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 82년, 갈림길에 서다-하] “대월동화·제일서적·만경관”…대구 시민의 하루를 만든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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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동화."
대구에서 태어나 60년 넘게 살아온 시민 김동현 씨는 "예전에는 대백이 월요일에 쉬고 동아가 화요일에 쉬어서 '대월동화'라는 말을 누구나 알았다"며 "명절 선물이나 아이들 입학 옷을 사러 갈 때면 가족 모두가 백화점에 가는 것 자체를 나들이처럼 여겼다"고 회상했다.
대백 정문에서 친구를 만난 시민들은 제일서적, 한일극장, 아카데미, 만경관으로 이어지는 동성로를 걸었다.
한 시민은 "대백과 동백, 제일서적과 만경관은 각기 다른 가게가 아니라 대구 시민의 하루를 이어주던 장소였다"며 "이름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더라도 그곳에 담긴 시민들의 기억까지 개발 논리로 지워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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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동화.”
과거 대구 시민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대구백화점은 월요일에 쉬고 동아백화점은 화요일에 쉰다는 뜻이다. 두 향토백화점의 휴무일을 알아야 장보기와 쇼핑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큼 대백과 동아는 시민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대구에서 태어나 60년 넘게 살아온 시민 김동현 씨는 “예전에는 대백이 월요일에 쉬고 동아가 화요일에 쉬어서 ‘대월동화’라는 말을 누구나 알았다”며 “명절 선물이나 아이들 입학 옷을 사러 갈 때면 가족 모두가 백화점에 가는 것 자체를 나들이처럼 여겼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은 인터넷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지만 당시 대백은 물건만 사는 곳이 아니라 친척과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장소였다”며 “대백이 다른 회사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 시대가 끝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신문물’ 엘리베이터 타러 대백 찾기도

대구백화점의 역사는 1944년 1월10일 창업주 고 구본흥 회장이 중구 삼덕동의 66㎡ 규모 포목점 ‘대구상회’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대구상회는 1962년 법인으로 전환했고, 1969년 12월26일 동성로에 10층 규모의 대구백화점 본점을 열었다.
당시 본점은 대구 최초의 10층 건물이자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의 현대식 백화점이었다. 1970년대까지 대구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대백 본점과 계명대 동산병원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어린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일부러 대백을 찾을 정도로 본점 자체가 ‘신문물’이었다.
대백은 1971년 대백갤러리를 열었고 1973년 정찰제 시행업체로 지정됐다. 1979년에는 지역 최초이자 전국 네 번째로 신용판매제도를 도입했다. 1984년 유통업체 최초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고, 1987년 본점을 전면 개장했다.
1988년 기업을 공개하고 1993년 대백프라자를 열었다. 대백프라자는 개점 이후 빠르게 성장해 지역 유통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백화점과 문화센터, 갤러리, 공연장을 결합한 지역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995년 대백사랑권 발행과 대백여성합창단 창단, 2002년 전자결제 전면 시행, 2003년 윤리경영 선포, 2013년 온라인 쇼핑몰 개편 등 시대 변화에 맞춘 시도도 이어졌다.
전국의 지역 백화점들이 폐점하거나 대기업 계열로 편입되는 동안 대백은 독립적인 지역 본사와 자본을 유지했다. 이 때문에 대백은 한강 이남에 남은 마지막 향토백화점이자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독립계 지역 백화점으로 평가받았다.
◇대구백화점 82년 일지
연도 주요 내용 1944년 구본흥 창업주, 삼덕동 ‘대구상회’ 인수 1969년 동성로 10층 규모 대구백화점 본점 개점 1970~1980년대 정찰제·신용판매 도입, 지역 유통시장 주도 1988년 유가증권시장 상장·본점 신축 1993년 대봉동 대백프라자 개점 1999년 지역 백화점 최초 온라인 쇼핑몰 ‘대백몰’ 운영 2001~2002년 매출 6900억원 등 최대 전성기 2003년 이후 대기업 백화점 진출로 경쟁 심화 2016년 이후 영업손실 지속 2017년 대백아울렛 동대구점 개점 2018년 대백아울렛 직접 운영 중단 2021년 7월 동성로 본점 폐점 2022년 본점 2125억원 매각계약 무산 2024년 본점·아울렛·물류센터 공개매각 추진 2025년 경영권과 주요 부동산 매각 확대 2026년 7월 창업주 일가 지분 25.82% 매각 계약 ◇52년 영업 마지막 날에도 시민 발길

2021년 6월30일 본점의 마지막 영업일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휴대전화로 건물과 정문을 촬영하고 마지막 쇼핑을 하며 추억을 남겼다.
