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경고 재점화…"버팀목·완충장치 하나둘씩 소진"

방성훈 2026. 7. 21. 13:3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브렌트유 89.22달러 마감…한 달여 만에 최고
호르무즈 주말 통항 20척…전쟁 전엔 하루 130척
美 전략비축유 3억배럴대 뚝…1983년 이후 최저
"진짜 최악은 3분기 후반이나 4분기 초에 온다"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배가 사실상 끊긴 데다, 5개월간의 미국·이란 전쟁을 버텨온 세계 원유시장의 완충 장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암리타 센 에너지애스펙츠 창업자 겸 리서치 디렉터는 20일(현지시간) CNBC방송에 출연해 “유가가 세 자릿수로 갈 수 있느냐고? 당연하다”며 “(최근) 가격이 오른 걸 감안해도 시장은 여전히 상당히 안이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같은 방송 인터뷰에서도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까지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아직 최악을 본 게 아니다”라며 “진짜 최악은 3분기 후반이나 4분기 초에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AFP)
휴전 기대에 급락→후티 봉쇄 선언에 반등

이날 하루 유가는 크게 출렁였다. 오전에는 미국과 이란 사이에 10일간 교전을 멈추자는 제안이 오갔다는 보도가 나오며 브렌트유가 배럴당 86달러선까지 밀렸다. 그러나 예멘의 친이란 무장세력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홍해 해상 봉쇄를 선언하며 낙폭을 되돌렸다.

이날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9월물)은 배럴당 89.22달러에 마감해 지난달 11일 이후 가장 높은 종가를 기록했다. 앞서 전날 밤 장중에는 배럴당 91.42달러까지 치솟아 한 달여 만에 9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미국 원유 지표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8월물도 배럴당 83.2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원유 수송로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선박 데이터 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주말 사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배는 20척에 그쳤다. 이 가운데 18척은 이란이 정한 항로를 따랐고 2척만 오만 쪽 항로를 택했다. 전쟁 전 세계 원유 공급의 5분의 1이 지나며 하루 130척가량이 오가던 길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급감한 수치다. 또한 이란은 이날 유조선 2척을 무력화했다고도 했다.

中 수입 재개·비축유 소진·홍해마저 봉쇄 위기

시장 전망보다 유가가 낮게 유지돼온 데는 이유가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전쟁이 터졌을 때 애널리스트들은 유가가 150달러, 심지어 20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브렌트유는 장중 기준 126달러대에서 고점을 찍었고, 이달 초에는 전쟁 전 수준인 70달러까지 내려앉았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지난달까지 수입을 근 10년 만의 최저로 줄인 것이 가장 컸다. 전기 택시가 늘고 석유화학 가동이 줄면서 수요 자체가 빠졌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지난 4월 하루 1393만배럴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만큼 증산했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3월 4억배럴 공동 방출에 나섰다. 최대 걸프 수출국인 사우디는 홍해 얀부항 선적을 크게 늘려 호르무즈해협에서 잃은 물량을 메웠다.

문제는 이들 버팀목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비축을 헐어 쓴 만큼 조만간 매수를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IEA 방출분은 4분의 3이 이미 소진됐고, 미국 전략비축유(SPR)는 3억1140만배럴로 1983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사우디의 우회로였던 홍해마저 후티의 봉쇄 선언으로 위협받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만난 한 트레이더는 “우리가 갖고 있던 완충 장치를 다 태워버렸다”고 말했다. 센도 전쟁 전 4억배럴에 달했던 여유 재고에 대해 “지금은 거의 남은 게 없다”고 했다.

brent_chart
시장은 “아직 출구 있다” 차분…강세 베팅 21조원 그쳐

시장이 공포에 휩싸이지는 않았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레베카 배빈 CIBC프라이빗웰스 선임 에너지 트레이더는 “외교 채널이 거론되면서 트레이더들은 아직 출구가 있다고 여기게 됐고, 그 인식이 유지되는 한 공포 매수의 천장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경 발언이 번번이 뒤집히는 것을 지켜본 트레이더들이 위협만으로는 움직이지 않고 증거를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이네스 SPI자산운용 매니징파트너는 이날 아침의 하락이 “시장이 안심했다는 뜻은 아니다”라면서도, 이번 사태가 “체계적 충격의 시작이 아니라 원유와 물가, 역내 위험 사건으로 주로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레 한센 삭소방크 원자재전략 책임자는 잇단 소식에 시장이 무뎌지는 ‘헤드라인 피로’를 지적했다.

투자자들의 실제 베팅도 조심스럽다. 브렌트유 강세 포지션은 이달 들어 올해 최저로 줄었다가 지난 14일까지 한 주 동안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지만, 규모는 148억달러(약 21조9000억원)로 지난 3월 말 6년 만의 최고치보다 여전히 50% 넘게 적다. 일리야 부슈에프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 연구원은 “지금 다들 강세를 말하지만 아무도 매수 포지션을 잡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당장 시장에 풀린 원유가 넉넉하다는 점도 유가를 누르고 있다. 다만 베테랑 트레이더 아디 임시로비치는 “지금은 당장 쓸 원유가 많이 있다”면서도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