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화석과의 눈 맞춤…당당한 야생의 기품 뿜어내는 산양

한겨레 2026. 7. 2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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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세계적 희귀동물 산양, 국내 약 1300마리 생존 추정
지난 5월30일 5박6일 일정으로 강원도 화천을 찾았다가 해산령에서 멸종위기 1급 산양을 만났다.

지난 5월30일 5박6일 일정으로 강원도 화천을 찾았다. 해산령 30㎞ 굽잇길을 넘으며 산양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길가와 숲을 유심히 살폈지만, 처음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산양 출현 지역임을 알리는 현수막만 눈에 들어올 뿐.

다행히 이튿날 이른 새벽, 다시 해산령을 오르던 중 도로에서 산양 한 마리를 만났다. 차를 발견한 산양은 잠시 놀라 뒤로 물러섰고, 나는 조용히 차를 멈추고 기다렸다. 산양도 발걸음을 멈춘 채 큰 눈망울로 이쪽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거리는 약 15m. 흔치 않은 만남이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차량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산양.
발걸음을 멈춘 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필자를 한동안 응시한다.
필자의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본다. 낯선 방문객을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긴 듯 한동안 시선을 떼지 않는다.

그 순간 2013년 1월8일, 산양을 보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건봉산 정상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성은 금강산을 품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날 처음으로 산양을 만났지만, 멀리서 바라보며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산양의 행동을 관찰하고 사진에 담은 것은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곁눈질을 하는 산양.
돌아 서면서도 마주했던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경계심 어린 곁눈질을 보낸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필자를 뒤돌아보는 산양.

산양이 제 갈 길을 가자 다시 시동을 걸고 해산령을 올랐다. 운 좋게 가는 길에 산양 두 마리를 더 만났다. 산양은 일출과 일몰 직후 가장 활발하게 먹이활동을 하는데, 먹이활동 시간대를 잘 맞춘 것 같다. 해산령을 넘어 화천 비수구미로 향하던 중, 산등성이에 앉아있는 산양 한 마리를 만났다. 산양은 차 안의 필자를 경계하기보다 조용히 바라봤다. 오랜 세월 해산령을 지켜온 듯 의연한 모습이었다. 몸집이 유난히 크고 건장했다. 산양은 암수 모두 뿔이 있지만 수컷의 뿔이 더 크다.

의연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필자를 바라본다.

뿔에 선명하게 새겨진 나이테와 윤기가 감도는 짙은 회갈색 털, 균형 잡힌 체격, 뿔 발달 상태 등으로 보아 10살 이상 된 수컷으로 보였다. 몸무게도 40㎏은 넘어 보였다. 특히 한쪽 뿔에서는 부러진 흔적이 보였는데, 그만큼 험준한 산속에서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까이서 바라보면 독특한 생김새가 한눈에 들어온다. 몸집은 단단하고 균형 잡혔으며, 다리는 짧고 굵어 험준한 바위 지형을 오르내리기 적합해 보였다. 산양의 털은 속털과 겉털로 이뤄진 이중모 구조다. 몸통 털은 전체적으로 누런빛이 감도는 회색을 띠는데, 그 위로 검은색 긴 겉털이 자라나 몸 전체를 덮고 있다. 머리 뒤에서 시작한 검은 털은 등을 따라 꼬리까지 이어진다.

험준한 산속을 살아온 연륜이 몸짓과 눈빛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다른 산양에 비해 몸집이 한층 큰 듯한 인상을 준다. 한쪽 뿔 끝이 부러진 모습은 험준한 산속에서 치열한 생존을 이어온 세월의 흔적이자 삶의 징표처럼 느껴진다.
늠름한 자태에서 산양 특유의 기백이 느껴진다.

목에는 흰색 반점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흑백의 꼬리 털과 소를 닮은 커다란 눈, 온순한 인상의 얼굴은 산양만의 특징이다. 귀는 길고 크며, 뒤로 완만하게 휘어진 뿔에는 나이테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뿔 끝으로 갈수록 검은빛이 짙어지는데, 험준한 산악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은 독특하고 당당한 야생의 기품이 느껴진다.

산양은 한동안 자리를 지키다 이내 몸을 일으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한동안 주변을 살피던 산양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시 늠름한 모습을 드러낸 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유유히 사라졌다. 산양이 서 있던 산길은 평탄해 보였지만, 반대편은 아찔한 절벽이었다. 산양이 머물던 곳을 살펴봤다. 햇볕이 잘 들고 사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천혜의 자리였다. 오래전부터 이용해 온 쉼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이 지역의 험준한 산악 환경에 적응해 살아온 것이다. 사람을 피하기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던 그 눈빛은 깊은 산이 간직한 시간의 무게를 말없이 전해줬다.

산양의 뿔에 나타나는 나이테는 개체의 나이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산양은 한낮이면 바위 절벽에서 휴식하며 되새김질을 한다. 일정한 생활권을 유지하는 습성이 강해, 휴식 장소와 배설 장소를 오랫동안 반복해 이용하는 특성을 보인다. 경계심은 강해도 화들짝 놀라는 기색 없이 의연하며 여유롭다. 산양은 200m 밖 낙엽 밟는 소리를 듣고 도망갈 정도로 청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실제로 관찰하기가 무척 어렵다.

