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물의 천국’ 구마모토와 송전망 갖춘 가오슝 선택
류정 특파원 르포

“구마모토는 일본에서 물이 최고인 곳이에요. 아소산에서 200년에 걸쳐 용출된 천연수가 지하에 가득하죠.”
지난달 30일,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이곳에서 만난 주민 고토(67)씨는 ‘TSMC가 온 이유를 아느냐’는 질문에 물 이야기부터 꺼냈다. 고토씨뿐 아니었다. 이곳 주민들은 구마모토가 일본에서 물로 축복받은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구마모토시는 수돗물을 100% 지하수로 공급한다. 871억t에 달하는 물이 지하에 고여 있는 덕분이다. 주로 쓰는 제1·2 대수층에만 100억t이 존재하고, 해마다 6억t 이상의 물이 새로 채워진다.
현재 구마모토현 인구 167만명과 기업들이 쓰는 지하수 용량은 연간 3억~4억t 정도다. ‘물이 남아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TSMC와 일본 기업들의 합작사 ‘JASM(일본어로 ‘자스무’)’의 물 사용량은 연간 310만t으로, 구마모토 전체 지하수의 0.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오카노 히데유키 규슈경제협회 상무는 “구마모토 지하수는 애초에 걸러낼 게 별로 없어 반도체 초순수(Ultra Pure Water)를 만드는 정수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고 했다.

◇안정적 전기와 반도체 생태계
24시간 가동하는 반도체 공장에서 전기는 필요 최소 조건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국 원전이 모두 멈췄을 때, 가장 먼저 안전 심사를 신청하고 원전을 재가동한 곳이 규슈다. 현재 규슈의 원전 발전 비중은 25%로, 일본 전국 평균(9%)보다 크게 높다.
일조량이 풍부해 태양광 발전소도 많다. 봄·가을 낮에는 오히려 발전량을 제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력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보니, 규슈의 전기 요금은 전국 평균 대비 14% 저렴하다.
구마모토현청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1960년대 미쓰비시전기가 파워반도체 공장을 지은 이래 반도체 관련 기업이 200개 이상 입주해 있다. 규슈 전체로는 1000여 개에 달해, ‘실리콘 아일랜드’로도 불린다.
반도체 설계, 소재뿐 아니라 도쿄일렉트론 같은 유명 장비 기업, 후공정과 유지 보수까지 전 생태계가 갖춰져 있다. 이렇다 보니 반도체 관련 인력을 구하기도 크게 어렵지 않다.
◇일본 정부의 속도전
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기쿠요마치 반도체 산업단지에 들어서자 ‘JASM’ 간판이 달린 대형 건물이 보였다. 택시 기사 노무라(60)씨는 “가운데가 사무동이고, 왼쪽은 제1공장, 오른쪽은 건설 중인 제2공장”이라고 설명했다. 제2공장은 20여대의 대형 크레인이 늘어서 기초 공사가 한창이었다.
TSMC는 당초 일본에서 구형 반도체만 생산하려 했지만, 최근 제2공장을 첨단 3나노급 반도체를 위한 생산 시설로 설계 변경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과감하고 빠른 지원을 경험한 뒤, 이곳을 AI(인공지능) 첨단 반도체의 거점으로 키우려는 것이다. TSMC가 구마모토를 택한 이유가 물과 전력만은 아니란 얘기다.
TSMC의 제1공장은 착공한지 채 2년도 안 된 2023년 말 완공됐다. 여기엔 인허가 절차를 파격적으로 단축한 일본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농지였던 해당 부지를 단 4개월 만에 공장 용지 변경을 승인했다. 구마모토현도 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반도체 산업 강화 추진본부’를 설치하고, 건설사는 24시간 공사 체제로 속도를 뒷받침했다.
규슈전력은 100억엔을 투입, 변전소와 송전선을 빠르게 증설했다. 일본도 새로 송전선을 지으려면 주민 반발과 갈등에 종종 부딪힌다. 하지만 TSMC가 기존 송전선이 깔린 산업단지에 입주한 덕분에 기존 송전 시설을 증강하는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구마모토는 ‘대만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신주과학단지를 본떠, 일본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로 도약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특히 구마모토를 포함한 규슈 지자체들은 반도체 관련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22년, 미쓰비시전기·JASM·소니 등 170여 기업·대학·기관이 뭉쳐 ‘반도체 인재 육성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오카노 규슈경제협회 상무는 “대학에 새로운 학과나 교과 과정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초등학생들이 전기 공학이나 프로그래밍 등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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