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제로 간호사 태움 막을 수 있다 [양종곤의 노동 톺아보기]
‘응급·교육’ 이유로 괴롭힘 용인…병원 특수성 한계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사직률 19.5%→ 7% 급감
“인수인계 말투부터 달라져”…조직 전체 분위기 개선
근로시간 단축…개인 문제, 시스템으로 해결 가능성
“자체 재원 한계”… 대체인력 지원 등 정부 지원 필요

“조금 더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간호사들끼리 인수인계를 할 때도 말투가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동안 업무가 너무 많고 긴장감이 높아서 사직을 고민했었습니다. 이제는 주 4일제 덕분에 집도 챙길 수 있습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주 4일제 시범사업을 분석한 보고서에 실린 간호사들의 말이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은 주 4일제 도입 이후 휴식이 늘고 업무 부담이 줄어 퇴사 고민을 덜었다. 이 성공 사례는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힌다는 은어)이 주 4일제 도입으로 해소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병원에서 주 4일제 도입이 시급한 이유는 이미 상당수 의료 현장의 근로 문화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올해 5월 보건의료노조가 간호사 2만 92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1%가 3개월 내 이직을 고려했다고 답했다. 특히 태움의 주 대상이 되는 3~5년 차 간호사의 이직 고려율은 81.4%에 달했다. 이직을 고민하는 주요 원인은 근무 조건과 임금, 직장 문화 순이었다.
간호사의 폭언 경험률 또한 62.3%에 이른다. 2018년 동일한 조사에서도 태움 경험률이 41.4%, 폭언 경험률이 65.5%에 달했다. 당시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괴롭힘에 시달리던 간호사들의 잇따른 비극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도입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문제는 병원이라는 특수성이 괴롭힘을 용인하게 만드는 방패막이가 된다는 점이다. 선배의 응급 상황 지시나 교육과 직장 내 괴롭힘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간호사 A씨는 동료 간호사 19명으로부터 동시에 고성을 듣는 일을 겪었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2022년 1월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외상센터는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성이 요구되는 곳”이라며 “교육하는 입장에서 재량껏 지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태움을 개인의 인성 문제나 정당한 교육으로 치부하는 사이에 현장의 비극은 반복됐다. 경기 광주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B씨는 지난달 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지만 그의 주장은 일부만 인정됐고, 병원은 가해자에게 ‘훈계’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세브란스병원은 개인의 도덕성이나 법적 처벌만으로는 풀지 못했던 태움 문제에 대해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구조적 해법을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일하는시민연구소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세브란스병원은 2023년 3개 병동에 주 4일제를 도입한 뒤 올해 6개 병동으로 확대했다. 같은 기간 참여인원은 15명에서 30명으로 늘었다. 이들 주 4일제(주 32시간 근무)를 참여자에게 6개월 단위로 순환 적용하는 방식이다. 참여자들은 기존 임금의 90%를 받지만 연차휴가는 기존 주 5일제와 동일하게 보장받는다. 병원은 인력 공백을 막기 위해 30명 대상 주 4일제 도입에 맞춰 대체인력 10명을 추가 선발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주 4일제 참여자뿐만 아니라 전체 조직 문화가 개선됐다. 6개 병동 조사 결과에 따르면 3년 미만 사직률은 19.5%에서 7%로 절반 이상 줄었다. 100점 만점 기준의 육체적 소진도는 79.7점에서 40.1점으로 급감했고, 여가시간 만족도는 4.5%에서 44.1%로 10배가량 뛰었다. 주 4일제 적용 병동은 비적용 병동에 비해 근태, 건강, 조직 안정성 등 모든 면에서 큰 격차를 보였다.
다만 세브란스병원과 같은 성공사례가 중소병원과 지방 의료기관으로 확산되려면 대체인력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병원에만 맡겨둘 수 없다. 개별 병원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체인력 지원금이 필요하다. 세브란스병원도 16일 김영훈 노동부 장관과 간담회를 열고 “대체 인력비 투입으로 추가 인건비가 발생하고 있는데 병원 자체 재원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대체인력 재정 지원, 가산 수가 신설 등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양종곤 고용노동전문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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