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시대] ② AI 앞세우고 건설 따라간다…해외수주 판 바뀐다
무상 ODA 한계 넘어…AI 시대 새 원조모델
솔루션ㆍ데이터센터ㆍ전력 ‘3종 세트’
표준 심어 운영까지 장기 확보하는 구조
해외건설 ‘도급형’도 패키지형으로 전환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정부가 개발도상국 원조의 무게중심을 무상에서 유상으로 옮기며 내놓은 첫 실행모델은 ‘한국형 인공지능(K-AI) 패키지’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방식의 전환이 아니라, 원조 자체를 AI 인프라 수출의 통로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그 여파로 반세기 넘게 ‘도급형’에 머물러 있던 해외건설의 수주 방식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이번 전략은 이재명 정부가 밀어붙여온 ODA 체질개선의 결정판이다. 20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유상 ODA 중심 K-AI 패키지 추진전략’을 공개안건으로 상정했다. 단순히 무상 원조를 유상 차관으로 바꾸는 재원 조정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사업을 기획하고 민간과 함께 투자ㆍ운영까지 참여하는 민관협력(PPP) 방식 자체를 새로 짰다는 게 핵심이다. 개도국에 돈을 빌려주고 공사를 맡기던 원조에서, 정부가 사업을 설계하고 기업이 지분을 쥔 채 장기간 운영수익을 가져가는 투자개발형 구조로 넘어간 셈이다.
K-AI 패키지의 골자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우선 사업 구성은 ‘AI 솔루션+AI 데이터센터+전력 공급시설’의 3종 세트로 짜인다. AI 솔루션은 수자원ㆍ보건ㆍ에너지ㆍ교통ㆍ농업ㆍ문화ㆍ교육 등 7개 분야를 아우른다. 정수처리ㆍ진단보조ㆍ지능형발전소ㆍ스마트교통 등 상용화 수준이 높은 기술 위주다. 여기에 데이터센터가 뒷받침되고, 전력 공급시설은 신재생에너지ㆍ소형모듈원전(SMR) 등을 얹는 옵션으로 붙는다. 재원조달은 EDCFㆍMDB 신탁기금ㆍ협조융자ㆍ개발금융 등을 사업 성격에 맞춰 섞어 쓰는 ‘블렌딩’방식이다.
이 구조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표준’이다.
정부는 수원국의 AI 전략, 데이터센터 규격, 데이터 보안표준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국산 규격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소형 언어모델(sLLM)ㆍ신경망처리장치(NPU) 등 국산 AI 기술과 부품을 최대한 얹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스스로 이를 ‘룰 세터(Rule Setter)’ 전략이라고 규정한다. 표준을 쥔 쪽이 이후 시스템 업그레이드ㆍ부품 교체ㆍ데이터 운영까지 장기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외건설의 셈법도 달라진다.
한국 해외건설은 그동안 발주처가 준 설계도대로 시공을 마치고 대금을 받으면 관계가 끝나는 ‘도급형’ 모델로 성장해왔다. 국제 조달시장 진입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저가 수주 경쟁이 반복되며 채산성이 낮아지는 게 고질적 한계였다. K-AI 패키지는 이 공식을 정면으로 바꾼다. 도로ㆍ정수장 같은 전통 인프라 하나를 따로 짓는 게 아니라, 여기에 AI 관제ㆍ데이터센터ㆍ전력까지 얹어 통째로 수주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 사업 메뉴를 보면 도로공사의 교통관제ㆍ스마트시티 노하우, 수자원공사의 정수처리ㆍ누수탐지ㆍ댐 수위조절 기술, 발전 공기업의 신재생ㆍ디지털발전소 운영 경험이 그대로 패키지의 한 축으로 들어갈 여지가 크다. 이는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제5차 해외건설진흥기본계획이 해외건설을 설계ㆍ조달ㆍ시공(EPC)에서 운영ㆍ유지보수(O&M)까지 아우르는 패키지형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방향과도 맞물린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전략이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꿀 ‘질적 전환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사 한 건을 따내는 데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AI 데이터센터 운영, 전력망 관리, 시스템 업그레이드까지 이어지는 반복 수익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관건”이라며 “EDCFㆍMDB 협조융자 같은 복합금융을 미리 짜서 장기 프로젝트형 수익모델로 끌고 가지 못하면, 설계ㆍ시공 역량만으로는 이 판에 들어가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동안 말로만 강조되어 왔던 건설사의 PM 역량이 결국 해외수주의 판가름을 가르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기업에 균등한 기회가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AIㆍ데이터센터ㆍ금융조달 역량을 갖춘 대형사와 공기업, IT기업 중심으로 사업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패키지 사업은 리스크 관리와 초기 자본 부담이 커 검증된 대형사가 리드사로 나서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리드 건설사를 축으로 삼되, 설계ㆍCMㆍ스마트솔루션ㆍAI 운영 등 분야별 특화 기업이 패키지 안에서 각자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동반진출 지원방안을 함께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대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