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는 넉달만에 용지 규제 풀고… 대만은 45일만에 환경평가 끝내

가오슝/류재민 기자 2026. 7. 2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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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슝 TSMC 공장
류재민 기자 르포
지난 9일 대만 가오슝 TSMC의 팹22 정문 쪽에 설치된 간이 주차장에 오토바이 수천 대가 주차돼 있다. 대부분 신규 공장 건설 인력들이 출퇴근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뒷쪽으로는 TSMC 공장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오른부터 왼쪽 순서대로 공사가 진행 중으로, 맨 왼쪽 건물에서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 류재민 기자

지난 9일 대만 남부 항구 도시인 가오슝 난쯔(楠梓)의 난쯔산업단지. 서쪽 대로변 정문 안쪽으로 대만 대표 반도체 기업 TSMC가 2나노 초미세 공정의 반도체 생산을 위해 세운 ‘팹22’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양산을 시작한 첫 번째 공장 P1과 시험 생산 중인 P2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단지 안에는 총 5동의 공장이 들어설 예정으로, 남서쪽에서 북동쪽을 향해 한 동씩 차례로 완성되는 중이었다.

정문에서 회색 콘크리트 담장을 따라 북쪽으로 15분쯤 걷자 풍경이 달라졌다. 새 공장과 부대 시설을 짓는 건설 현장이 잇따라 나타났다. 담장 너머로 철골 골조가 줄지어 솟아 있었고, 북쪽 출입문에서는 대형 화물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정문에서는 보이지 않던 팹22의 대규모 확장 공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문 인근 임시 주차장엔 공사 인력이 타고 온 오토바이 수천 대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천즈밍(43)씨는 “2022년 8월 첫 삽을 떴고, 4년 만에 전체 작업의 약 60%가 진행됐다”며 “공장 건설과 후속 부지 정비, 기반 시설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수천 명이 24시간 교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축구장 250개 규모인 183만㎡의 난쯔산업단지는 국영 석유회사 대만중유의 옛 정유 공장 부지다. 오염과 주민 반발 끝에 2015년 폐쇄된 뒤 첨단 반도체 기지로 전환됐다. TSMC는 당초 10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던 오염 부지 정화와 팹 5기 건설을 5년 만에 마치고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만에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속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TSMC가 남쪽으로 간 이유는

TSMC의 생산 축은 북부 신주에서 타이난을 거쳐 남부 가오슝으로 남하 중이다. 기존 생산 거점인 신주는 대형 팹 여러 기를 연속으로 지을 평탄한 부지가 부족해졌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지인 대만에서 대규모 공장 부지를 확보하려면 서부 평야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TSMC는 단순히 생산 시설만 남쪽으로 옮긴 것이 아니다. 인력과 협력업체, 전력·용수망, 40년이 넘는 과학단지 운영 경험도 꾸준히 함께 이식했다. 팹22는 3·5나노 반도체 양산 기지인 타이난 남부과학단지에서 차로 40분 정도로 가깝다. 직선거리 약 240㎞ 떨어진 신주와도 고속철로 1시간 20분 거리다. 기술 인력과 장비 업체가 어렵지 않게 오갈 수 있어서 세 거점이 사실상 하나의 생태계로 움직인다.

인재와 후공정 기반도 이미 갖춰져 있다. 타이난에서는 국립성공대가, 가오슝에서는 국립중산대가 반도체 인력을 공급한다. 두 대학은 대만에서 ‘5대 대학’으로 꼽히는 명문이다. 팹22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패키징·테스트 업체 ASE의 본사와 공장이 있다. 가오슝시 관계자는 “ASE 등 기존 후공정·소재 기업들과 숙련 인재들이 만든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팹22 입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지난 9일 대만 가오슝 난쯔산업단지에 건설 중인 TSMC의 팹22 공사 현장. 왼쪽부터 오른쪽 순으로 차례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장 주변으로는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통상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첨단 팹이 기존 생활권 한복판에 자리한 이례적인 ‘도심형 팹’ 사례로 꼽힌다./가오슝=류재민 기자

◇40년 노하우가 빛나는 ‘속도전’

인프라와 행정도 공장 건설 속도를 가속화했다. 기존 정유·석유화학 공업 단지였던 난쯔산업단지 주변에 이미 구축된 송·변전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용수는 타이난에서 이미 검증된 재생수 모델을 적용했다. 하수와 산업 폐수를 고도 정화한 물을 팹 원수로 사용하고, 이를 다시 초순수로 만들어 사용한다. 장기적으로 하루 수요 13만4000t 가운데 12만6000t을 재생수로 공급할 계획이다.

환경영향평가도 단계별로 진행해 속도를 높였다. 처음 공장 2동이 들어설 부지를 중앙정부 심사 기준인 30㏊보다 0.17㏊ 작은 29.83㏊로 설정해 중앙정부가 아닌 가오슝 시정부의 환경영향평가 심사를 받게 했다. 덕분에 한 달 반 만에 심사를 통과했고, 팹 착공에 빠르게 돌입할 수 있었다.

결국 팹22의 속도전은 40년 동안 쌓아온 대만 정부와 TSMC의 노하우가 압축된 결과다. 성공대와 중산대의 인력, ASE를 중심으로 한 후공정 기반, 타이난에서 확산된 장비·소재 기업, 기존 전력망과 신설된 재생수 시설, 중앙·지방 정부의 신속한 행정이 동시에 작동했다. 내년 말 다섯 번째 공장인 P5까지 완공돼 양산에 돌입하면, 가오슝은 쇠락한 중공업 도시에서 최첨단 AI 반도체 생산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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