대백은 1층 특별전시장에 ‘추억 소환, 대백 77년 발자취 전시회’를 열어 옛 사진과 사보, 광고, 직원 유니폼과 신용카드 등 기록물을 선보였다. 마지막 날 구정모 회장과 임직원들은 정문에서 고객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당시 본점에서 18년간 근무한 한 직원은 “마지막 본점 점장이라는 점 때문에 생각이 많고 마음이 무겁다”며 “본점은 휴점에 들어가지만 프라자점은 영업을 이어가는 만큼 시민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본점을 찾은 시민들은 “정든 친구가 떠나는 것 같다”, “학창 시절부터 약속 장소로 이용했던 대백이 사라져 섭섭하다”고 입을 모았다. 본점에 남아 있던 브랜드와 직원 상당수는 대백프라자로 옮겼지만, 동성로의 상징이었던 공간은 이후 5년째 비어 있다.
◇대백·제일서적·극장을 잇던 동성로의 하루
대백 본점은 단독으로 존재한 공간이 아니었다. 대백 정문에서 친구를 만난 시민들은 제일서적, 한일극장, 아카데미, 만경관으로 이어지는 동성로를 걸었다.
제일서적은 학생과 교사, 문인과 직장인이 찾는 지역 대표 서점이었다. 참고서와 전공서적을 사고 문학책을 읽었으며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은 서점에서 책장을 넘기며 친구를 기다렸다.
2006년 제일서적이 문을 닫았을 때 대구 시민들이 느낀 상실감은 컸다. 서점이 사라진 뒤에도 시민들은 오랫동안 그 자리를 ‘옛 제일서적 자리’라고 불렀다. 책을 사지 않아도 머물 수 있던 지역 문화공간이자 청춘의 약속 장소였기 때문이다.
만경관은 오랜 기간 대구 영화문화를 상징했다. 단관극장 시대를 거쳐 복합상영관으로 변신했지만 이후 전국 체인에 편입됐다. 현재 옛 만경관 자리에서는 롯데시네마 동성로점이 영업하고 있다. 극장 기능은 남았지만 ‘만경관’이라는 지역의 이름은 사라졌다.
아카데미와 한일극장도 대형 멀티플렉스에 밀려 과거의 모습을 잃었다. 건물이나 영화관 기능이 남더라도 시민이 기억하던 이름과 지역의 독립적인 운영주체는 하나둘 사라졌다.
2021년 대백 본점 폐점을 다룬 한 칼럼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나 사물이 어느 날 사라지는 것은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라며 대백과 제일서적, 극장의 퇴장을 도시의 이정표가 없어지는 과정에 빗댔다.
◇동아는 백화점을 팔고 기업 본체 지켜
대백의 미래와 비교되는 사례는 동아백화점과 화성산업이다.
화성산업은 1972년 동문동에 동아백화점 본점을 열고 1984년 반월당에 동아쇼핑점을 개점했다. 수성점과 강북점, 구미점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대백과 지역 유통시장을 양분했다.
그러나 대형 유통업체와 온라인 쇼핑의 성장을 본 화성산업 2세 경영진은 2010년 동아백화점과 동아마트 등 유통사업을 이랜드에 약 2680억원에 매각했다.
현재 동아백화점 쇼핑점과 수성·강북·구미점은 이랜드리테일 소속으로 영업하고 있다. ‘동아’라는 상표는 남았지만 지역 자본이 운영하는 향토백화점으로서의 역사는 끝났다. 동문동 본점도 2019년 폐점했다.
화성산업은 유통사업 매각 후 건설업에 집중했다. 현재 창업주의 손자이자 이인중 명예회장의 아들인 이종원 회장이 3세 경영을 이끌고 있다. 회사는 2024년 사명을 HS화성으로 바꾸고 주택에서 토목·환경·신재생에너지·철구·프리캐스트 콘크리트·엔지니어링과 개발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동아백화점이라는 사업을 포기한 대신 모기업의 독립 경영권과 대구 본사를 지킨 것이다. 반면 대백은 유통업을 유지하면서 부동산 매각으로 위기를 넘으려 했지만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끝에 회사 경영권을 외부에 넘기는 상황을 맞았다.
◇사라진 것은 기업만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
한 시민은 “대백과 동백, 제일서적과 만경관은 각기 다른 가게가 아니라 대구 시민의 하루를 이어주던 장소였다”며 “이름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더라도 그곳에 담긴 시민들의 기억까지 개발 논리로 지워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역 경제 전문가는 “향토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쟁력이 보장되는 시대는 아니지만 지역기업이 보유한 브랜드 신뢰와 시민의 애착은 돈으로 단기간에 살 수 없는 자산”이라며 “새 주주가 이를 단순한 부동산 가치로만 볼지, 동성로 재생과 연결할지는 앞으로의 투자와 사업계획을 통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백이 이름을 유지한다고 향토기업의 정체성이 저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아백화점과 만경관처럼 상표나 영업시설이 남더라도 본사와 독립 경영권을 잃으면 지역기업으로서의 성격은 달라진다.
반대로 새 주주가 외지 자본이더라도 대백프라자와 지역 고용을 지키고, 5년째 비어 있는 본점을 동성로와 함께 살아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면 82년간 축적한 대백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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