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권의 변곡점] 미국이 발명하면 중국이 시장을 만든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2026. 7. 2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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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도 드론도 美서 나왔지만
中이 수요 만들고 세계시장 장악
한국 AI, 정부가 첫 고객이 되고
규제 풀어 혁신시장 먼저 열어야
지난 1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한 여성이 자이노바(Xynova) 테크놀로지가 만든 로봇 손에 명함을 건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개막식 기조연설에 직접 나섰다. 중국의 향후 5년을 설계하는 ‘15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해에 AI 국제 행사 연단에 선 것 자체가 큰 메시지였다. 시 주석은 “개발도상국의 AI 역량 구축을 지원하고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사우스를 겨냥한 중국판 ‘AI 일대일로’ 구상이다. 그는 “각종 지능 단말기가 수많은 가정에 들어가 ‘중국지조(中國智造)’가 중국식 현대화의 명함이 됐다”고도 했다. 세계의 공장을 넘어 세계의 AI 생산·응용 기지가 되겠다는 선언으로 읽혔다.

WAIC 전시장은 그 전략이 구현되는 현장이었다. 1100여 기업이 3000여 점의 인공지능(AI) 제품과 기술을 선보여 성황을 이뤘다. 알리바바 큐원(Qwen) 모델을 탑재한 AI 안경을 비롯해 독자 개발 GPU 칩, AI 토큰 공장, 휴머노이드가 대거 등장했다. 돌아보면 미국이 발명하고 중국이 시장을 만든 전례는 많다. 전기차도, 드론도, 태양광도 원천 기술은 미국에서 나왔지만 초기 수요를 만들고 생산 규모를 키워 가격을 낮춘 뒤 세계시장을 장악한 것은 중국이었다. 미국의 강력한 기술 견제 속에서도 중국이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다.

이 검증된 공식을 이제 AI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 등 8개 부처는 지난달 18일 ‘인공지능+소비’ 정책을 발표했다. 디지털·스마트 제품 구매 지원을 AI 단말로 확대하고, 지방정부가 이구환신(以舊換新) 제도 안에서 차세대 스마트 기기에 자체 보조금을 설계하도록 했다. AI 제품 구매에는 개인 소비 대출 이자도 지원한다.

특히 주목할 제품은 휴머노이드다. WAIC 현장에서도 체화지능 분야에만 약 200개 기업이 300개가 넘는 휴머노이드와 핵심 부품, 로봇용 AI 모델을 전시했다. 마치 AI 열병식 같았다.

20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의 긱플러스(Geek+) 부스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바나나 모형 등의 물건을 스스로 집어 상자에 분류하는 작업을 시연하고 있다. 이번 WAIC에는 이처럼 다양한 산업용 로봇이 대거 전시돼 완전한 공장 자동화 시대가 눈앞에 왔음을 실감케 했다. /손재권 제공

중국의 목표는 AI 기업 몇 곳을 키우는 데 있지 않다. 스마트폰과 가전, 자동차, 안경, 로봇을 모두 AI 제품으로 바꾸는 ‘AI 메이드 인 차이나’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비자의 구매를 지원한다. 소비자를 첫 고객으로 세우고, 거기서 나온 데이터와 피드백이 제품 개선과 가격 하락, 공급망 확대를 이끌게 한다.

미국도 이 공식을 안다. 발명만으로는 시장을 지킬 수 없음을 전기차에서 배웠다. 그래서 방식은 다르지만 미국 역시 수요를 만드는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연방총무청(GSA)은 지난해 여름 구글 ‘제미나이 포 거버먼트’를 기관당 47센트에, 챗GPT 엔터프라이즈와 클로드를 첫해 1달러에 쓰는 범정부 조달 계약을 마련했다. 연구비 지원에 머물지 않고 정부가 핵심 고객이 돼 프런티어 AI 기업에 실제 수요와 레퍼런스를 제공한 것이다.

중국은 국민을 AI의 첫 고객으로 세우고, 미국은 정부가 첫 고객이 됐다. 수단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국가가 AI 수요를 의도적으로 설계한다는 점은 같다. 바로 이 지점을 우리는 놓치고 있다. 한국도 최근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피지컬 AI를 축으로 총 4755조원 규모의 투자 구상을 발표했고, ‘전 국민 1인 1 AI 에이전트’ 정책도 추진한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무게 중심은 여전히 인프라와 기술, 공급 기반 확충에 놓여 있다. 이 막대한 투자가 시장과 매출, 수출로 이어지려면 ‘무엇을 만들 것인가’만큼 ‘누가 먼저 살 것인가’가 분명해야 한다.

기업을 키우는 것은 보조금 자체가 아니라, 그 마중물로 형성된 반복 가능한 시장이다. 초기 시장이 서면 기업은 고객 피드백으로 제품을 다듬고, 매출을 근거로 투자를 유치하며 스스로 성장한다. AI 대전환기에 정부는 ‘돈을 대는 자’에서 ‘먼저 사는 자’로 변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AI 구매 목표를 세우고 중앙·지방정부가 국내 스타트업의 첫 고객이 돼야 한다. 의료·교육·돌봄·행정 데이터를 안전하게 개방하고, 국민이 국산 AI 단말기와 서비스를 직접 경험할 실증 시장도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는 미국 같은 거대한 정부 조달 시장도, 중국 같은 14억 내수 시장도 없다. 그래서 초기 시장을 더 빠르고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미국보다 먼저 정부 서비스를 AI 네이티브로 바꾸고, 중국보다 먼저 의료·교육·제조·돌봄 규제를 풀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신제품을 시험할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확보할 독보적인 자리는 가장 큰 기술을 가진 국가가 아니다. 혁신 기업의 첫 고객이 돼 남보다 먼저 시장을 열어젖히는 국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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