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꾼 K콘텐츠②] "버튼 하나면 끝?"…제작 현장이 말하는 AI 사용법
VFX부터 드라마까지
AI보다 중요한 건 결국 '콘텐츠를 아는 사람'

AI는 이제 콘텐츠 산업에서도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됐다. 기획과 번역, 후반작업을 넘어 영상 제작까지 활용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제작비 부담이 커진 K콘텐츠 시장에서 AI는 새로운 제작 도구로 주목받는 한편, 창작의 영역을 어디까지 맡길 수 있을지를 두고 다양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AI는 과연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AI가 바꾸고 있는 제작 현장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AI는 콘텐츠 제작의 새로운 도구가 됐다. 하지만 제작 현장은 AI를 '버튼 하나만 누르면 영상이 완성되는 기술'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제작 경험과 연출,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SBS 드라마 '김부장'은 국내 상업 드라마 최초로 시퀀스 단위 풀 AI 영상을 선보이며 업계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건물 폭파와 차량 추격, 수중 장면 등 약 3분 분량의 액션 시퀀스를 생성형 AI로 구현한 사례다.
놀라운 도전의 중심에는 국내 시각특수효과(VFX) 업계의 베테랑들이 설립한 모피어스 스튜디오가 있다. 모피어스 스튜디오는 20년 넘게 VFX 프로듀서로 활동한 이수영 대표가 2019년 설립한 회사로 영상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해 왔다.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AI 콘텐츠 제작 플랫폼 '에이크론(AICRON)'을 론칭해 운영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에이크론이 AI 기술보다 콘텐츠 제작 경험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류재환 모피어스 스튜디오 부대표는 "에이크론과 비슷한 AI 플랫폼들의 시작점이 기술이라면 에이크론의 시작점은 콘텐츠였다"며 "오랫동안 VFX 작업을 해온 영상 전문가들이 실제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기능들을 고민하며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생성형 AI 영상 제작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끝나지 않는다. 프롬프트를 만드는 AI와 이미지를 생성하는 AI, 이를 영상으로 만드는 AI 등 여러 모델을 오가며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작업 방식도 계속 달라진다.
에이크론은 이러한 과정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연결했다. 프롬프트 생성부터 이미지, 영상 제작까지 하나의 워크플로 안에서 진행하고, 수정이 필요할 경우 처음부터 다시 만들지 않고 중간 단계부터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실제 제작자가 여러 AI를 오가며 작업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였다는 점에서 제작 현장의 활용도를 높인 셈이다.
류 부대표는 "전체 작업 과정을 하나의 캔버스에서 확인할 수 있고 수정도 훨씬 수월하다"며 "단순히 여러 AI 모델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 콘텐츠 제작 과정에 맞게 연결한 것이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I를 활용한다고 해서 제작이 단순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생성형 AI는 여전히 인물의 일관성이나 액션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모피어스 스튜디오는 이를 기술이 아닌 연출과 영상 문법으로 풀어냈다.
류 부대표는 "'김부장'을 작업하면서도 가장 중요했던 것은 AI 기술보다 영상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며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화면의 흐름과 연출을 만드는 것이 결국 콘텐츠의 완성도를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인식은 실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AI사업추진팀을 신설한 KT스튜디오지니는 AI를 단순한 제작비 절감 수단이 아니라 '제작 공정 자체를 바꾸는 기술'로 바라봤다. 숏폼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다양한 포맷을 제작하는 스튜디오지니는 앞으로 AI 프로덕션 파이프라인이 모든 제작 영역에서 필수에 가까워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I사업추진팀'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 콘텐츠 전반에 AI 제작 공정을 적용하고자 설립된 조직이다.
실제로 KT스튜디오지니는 현재 ENA 드라마 '클라이맥스'와 숏폼 드라마 '청소부의 두 번째 사랑'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AI 제작을 적용하고 있다. 서울 전경을 담은 드론숏부터 대규모 군중 신, 자동차 추격 장면, 전쟁 시퀀스 등 현실적인 촬영 여건이나 제작비 때문에 구현하기 어려웠던 장면들을 AI로 제작하며 표현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제작 방식이었다. 기존에는 촬영을 마친 뒤 VFX 작업을 거쳐야 했다면, AI를 활용하면 촬영 시점과 관계없이 최종 결과물을 먼저 구현할 수 있다. 제작 초기부터 완성본에 가까운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만큼 불필요한 촬영과 반복 작업을 줄이고 보다 효율적으로 제작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스튜디오지니는 AI를 활용한 결과 제작비를 약 20% 절감했다. 그러나 현장이 더욱 크게 체감한 변화는 비용보다 제작 공정의 변화였다.
