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하고 시원” 한국인은 맛을 ‘몸 신호’로 표현… “흙내음 느껴져” 프랑스인에 음식은 ‘땅의 이야기’[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와이너리 투어에 참가한 적이 있다. 와인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시음을 마친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미네랄감이 좋네요.”, “오크 향이 살아 있네요.”, “흙내음이 느껴져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땅의 맛이라니, 나무의 맛이라니. 이건 와인을 마시는 건지, 상상력 테스트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와인이 바뀔 때마다 ‘이번에는 무슨 표현을 해야 하지?’ 하는 부담감마저 들었다. 호기심에 체험하러 왔다가 제 발로 시험장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이후 와인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 표현들이 조금씩 익숙해졌지만, 그날의 난감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문득 뜨거운 생태탕으로 해장하며 ‘시원하다’는 표현을 외국인 친구에게 설명하다 보니 그때 와이너리가 떠올랐다. 설명할수록 친구의 표정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와인의 ‘테루아(Terroir)’ 설명을 들으며 지었던 내 표정도 딱 저렇지 않았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refreshing’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만, 속이 풀리고 몸이 개운해지는 그 묘한 해소감까지 담아내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맛은 번역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이 음식을 읽는 방식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음식을 먹고 ‘몸의 반응’을 먼저 이야기한다. 속이 편한지, 개운한지, 든든한지, 얼큰한지, 시원한지. 한국인의 미식은 혀보다 몸의 감각과 더 가깝다. 대표적인 예가 ‘시원하다’이다. 우리는 뜨거운 국물을 먹고 “시원하다”고 말한다. 얼음잔의 맥주도 시원하고 뚝배기의 생태탕도 시원하다.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도 시원하다고 하고, 막혔던 이야기를 털어놓고도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시원하다는 단어는 이미 온도를 벗어난 지 오래다. 몸이 가벼워지고, 답답했던 것이 풀리고, 마음까지 개운해지는 상태를 설명하는 우리만의 문화적 언어다.
생각해 보면 각 나라가 음식을 읽어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우리는 흔히 맛을 혀로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언어를 통해 맛을 이해한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문화에 따라 바라보는 방식은 전혀 다르게 발달해 왔다.
프랑스인이 음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땅’이다. 프랑스 식문화를 대표하는 단어인 ‘테루아’는 단순히 토양을 뜻하지 않는다. 햇볕과 바람, 기후, 지역의 역사와 생산자의 철학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와인 한 잔을 마시며 “맛있다”고 말하기보다 “이 와인에는 부르고뉴의 석회질 토양이 살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음식은 혀가 아닌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일본인은 음식에서 ‘계절’을 읽는다. 일본 식문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슌(旬)’은 제철을 넘어 ‘지금 이 순간 가장 맛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초가을 꽁치와 봄의 죽순, 겨울의 게를 기다리는 것은 단순히 신선한 식재료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계절이 가장 아름답게 무르익은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다. 일본인에게 음식은 시간을 맛보는 일에 가깝다.

언어학에서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자주 경험하는 것일수록 더 세밀한 이름을 붙이고, 이름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그것을 더욱 정교하게 구분하게 된다. 프랑스인은 음식에서 땅의 이야기를 음미하고, 일본인은 계절이 선물한 순간을 기다리며, 한국인은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 왔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점점 더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미식의 세계화는 단순히 레시피를 공유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음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와 그 단어가 품고 있는 문화적 맥락까지 이해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번 주말에는 장어구이와 와인으로 일본의 여름과 프랑스의 ‘테루아’를 느껴볼 생각이다. 그러고 나면 결국 한국인답게 시원∼한 콩나물 국물을 찾게 되겠지.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우마미(Umami)’는 일본어지만 이제는 전 세계 미식가들이 사용하는 단어다. 프랑스의 ‘테루아(Terroir)’, 이탈리아의 ‘알 덴테(Al dente)’, 일본의 ‘오마카세(Omakase)’ 역시 번역되지 않은 채 원어 그대로 세계인의 식탁 위에 올랐다. 그 나라의 맛과 문화를 온전히 담아낼 다른 표현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언젠가 외국인들이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갈 들이킨 뒤 “It’s so siwonhada!”라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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