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대의 이로운 기술, 다정한 도시] 답하는 기계, 감탄하는 인간

지난주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린 2026년 BBC 프롬스 첫날 밤에 한국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라벨의 피아노협주곡 G장조와, 조제프 코스마의 'Autumn Leaves'를 앙코르곡으로 들려주었다. 연주회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 음이 공중에 남았을 때, 6천 명에 가까운 관객이 곧바로 박수로 달려가지 않고 짧은 순간 숨을 죽인 듯한 정적이 흐르는 장면이다. 그 침묵은 지루함이 아니라 감탄이다. 사람들은 방금 들은 소리 너머, 그 소리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이 건너왔을 시간 앞에서 잠시 멈춘다. 관객은 수천 번 반복했을 연습과, 무너진 날들, 다시 건반 앞에 앉았을 연주자의 마음을 함께 떠올렸을 것이다.
오늘날 발달한 인공지능 엔진이 다양한 음악을 학습하여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이더라도 사람들은 한 인간의 노력 앞에서처럼 오래 숨을 멈추지는 않는다. 작년 연말에 유행했던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지브리풍의 그림은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어도, 그 작품을 만든 창작자의 시간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 차이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하는 일과 기계가 하는 일의 차이, 나아가 인간과 기계가 상호 협력하여 새로운 지능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제공한다.
기계는 시와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위로의 문장을 만들며, 그럴 듯한 농담을 건네지만, 적어도 지금 인공지능 기술로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남아 있다. 그 첫째는 망설임이다. 소설가 김애란은 한 방송 대담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결정적 차이로 '망설임'을 꼽았다. 망설임은 단순히 답을 늦게 내는 게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말을 고르는 시간이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인지 스스로 묻는 시간이다. 인간은 때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이 말한다.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멈칫하고,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기에 판단을 미룬다. 이 머뭇거림은 비효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윤리다.
둘째는 설렘이다. 설렘은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생기는 것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감각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의 떨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의 두근거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잘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한몸으로 섞인 상태다. 인공지능은 설렘을 설명할 수 있고, 설레는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설렘의 몸과 의식을 가질 수는 없다. 밤새 뒤척인 시간, 괜히 창밖을 보는 버릇, 작은 가능성 하나에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그 생생한 불균형은 인간의 몫이다.
셋째는 경이로움 앞에 멈춤이다. 인간은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룬 사람 앞에서, 혹은 깊은 슬픔과 아름다움 앞에서 말을 잃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연주, 문장, 경기, 삶의 태도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선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견뎌냈을 시간과 반복, 실패와 고독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시간을 미래로 밀면 인간의 망설임, 설렘, 멈춤을 흉내 내는 더 발달한 알고리즘의 인공지능이 등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계가 흉내 낸 감정과 인간 안에 내재한 경험의 감정 사이에는 깊은 간극은 항상 존재한다. 감정의 모든 스펙트럼을 언어로 규정하여 인간을 흉내 낸다고 해서 기계가 인간이 될 수는 없다. 마치 인간을 완벽하게 원소의 비율 단위로 해부한다고 해도 원소 비율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듯이, 기계의 완벽한 모방이 인간의 모든 것을 대신하지 못한다. 인간은 기계처럼 결과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절대 아니며 망설이고, 기대하고,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시간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계가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인간의 힘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반복해 말하지만, 그것은 다정함이다. 다정함은 감상적인 태도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가장 오래된 기술이며, 가장 강한 사회적 전략이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의 다정함은 상대의 존재를 알아보고, 그의 망설임을 기다리며, 그의 설렘을 인정하고, 그의 멈춤에 함께 머무는 능력이다. 망설임, 설렘, 멈춤이라는 다정함은 감탄이라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드러난다.
감탄은 내가 너를 알아보는 순간이고, 너의 노력 앞에 잠시 멈추는 일이며, 우리가 같은 세계를 함께 건너고 있음을 확인하는 발판(Scaffolding)이다. 나와 같은 인간이지만, 내가 도달하지 못한 저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뎠을까. 얼마나 자주 실패하고 다시 시작했을까. 그 생각이 들 때 감탄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인정과 존중이 된다.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에는 성능이 있지만, 인간이 만든 성취에는 시간이 있다. 우리는 바로 그 시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 방황은 실패의 다른 이름만은 아니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천사들이 "끊임없이 애쓰며 나아가려는 자, 우리는 그를 구원할 수 있다"라고 노래하듯, 인간의 아름다움은 완성에 있지 않고 계속 애쓰는 과정에 있다. 완성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계속 나아가기 때문에 아름답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일은 선명하다. 나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편집하며 결정하는 일, 질문을 채집하고 경험을 수집하는 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꿈꾸고 걱정하는 일, 그리고 다른 인간의 노력 앞에서 경탄하며 서로를 세워주는 일이 그것이다
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지능도시본부장, 유럽리빙랩네트워크 대구창의리빙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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