압도하는 시대에도 인간이 전략과 인내, 완성도 높은 운영을 통해 일정한 조건에서는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신진서는 대국 후 “두 점 치수는 인간이 ‘바둑의 신’이라 불리는 AI와 정면 승부를 펼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승부가 인간이 AI와 맞설 수 있는 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현대 바둑계에서는 AI와 인간의 실력 차이를 감안할 때 최정상 프로기사라도 두 점 접바둑 정도는 되어야 AI와 승부가 성립한다는 인식이 점차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기신’(棋神)으로 불리는 조훈현 9단 역시 “AI 시대에는 최정상 프로기사라도 AI에게 두 점은 불리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인간 세계 챔피언이라도 AI와의 대등한 승부를 기대하려면 두 점 접바둑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번 승리로 신진서는 대국료와 승리 수당 등을 포함해 총 2억5000만원과 부상으로 제네시스 G90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승리의 가치는 계산 불가다. 인간이 AI에 완전히 굴복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했고, 10년 전 이세돌 9단이 알파고 4국에서 만들어냈던 감동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 교수는 “이미 AI는 인간이 다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계산해내는 수준으로 발달했다. 그럼에도 승리를 거둔 것은 의미 있겠지만, 대세에 큰 변화가 있진 않을 것 같다”며 “인간과 AI가 일방적 관계를 가져가기보다는 각자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상호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 발전을 가속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번 승부는 인간이 AI를 정면으로 압도했다기보다, AI의 압도적 우위를 인정한 상태에서 인간이 투지를 발휘해 이겼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머잖아 등장할 인공일반지능(AGI)에 맞서 인간이 제한된 조건에서는 인공지능을 앞설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이다. 이는 곧 AI가 인간에 도움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는 인간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