은재현 AI사업추진팀 팀장은 "제작비 절감 외에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는 구상한 장면을 빠르게 최종 결과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프리비즈나 콘셉트 아트가 구도와 분위기를 확인하는 참고 자료에 머물렀다면, AI 제작 공정에서는 생성한 결과물을 실제 최종본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 분야 전문 인력이 결과물을 빠르게 확인하면서 창작과 의사결정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제작 계획 단계에서부터 최종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불필요한 촬영 일정과 중복 작업을 줄일 수 있었다"며 "확보한 시간과 예산을 작품의 스케일을 키우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AI 활용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스튜디오지니는 최근 일부 작품에서 한두 개의 컷이 아닌 모피어스 스튜디오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시퀀스 전체를 AI로 제작하는 작업도 시도하고 있다.
은 팀장은 "가장 기대하는 변화는 AI가 기존 화면에 시각효과를 덧입히는 보조적인 수단을 넘어 콘텐츠 자체를 만들어내는, 마치 촬영과 같은 핵심 제작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연결된 하나의 시퀀스를 AI로 제작해 공유했을 때 감독과 제작진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밝혔다.

AI를 바라보는 제작 현장의 시선은 예상보다 현실적이었다. 비용 절감을 위한 실험을 넘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제작 도구'로 AI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콘텐츠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고 감정을 전달할 것인가였다.
이에 모피어스 스튜디오는 에이크론을 더 많은 창작자가 활용하는 제작 도구로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류 부대표는 "에이크론은 처음부터 창작자들에게 좋은 도구를 주고 싶다는 의도로 기획된 서비스"라며 "앞으로도 더 좋은 도구로 계속 발전시키는 동시에 에이크론을 활용한 상업 콘텐츠를 꾸준히 선보이며 가능성을 증명하고 싶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창작자들이 함께 이용하는 글로벌 서비스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KT스튜디오지니 역시 AI를 개별 작품의 실험에 머무는 기술이 아닌 제작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은 팀장은 "향후 3~5년 안에는 많은 작품이 AI 기술 기반의 스튜디오 촬영 시스템을 활용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은 촬영으로 담고, 공간과 배경, 미술, 대규모 액션 등은 AI로 확장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어 "숏폼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AI를 활용하며 축적한 경험을 개별 작품에 머물게 하지 않고 표준화된 제작 공정으로 체계화할 계획"이라며 "기획과 제작, 후반 작업은 물론 각 공정을 연결하는 AI 기반의 스튜디오 촬영 시스템으로 확장하는 것이 장기적인 비전"이라고 전했다. <계속>
<관련 기사>
[AI가 바꾼 K콘텐츠①] '김부장'만이 아니다…제작 현장에 스며든 AI
sstar1204@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Copyright © 더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일까지 중부에 천둥·번개 '물폭탄'…수도권·강원 시간당 30~50㎜ - 생활/문화 | 기사 - 더팩트
- 국민 제안 1921건…23일 부동산 해법 윤곽 드러나나 - 경제 | 기사 - 더팩트
- 홈플러스, '회생 폐지 결정' 즉시항고…법원 재검토 - 사회 | 기사 - 더팩트
- 인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흘째…붕괴 위험에 대피령·휴교 잇따라 - 전국 | 기사 - 더팩트
- 코스피 저평가론 시험대…'영업익 65兆' 하이닉스가 답할까 - 경제 | 기사 - 더팩트
- [AI가 바꾼 K콘텐츠①] '김부장'만이 아니다…제작 현장에 스며든 AI - 연예 | 기사 - 더팩트
- [TF초점] 노브레인, 30년을 뛰어넘은 '소란과 연결' - 연예 | 기사 - 더팩트
- 종합특검 "수사 연장·종료 모두 준비"…영장기각 지적엔 "난이도 높아" - 사회 | 기사 - 더팩트
- 경찰청장 대행 "보완수사권 폐지 문제없어…장윤기 사건과 무관" - 사회 | 기사 - 더팩트
- 본격화되는 마스가, 닻 올리는 K-조선…'3사 3색' 공략법 - 경제 | 기사 - 더팩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