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밤새 불길 보느라 한숨도 못 자”...연기·분진에 시달린 주민들
사흘째 이어진 대피 생활
“주만들 알아서 대피” 불만
복잡한 구조 탓 진화 난항


“침을 뱉어 보니 연탄물처럼 검은색이었어요. 수건에도 까만 먼지가 묻었고요.”
20일 인천 서구 신현초등학교 별관 강당에서 만난 손춘화(70) 씨는 처음 불이 붙은 당시를 떠올리며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집에서 사선으로 50m도 떨어지지 않은 인천 석남동 쿠팡 물류센터가 밤새 불타는 모습을 창밖으로 지켜봐야 해서다. 처음엔 밝았던 불꽃이 한때 파란 빛을 띨 정도로 거세게 타올랐다. ‘쾅’ 하는 폭발음이 날 때마다 옥상 구조물도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손 씨는 “창가에 앉아 계속 불길을 지켜보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급히 대피소로 몸을 피한 이들의 일상은 화재 발생 사흘째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잡히는 듯하던 불길이 다시 번진 상황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인근 주민 이 모(72) 씨는 전날 밤 귀가하려다 다시 치솟은 불길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이제 괜찮아지나 싶으면 또 타오른다”며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더 불안하다”고 했다. 신현초 강당에 빼곡히 들어선 적십자 텐트 사이에서는 굳은 표정의 주민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피소에 머물면서도 하루에 몇 차례씩 집으로 돌아가 분진을 닦아낸다고 했다. 창문을 닫아도 검은 재가 벽면이나 바닥에 계속 쌓였기 때문이다. 손 씨는 이날 아침에도 집에 들러 걸레질을 하고 목욕한 뒤 강당으로 돌아왔다. 그는 “차에 물을 뿌려 닦아도 다시 검은 먼지가 내려앉는다”며 “며칠씩 그대로 두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조금이라도 치우고 있다”고 전했다.
초기 대피가 사실상 주민들의 자력에 맡겨졌다는 불만도 나왔다. 인근 동남아파트 주민 김영순(69) 씨는 화재 당일 홀로 지내는 이웃들을 대피시키느라 아파트와 학교를 쉴 새 없이 오갔다. 김 씨는 “단지마다 알아서 대피 안내를 했고 통장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주민들을 데리고 나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연휴로 젊은 자녀들이 집을 비운 사이 노년층 주민들의 대피가 지체될 뻔한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인근 교육 시설도 화재 여파로 비상이 걸렸다. 서해구에 따르면 이날 물류센터 주변 신석초등학교 1곳과 어린이집 14곳이 휴업·휴원했다. 해당 초등학교는 다음 날 1교시만 운영한 뒤 곧바로 여름방학에 들어가기로 했다. 유치원 1곳은 실내 활동을 중심으로 교육 일정을 조정했다.
인천 서해구는 이날 23시를 기해 물류센터 인근에 내린 주민 대피령을 해제했다. 이달 18일 06시 54분경 시작된 화재가 약 61시간 만에 잡히면서다. 전날 물류센터 램프 구역 반경 116m 이내를 대상으로 대피령이 발령된 지 하루만이다.
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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