산양은 약 200만 년 전의 원시적인 형질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어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소과에 속하는 발굽 동물로 우리나라 산악생태계를 대표하는 희귀 포유류 가운데 하나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강원 양구·고성·화천·삼척, 충북 제천, 경북 울진·봉화에서 산양을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무분별한 밀렵과 폭설, 서식지 훼손으로 개체수가 많이 감소했다. 1967년 설악산 자연 생태를 조사한 학술 보고서에는 산양이 해마다 수백 마리씩 잡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으나 현재 설악산 내에는 산양이 260~300마리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적으로는 약 1300마리가 남아있다.

험준한 절벽 위에 당당히 올라선 어린 산양.
어린 산양은 어린 개체답지 않게 침착하다. 주변을 살피며 위험이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다음 행동을 시작한다.

주로 해발 600~1000m의 험준한 바위 절벽과 암반 지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 높은 절벽으로 둘러싸인 산림의 바위틈이나 동굴에서 2~5마리씩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며, 겨울철에는 폭설을 피해 계곡 아래나 비교적 완만한 산림지대로 내려오기도 한다. 산양 먹이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데, 봄과 여름에는 어린 풀과 나뭇잎, 각종 초본식물을 먹고, 가을에는 열매와 도토리, 겨울에는 낙엽과 마른풀, 나무껍질, 어린가지 등을 먹으며 긴 겨울을 견딘다.

험준한 바위산에서 살아가도록 진화했다. 다리는 짧고 굵으며 발굽은 둥글고 끝이 뾰족하다. 발굽 가장자리는 단단하고 날카롭지만, 발바닥은 탄력이 있고 끈적한 성질을 지녀 바위 면을 단단히 붙잡는다. 덕분에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서도 몸의 균형을 잃지 않고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다.

우리나라 산양은 다른 지역에 서식하는 산양류와 달리 얼굴에 분비샘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발굽 사이의 분비샘에서 냄새가 강한 분비액을 내며, 뿔을 나뭇가지나 바위에 문질러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다른 산양이 영역을 침범하면 짧고 날카로운 뿔을 맞대고 싸워 쫓아내기도 한다. 좋은 환경에서는 20년 정도 살기도 하지만, 야생에서는 질병과 먹이 부족, 천적, 혹독한 기후 등의 영향으로 이보다 훨씬 짧은 수명을 보인다.

험준한 암벽을 발판 삼아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어린 산양은 높은 절벽에서도 두려움 없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움직인다. 험준한 지형조차 자신의 터전인 듯 침착하게 오르내린다.

일반적으로 몸무게는 수컷은 28~42㎏, 암컷은 22~34㎏ 정도다. 암컷은 수컷보다 털빛이 흐리고 콧등에 회색이 돈다. 몸길이는 81~129㎝까지 다양하고, 꼬리 길이는 8~20㎝, 어깨높이는 50~78㎝다. 어른이 되면 뿔이 12~17㎝ 정도로 자란다. 뿔은 가지를 치지 않고 평생 갈지 않는다.

생후 약 3년이면 성적으로 성숙한다. 짝짓기는 10~11월에 이루어지며, 임신 기간은 약 250~260일이다. 이듬해 5~6월이면 한 마리, 드물게 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어미는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바위틈이나 절벽 아래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새끼를 출산하고, 천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

갓 태어난 새끼는 약 한 달 동안 바위틈이나 풀숲에 몸을 숨긴 채 지내며, 어미는 일정한 간격으로 찾아와 젖을 먹인다. 새끼는 약 1년 동안 어미를 따라다니며 먹이를 찾는 방법과 험한 바위를 오르는 기술을 익힌 뒤 독립한다. 일반적으로 수컷은 생후 1~1년 6개월, 암컷은 1~3년 사이에 어미의 생활권을 떠난다. 암컷과 새끼, 어린 수컷이 함께 가족군을 형성하며, 성숙한 수컷은 단독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 계절과 서식 환경에 따라 여러 개체가 같은 지역에서 관찰되기도 하지만, 강한 영역성을 지녀 일정한 생활권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어미 산양은 어린 산양이 이동하는 모습을 곁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어린 산양은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틈틈이 어미가 있는 곳을 돌아본다. 어미의 존재를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

최근까지도 밀렵과 올무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겨울철에는 폭설과 먹이 부족으로 탈진하거나 굶어 죽은 채 발견되기도 한다. 주요 서식지가 비무장지대와 접해 있는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군부대가 협력해 겨울철 먹이터를 조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산양 보전은 단순히 개체수를 늘리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서식지 관리와 지속적인 모니터링, 생태 연구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안정적인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겨울철 먹이 공급과 서식환경 개선은 형식적인 지원을 넘어 장기적인 보전 계획 속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양은 1968년 11월20일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됐으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보호받고 있다. 또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등재된 국제적 멸종위기 동물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봐도 산양속(Naemorhedus)에 속하는 종이 많지 않아 보전 가치 또한 매우 크다. 우리나라 산양과 같은 종인 아무르산양은 과거 러시아 하바롭스크 내륙과 연해주 암반지대에 널리 분포했으나 현재는 러시아 극동 연해주 시호테알린 자연보호구와 라좁스키 자연보호구에만 서식한다.

산양의 맑고 큰 눈망울에서는 험준한 산속을 품은 자연의 순수함과 평온함이 느껴진다.

많은 사람에게 산양은 그림책 속 동물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2026년 현재도 산양은 한반도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야생동물 한 종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한반도 산악생태계를 함께 이루어 온 생명의 역사 그 자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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