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어낸 '비현실적 건축물' [나홀로 세계여행 카자흐스탄 망기스타우]

파미르하이웨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마지막 방문국인 카자흐스탄에서 3~4일 정도 트레킹을 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알마티 주변의 산이나 초원을 떠올렸다. 카자흐스탄이라고 하면 대개 톈산의 설산과 광활한 초원을 먼저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 보니 내 시선은 점점 서쪽으로 향했다. 카스피해 연안의 도시 악타우Aktau, 그리고 그 너머 망기스타우Mangystau의 낯선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카자흐스탄 서쪽 끝, 카스피해와 우스튜르트 고원Ustyurt Plateau 사이에 펼쳐진 망기스타우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카자흐스탄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이곳은 숲의 땅도, 강의 땅도 아니다. 바람과 석회암, 오래전 바다의 흔적이 빚어낸 황량한 지질박물관이다. 수천 개의 둥근 돌들이 흩어져 있는 토리시Torysh, 성곽처럼 솟은 아이라크티Airakty, 송곳니 같은 암봉이 서 있는 보즈지라Bozzhyra, 붉고 흰 지층이 켜켜이 쌓인 키질쿱Kyzylkup까지, 풍경은 지구라기보다 오래된 행성의 표면에 가까워 보였다.

문제는 그곳에 가는 일이었다. 꼭 보고 싶은 장소를 추려 투어사를 찾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구글지도에도 제대로 검색되지 않는 지명이 많았고, 현지 여행사마다 일정과 표기가 조금씩 달랐다. 여러 여행사와 수십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어렵사리 2박 3일 망기스타우 투어를 예약했다. 그렇게 나의 카자흐스탄 여행은 산과 초원이 아니라, 카스피해 너머의 오래된 바다 바닥으로 향했다.
망기스타우 투어의 시작은 악타우였다. 알마티에서 악타우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이 걸렸다. 오전에 팀에 합류하기 위해 알마티에서 밤비행기를 탔다. 악타우에 도착해 2~3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곧바로 투어를 시작했다. 이번 투어에서는 이탈리아인 남녀가 있는 팀에 합류했다. 두 사람도 동행이 아니라 각자 투어를 신청했다고 했다.

망기스타우, 낯선 행성의 문을 열다
카스피해 연안의 도시 악타우를 떠나자 풍경은 빠르게 비워졌다. 도시는 뒤로 물러나고, 길은 곧장 사막을 향해 뻗어갔다. 그 길은 도저히 끝이 없을 것처럼 이어졌다.
첫 번째 목적지는 토리시계곡. 흔히 '공의 계곡Valley of Balls'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수천 개의 둥근 돌덩어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지름이 최대 4m에 달할 정도로 큰 것도 있었다. 오래된 행성이 부화 직전의 알들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오래전 바다였던 땅속에서 작은 조각에 광물이 겹겹이 달라붙고, 수천만 년의 압력과 시간이 그것을 단단한 공으로 빚어낸 것이다. 눈앞의 돌들은 이곳이 바다였던 시절의 기억을 품고 있는 듯했다.
다음 지역은 코칼라Kokala였다. 가까워질수록 땅의 색이 달라졌다. 흰색과 회색, 갈색, 붉은빛이 섞인 지층이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가니 흰 절벽 아래 갈색 흙이 흘러내리고, 회색의 주름진 표면 위로 붉은 자국이 번져 있었다. 바람이 깎고 햇빛이 말린 지형은 거칠었다. 그러나 그 거친 표면 속에는 이상한 부드러움이 있었다. 코칼라의 지층은 사막의 속살 같았다.

코칼라 산책을 마치고 나오니 야외에 생각보다 화려한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샐러드와 빵, 햄, 각종 과일뿐 아니라 아이스박스에 보관된 시원한 수박까지. 사막의 한가운데서 마주하기엔 호사스러운 밥상이었다.
다시 길을 나서니 낯선 마을처럼 보이는 흰 건물들이 나타났다. 가까이 보니 그것은 마을이 아니라 묘지였다. 돔과 첨탑,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무덤들은 사막 한가운데 작은 성처럼 서 있었다. 망기스타우에서는 죽은 자의 집도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오후가 되자 셰르칼라산Mount Sherkala이 모습을 드러냈다. 셰르칼라는 망기스타우의 상징 중 하나다. 사막 한가운데 홀로 우뚝 선 이 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카자흐스탄 유르트처럼 보이기도 하고, 잠자는 사자나 스핑크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셰르칼라'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사자의 요새'라는 뜻이라 한다. 전설에 따르면 오래전 산 정상에는 동굴로만 오를 수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었다. 침략자들은 이 산을 포위하고 요새 입구를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고, 물을 대던 우물을 막은 뒤에야 함락할 수 있었다. 그들은 수비군의 용기와 강인함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 산을 '사자의 요새'라 불렀다고 한다.

