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환 칼럼] AI가 여는 150세 시대, ‘웰 에이징’을 다시 묻는다

2026. 7. 2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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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환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부터 연금술사의 영약까지, 늙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품어온 본능적이고도 강렬한 열망이다. 수천 년간 주술과 신화의 영역에 머물던 이 열망은 20세기 초 과학의 빛을 받기 시작했다.

유산균 발효유의 이름으로 대중에게도 친숙한 엘리 메치니코프 박사는 1903년 노화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며 ‘노화학’(gerontology)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했다. 1935년 클라이브 맥케이 박사가 쥐의 칼로리 섭취를 제한해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한 실험은 노화가 통제 불가능한 운명이 아님을 보여준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후 1988년 톰 존슨 박사, 1993년 신시아 케년 박사가 예쁜꼬마선충 실험을 통해 특정 유전자를 조작하면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음을 확인하면서 인류는 노화가 통제 가능한 생물학적 프로그램임을 깨달았다. 소위 ‘장수과학’(longevity science)이라는 분야가 본격 태동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장수과학은 생물학을 넘어 ‘데이터 과학’과 융합하며 유례없는 혁명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신약 개발은 수백만 개의 화학물질을 일일이 실험실에서 테스트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AI)은 방대한 유전체, 단백질체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의 생체 나이를 정확히 측정하는 ‘노화 시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예컨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수만 개의 분자 구조를 검증하고, 염증을 유발하는 노화 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화합물을 빠르게 찾아내는 식이다. 아버지 스티브 잡스를 희귀 췌장암으로 잃은 리드 잡스 역시 AI가 바이오 산업의 판도는 물론 의료 현장 전체를 바꿀 것이라는 믿음 하에바이오 벤처캐피털 요세미티를 설립하고 암 정복에 인생을 걸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장수과학은 단지 기대수명을 늘리는 것을 넘어, 질병 없이 활력 있게 사는 건강수명(healthspan) 극대화로 그 미션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의 최전선에서 눈길을 끄는 기업이 있다. 실리콘밸리의 AI 전문가 론존 내그 박사가 창업한 에이지미카(Agemica)다. 흥미롭게도 내그 박사는 전통적인 바이오 전공자가 아니다. 스탠포드 의대 겸임교수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의학자가 아니라 전기공학자라고 말한다. 그는 초창기 스마트폰에 적용된 음성 인식과 필기 인식 기술을 개척했던 통신과 AI 알고리즘의 대가다. 그가 어떻게 가장 복잡하다는 장수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해답은 질병을 대하는 관점의 혁명적 전환에 있다. 그는 노화 현상을 인체의 수많은 유전자와 단백질이 주고받는 거대한 신호 처리 체계, 즉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문제’로 치환했다. 노이즈 속에서 정확한 음성 신호를 잡아내듯, AI를 통해 노화를 유발하는 핵심 병인 신호를 찾아낸 것이다. 10년 안에 노화 방지 백신을 상용화하겠다는 에이지미카의 당찬 목표는 이종 분야 간의 기술 융합이 만들어낸 놀라운 파괴력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하지만 기술의 눈부신 발전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묵직한 사회적 과제 또한 도사리고 있다. 당장 연일 이어지는 기록적인 폭염 속, 에어컨은커녕 낡은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좁은 방에서 힘들게 여름을 버텨내는 독거 어르신들의 위태로운 모습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첨단 수명 연장 기술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전락한다면, 이는 축복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끔찍한 불평등을 낳을 뿐이다. 돈으로 수명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을 때, 누군가에게는 150세라는 숫자가 정신적 고통을 심화시키는 형벌에 불과할 수 있다.

설령 많은 사람들이 수명 연장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단순히 신체적 젊음을 유지하며 오래 살기만 하는 것이 과연 온전한 축복일까? 우리에게 150세라는 엄청난 양의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일과 교제를 비롯한 사회적 활동에서 배제된 채 목적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은 그저 길고 지루한 연장에 불과하다.

결국 장수과학이 가져올 혁신은 ‘시간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귀결된다. 늘어난 생애 주기만큼이나 개인의 삶 속에서 ‘역할의 재정의’가 필수적이다. 조직과 사회 안에서 타인과 교류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쓰임새를 창출하는 촘촘한 연결망이 부재하다면, 건강한 신체만 남은 장수는 지독한 고독과 상실감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수명의 양적 확장이 삶의 질적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시니어 세대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속적으로 소속감을 느끼고 활약할 수 있는 터전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건강한 장수는 첨단 과학기술의 승리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하고 따뜻한지를 보여주는 척도여야 한다. 진정한 ‘웰 에이징’(well-aging)은 늙지 않는 세포를 가지는 것을 넘어,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는 튼튼한 연대의 그물망 속에서 완성된다. 기술이 시간을 거슬러 생명력을 회복시켜 줄 때, 우리는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새롭게 증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가오는 150세 시대, 장수과학의 경이로운 성취가 차가운 기술 지상주의에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채비에도 박차를 가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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