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18명 마을에 찾아온 희망…해남, 영화 성지 꿈꾼다

광주일보 2026. 7. 2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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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행에 전국에서 발길 70~80년대 거리 분위기에 ‘환호’
상가들 복고 간판 걸고 손님맞이…체류형 콘텐츠 보완은 과제
20일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남창마을 ‘북평HOPE영화의거리’에서 방문객 곽택용씨 가족이 스텔라경찰차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일 오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남창마을 ‘북평 HOPE 영화의 거리’.

버스정류장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섰고, 거리 곳곳에서는 가족과 연인, 친구 등 방문객들이 영화 속 장면을 찾아 골목을 누비느라 분주했다. 주민등록 인구 418명에 불과한 한적한 시골마을은 영화 관람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마을 주민 수를 오르내리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촬영지 순례’지에 이름을 올렸다.

이곳은 지난 15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SF영화 ‘HOPE(호프)’의 주 촬영지다.

영화에서는 1970~1980년대 비무장지대(DMZ) 인근 가상 마을인 ‘호포리’와 ‘호포항’으로 등장하지만, 스크린 속 골목과 상점, 낡은 간판 대부분은 실제 남창리의 모습이다. 촬영은 지난 2023년 11월부터 3개월여간 이어졌으며, 당시 황정민 등 주연 배우들이 골목과 들판 곳곳에서 외계 생명체와 맞서는 추격전 등 주요 장면을 촬영했다.

영화 개봉 이후 이곳에는 하루 200~300명의 방문객이 몰리고 있다. 이날도 거리 곳곳에서는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멈춰세우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영화에서 마을 주민들이 외계 생명체와 추격전을 벌였던 골목을 걸으며 “여기가 그 장면이 나온 곳 아니냐”고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3~4m 신장의 외계인 발자국을 스프레이로 재현한 바닥에 손을 맞대며 인증사진을 찍기도 했다.

범석(황정민)과 성애(정호연)가 탔던 스텔라 경찰차 앞에도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줄이 이어졌고, 외계인에 의해 파괴된 건물을 표현한 트릭아트도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방문객들은 1970~1980년대 분위기를 재현한 거리 분위기에 푹 빠진 모양새였다. 남창시외버스터미널 뒤편 공실 상가는 영화 속 ‘호포파출소’로 꾸며졌고, ‘유쾌한 호포 새도시’라는 간판과 ‘불법무기 자진신고’ 등 당시 분위기를 살린 표어가 내걸리기도 했다. 내부에는 ‘호포읍 지적위치도’와 원통형 장작난로 등도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 권영삼(41)·이윤경(여·42) 씨 부부는 “영화를 보고 꼭 와보고 싶어 2박3일 일정으로 해남을 찾았다”며 “영화 속 긴박했던 장면들을 실제 공간에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고 시골마을 특유의 복고 감성과 조용한 분위기도 매력적”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곽택용(59) 씨도 “아직 영화는 못 봤지만 처제가 재미있다고 추천해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해남 여행을 왔다”며 “어릴 적 시골 풍경이 떠올라 정겹다. 서울에 올라가면 가족들과 영화를 볼 예정인데, 촬영지를 먼저 둘러보고 나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순천에서 온 이재용(53) 씨는 “원래 알던 마을인데 영화를 위해 간판 등을 새롭게 꾸며 훨씬 보기 좋아졌다”며 “지역을 대표하는 성공적인 영화 테마 거리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해남군은 앞서 지난해부터 총사업비 11억원을 투입해 남창마을에 ‘북평 HOPE 영화의 거리 조성사업’을 추진, 지난 15일 거리를 정식 개장했다.

영화 ‘HOPE’의 주요장면을 담은 벽화.
영화가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고 한국 영화 역대 최대 제작비를 들인 작품이라며 관심이 모인 데 따른 조치였다. 해남군은 마을 상가 30여 곳의 간판을 복고풍으로 정비하고 주연 배우 벽화와 조형물, 안내판을 설치했다. 또 인근 숙박업소와 식당, 카페 등을 담은 안내 책자 ‘북평면 탐방지도 HOPE’를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해남군에 방문객이 잇따라 찾아오자, 지역 상인들도 반색하고 있다. 인근의 식당은 점심시간이 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만석’이 되는 등 북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 사장 이은영(여·50) 씨는 “지난 연휴에 이어 오늘도 손님이 확실히 많다”며 “겨울에 고생하며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다보니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면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오랜만에 마을에 활기가 돌자 반기는 분위기다. 농촌 소멸로 갈수록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영화들을 계기로 남창마을을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옥희(여·70) 씨는 “우리 마을에서 찍은 영화가 개봉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보지는 못했다”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마을이 오랜만에 북적여 기분이 좋다. 잠깐 반짝하는 인기에 그치지 않고 남창마을과 해남이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일부 주민들은 관광객을 오래 머물게 할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해남군이 추진했던 영화 속 장면 AR(증강현실) 체험 콘텐츠가 제작사와의 협의 과정에서 지연돼 결국 무산됐을 뿐 아니라, 체류 시간을 늘릴 만한 프로그램이나 즐길거리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민국(59) 씨는 “서울에서 전국 각지를 다니며 미용봉사를 하다 남창마을에 매료돼 정착한 지 2년째”라며 “음식과 체험, 즐길거리 등 지속적인 지원과 후속 콘텐츠 개발이 뒷받침돼야 관광지로서 오래 관심을 받고 귀촌인 유입 등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영화에서는 이곳 외에도 주민들을 치료하던 임시 병원으로 등장한 문내면 우수영초 중화분교장(폐교), 화산면·현산면·송지면 등이 촬영지로 활용됐다. 인근 강진에서도 일부 장면을 촬영했다.

영화는 개봉 첫 주 누적 관객 212만9000여명을 동원하며 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해남 글·사진=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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