물론 정상의 요새나 포위전에 대한 뚜렷한 역사 기록은 없다. 이 산은 망기스타우의 건조한 땅을 오가던 캐러밴의 길잡이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도 전설은 풍경을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들었다.
해가 조금씩 기울 무렵, 차는 '성의 계곡Valley of Castles'이라 불리는 아이라크티로 향했다. 석회암 절벽이 겹겹이 솟아 있었고, 탑처럼 뾰족한 봉우리들이 능선을 따라 서 있었다. 토리시가 돌의 신비였다면, 코칼라는 지층의 색이었다. 셰르칼라가 사막의 요새였다면, 아이라크티는 폐허가 된 왕국 같았다.
나는 그 풍경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멀리 보이는 절벽과 뾰족한 봉우리, 평원 위의 말들, 점점 낮아지는 햇살이 하나의 그림처럼 겹쳐졌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온 곳이었지만, 막상 그 앞에서는 카메라보다 눈이 먼저 바빴다.
상상 이상의 생경한 풍경을 마주하니 내 심장이 그 어느 여행보다도 쿵쾅거리며 뛰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낯선 곳은 흔하지 않다. 낯섦은 오래 그곳을 들여다보게 한다. 망기스타우는 바로 그런 곳이다.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보즈지라였다. 망기스타우를 대표하는 풍경이자,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소였다. 그곳에 닿기 위해서는 긴 이동과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했다. 망기스타우의 풍경은 쉽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는 여전히 마른 땅과 낮은 풀, 먼지 낀 길이 이어졌다.

보즈지라, 사막의 심장으로 들어가다
길가에는 도로 옆 풀을 느긋하게 뜯는 낙타들이 보였다. 이 땅의 속도에 맞춰 사는 모습이었다. 조금 더 달리자 이번에는 석유 펌프잭이 나타났다. 검은 쇠 구조물이 규칙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오래된 바다의 바닥이었던 땅 아래에는 석유가 묻혀 있고, 그 위에서는 낙타가 풀을 뜯고, 여행자는 사진을 찍는다. 망기스타우는 그렇게 여러 시대가 한 장면 안에 겹쳐 있는 곳이다. 지질의 시간, 유목의 시간, 산업의 시간이 같은 길 위에 놓여 있다.
오랜 이동 끝에 보즈지라의 첫 전망 지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절벽 끝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눈앞에는 넓고 거대한 흰빛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깎아낸 절벽과 평평한 고원, 둥근 언덕과 낮은 계곡이 끝없이 이어졌다.
보즈지라는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사람이 만든 어떤 건축물보다 거대했고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지구였지만, 눈앞의 풍경은 자꾸 다른 행성을 떠올리게 했다.
절벽 아래로는 송곳니처럼 솟은 바위들이 보였다. 망기스타우 사진에서 자주 보던 보즈지라의 상징적인 암봉이었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특이한 바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내려다보니 규모가 전혀 달랐다. 절벽 위에 선 사람은 점 하나처럼 작았고, 바위들은 오래된 짐승의 이빨처럼 하얀 평원 위에 박혀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차는 보즈지라의 낮은 지대로 들어갔다. 흰 비포장도로가 바위산 사이로 이어졌고, 차는 천천히 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다. 멀리 있던 암봉들은 점점 커졌고, 평평하게 보이던 고원은 가까이 갈수록 수많은 주름과 갈라진 선을 드러냈다.
보즈지라의 바위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탁자처럼 윗부분이 평평했고, 어떤 것은 탑처럼 솟았으며, 어떤 것은 무너진 성벽처럼 길게 누워 있었다. 하얀 사면 위에는 물결 같은 침식 자국이 흘러내렸다. 오래전 이곳이 바다였다는 설명은 더 이상 지식이 아니었다. 눈앞의 풍경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길은 계속 깊어졌다. 도로라고 부르기 어려운 흰 흙길이 사막 안으로 이어졌다. 망기스타우의 시간은 빠르지 않다. 바람이 깎고, 햇빛이 말리고, 비가 드물게 스치고, 다시 바람이 지나가는 식이다. 그 느린 반복이 이 거대한 풍경을 만들었다.
해가 기울 무렵 보즈지라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주었다. 낮 동안 희고 차갑게 보이던 절벽들이 서서히 푸른빛을 머금었다. 멀리 있는 암봉의 끝이 먼저 빛났고, 그 아래 사면은 천천히 어두워졌다. 낮의 보즈지라가 거대한 지질의 박물관 같았다면, 해질 무렵의 보즈지라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 빛이 닿는 곳마다 표정이 달라졌다.
그날 밤은 보즈지라 하부에서 보냈다. 차는 바위산 아래에 멈췄고 텐트가 세워졌다. 낮 동안 우리를 압도하던 바위산은 어둠 속으로 물러나 거대한 실루엣이 되었다. 밤공기는 낮과 달리 서늘했다. 텐트 밖으로 나와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보즈지라를 무대로 조명을 밝혀 주었다. 달빛 아래에서 오늘 만났던 보즈지라를 다시 기억했다. 모든 것이 하나의 긴 장면처럼 몸에 남았다.

