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자동차보험 8주룰’ 표류…한방병원 수사에 관리체계 ‘도마’
손보업계 “과잉진료 차단” vs 한의계 “치료권 침해” 반발
수백억대 부정청구 의혹 압수수색…한방 진료비 검증 시스템 ‘경종’

자동차사고 경상환자의 장기치료를 제어할 ‘8주룰’ 도입이 반년 넘게 표류하며 심사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그 사이 대형 한방병원의 보험금 부정청구 의혹 수사까지 겹치면서, 환자의 치료권 보장과 보험금 누수 방지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자동차보험 진료 관리체계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경상환자 8주룰의 시행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8주룰은 상해등급 12~14급 경상환자가 사고 후 8주를 넘겨 치료받으려면 추가 치료 필요성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해 자동차보험 부정수급 개선대책을 발표하고 올해 초 시행을 추진했지만 한의계 반발과 관계 부처 간 세부 기준 조율로 3월과 4월, 5월로 일정이 잇따라 밀렸다. 상반기 도입도 무산됐으며 심사 주체와 제출 자료, 환자의 이의제기 절차 등 핵심 기준도 확정되지 않았다.
제도 시행을 전제로 추진된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의 심사 인력 채용과 보험개발원의 분쟁조정 시스템 작업도 일정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사고 후 8주라는 기준만 제시됐을 뿐 이후에도 치료가 필요한 환자와 불필요하게 치료를 연장하는 환자를 가려낼 실무 체계는 갖춰지지 않았다. 통일된 사전 심사 절차가 없는 탓에 보험사와 의료기관의 판단이 충돌하면 보험금 지급 이후 환수나 소송·고소 등 사후 대응으로 넘어가는 구조다.

보험업계는 자동차보험 손해율과 적자 규모를 고려하면 장기치료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7.5%로 전년보다 3.7%포인트 상승했으며, 보험손익은 708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는 관련 대책이 시행되면 장기적으로 개인 자동차보험료가 약 3%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한의계는 같은 염좌나 타박상도 환자의 나이와 기저질환, 사고 충격에 따라 회복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며 8주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필요한 치료까지 제한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과잉진료를 줄이기 위한 장기치료 심사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의학적 타당성과 환자별 예외 기준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9일 자생한방병원과 자생의료재단 등 관련 시설을 압수수색했다. 손해보험사 4곳은 자생 측이 교통사고 환자에게 한약을 무분별하게 처방해 수백억원대 보험금을 편취했다고 주장했지만 자생 측은 환자별 증상에 따른 개별 처방이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처방 기록과 내부 자료를 토대로 재단 차원의 조직적인 보험금 편취 지시 여부와 실제 진료·처방의 적정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제도 시행에 앞서 심사 주체와 제출 자료, 장기치료 환자의 예외 기준과 이의제기 절차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같은 경상환자라도 보험사와 의료기관에 따라 장기치료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지급보증을 계속할지, 추가 자료를 요구할지에 대한 공통 기준이 없다 보니 분쟁이 생기면 결국 건별 협의나 사후 환수에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승해 기자 hae81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