키질쿱, 색으로 작별하다
셋째 날은 보즈지라의 아침으로 시작되었다. 전날 밤 달빛 아래 잠들었던 바위산은 여명의 햇살 속에서 다시 흰 절벽의 얼굴로 돌아왔다. 사막의 공기는 낮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아침식사를 하기 전까지 보즈지라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전날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던 거대한 풍경 속을, 이번에는 두 발로 들어가 보는 시간이었다. 멀리서 보던 흰 절벽은 가까이 다가가자 더 많은 주름과 결을 드러냈다.
걷는 길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흰 흙길을 따라가다가 마음이 끌리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발밑에서는 마른 흙이 바스러졌고, 낮은 풀들은 바람에 조용히 흔들렸다. 보즈지라는 멀리서 볼 때는 압도적인 풍경이었지만, 가까이 걸어 들어가자 의외로 섬세한 땅이었다. 절벽의 주름, 사면을 따라 흘러내린 침식의 선,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흙빛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암봉과 절벽 사이를 걷는 동안, 어제의 낯섦은 조금씩 가까움으로 바뀌었다.

캠프 앞에 아침 식탁이 차려졌다. 빵과 달걀, 치즈와 잼, 따뜻한 차가 놓였고, 그 너머로는 끝없는 사막이 펼쳐졌다. 식탁은 소박했지만 장소가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목적지는 키질쿱이었다. 구글지도에서 이름을 찾기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현지에서는 러시아어로 '우로치셰 키질쿱Urochishche Kyzylkup'이라 부르고, 색색의 지층 때문에 '티라미수 협곡Tiramisu Canyon'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보즈지라가 흰 절벽과 송곳니 바위의 세계라면, 키질쿱은 색의 세계였다. 가까워질수록 땅의 표정이 달라졌다. 흰빛이 주를 이루던 보즈지라와 달리, 이곳에서는 붉은색과 노란색, 흰색의 지층이 부드럽게 겹쳐졌다.
키질쿱으로 가는 길에 가이드는 1000텡게 지폐를 꺼내 보여 주었다. 지폐 뒷면에는 서부 카자흐스탄의 우스튜르트 고원을 떠올리게 하는 지형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지폐를 눈앞의 풍경과 맞춰 들었다. 종이 속 지형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 황량한 땅이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는 낯선 오지가 아니라 매일 만나는 국가의 얼굴 중 하나였다.
차에서 내려 언덕 사이를 걸었다. 키질쿱은 보즈지라처럼 한순간에 사람을 압도하지 않았다. 대신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붉은색과 흰색, 옅은 노란색 지층이 켜켜이 쌓인 언덕은 마치 잘라낸 케이크 단면처럼 보였다. 사막 끝에서 만난 이름치고는 지나치게 달콤했지만, 눈앞의 색을 보고 나니 한순간에 그 별칭이 이해되었다.
발밑의 땅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흙과 암석은 미세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흰 층 위에 붉은 층이 얹히고, 다시 그 위에 노란빛이 번져 있었다. 누군가 붓으로 칠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쌓아 올린 색이었다. 보즈지라가 수직의 풍경이었다면, 키질쿱은 수평의 풍경이었다. 솟아오른 바위보다 켜켜이 누운 지층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키질쿱의 완만한 언덕을 천천히 걸었다. 마치 케이크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부드럽고 조용했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안에도 오래된 시간이 담겨 있었다.
망기스타우의 땅은 마지막까지 단조롭지 않았다. 첫날 토리시에서는 둥근 돌로 오래된 바다의 기억을 보여 주었고, 둘째 날 보즈지라에서는 흰 절벽과 송곳니 바위로 지구의 거대한 얼굴을 드러냈다. 마지막 날 키질쿱에서는 색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망기스타우의 마지막 장면은 붉고 흰 지층 위에 남았다. 사막은 결코 비어 있는 땅이 아니었다. 오래된 바다가 떠난 자리를 돌과 색과 시간이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달리고 걸었던 3일은, 한 나라의 여행이라기보다 지구의 오래된 표면을 손끝으로 더듬어간 시간이었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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