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생각하느라”…힘들게 걸을 때 대화가 느려지는 이유

윤은영 기자 2026. 7.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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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사이언스]
국제 연구팀, 성인 45명·하드자족 20명 분석
험한 길 걷거나 대화할 때 보행·인지 능력 저하
걷기 자체가 상당한 뇌 자원 쓰는 활동
클립아트코리아

우리가 매일 하는 ‘걷기’는 단순히 다리만 움직이는 일이 아니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균형을 잡고 다음 발을 디딜 곳을 고르는 동안 뇌도 끊임없이 작동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다니엘 휴고 아슬란 교신저자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걷는 것만으로도 뇌가 상당한 인지 자원을 쓴다는 사실이 연구로 증명된 셈이다.

연구진은 걷기와 계산, 대화처럼 몸과 머리를 동시에 쓰는 ‘인지·운동 이중 과제’ 현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두 발로 걷는 데도 뇌의 힘이 필요하며, 길이 험하거나 다른 일을 함께 하면 걷기와 사고 능력이 모두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울퉁불퉁한 길 걸었더니 계산도 어려워졌다=연구팀은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건강한 성인 45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평평한 길과 표면이 불규칙한 길을 걸었다. 실험에서는 일정한 숫자에서 7을 빼는 계산 문제 등도 함께 수행했다.

참가자들은 평지에서 2분 동안 평균 150m를 이동했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는 평균 이동 거리가 129m로 21m 줄었다. 같은 길을 걷더라도 숫자 계산을 병행하면 이동 거리가 평균 11m가량 감소했다.

걷기만 느려진 것은 아니었다. 계산 정답률도 낮아졌다. 참가자들은 평지를 걸을 때보다 험한 길을 걸을 때 ‘7씩 빼기’ 과제에서 맞힌 답의 수도 줄었다.

불규칙한 길에서는 몸의 균형을 잡는 동시에 장애물과 지면 상태를 살펴야 한다. 뇌가 넘어지지 않도록 몸을 조절하고 안전하게 발을 디딜 곳을 찾는 데 더 많은 자원을 쓰면서 계산에 집중할 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결국 지형이 복잡해지고 인지 과제까지 더해지자 보행과 계산 능력이 함께 낮아졌다. 이는 뇌가 걷기와 계산을 완전히 별개의 일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실험실을 벗어나도 결과는 같았다=연구팀은 실험실에서 확인한 현상이 실제 생활에서도 나타나는지 살펴보기 위해 탄자니아 북부 수렵·채집 민족인 하드자족 20명의 채집 활동을 분석했다.

하드자족은 식량을 구하러 바위와 풀숲, 경사진 길 등 다양한 지형을 오간다. 연구팀은 이들의 채집 영상을 바탕으로 지형과 대화 여부에 따라 걸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했다.

그 결과 하드자족도 지형이 험해질수록 걸음 빈도가 낮아졌다. 이동 중 동료와 대화를 나눌 때도 발걸음이 느려졌다. 특히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할 때보다 직접 말할 때 변화가 더 컸다. 대화를 주도하는 화자가 됐을 때 걸음 빈도가 더욱 크게 줄었다.

말하기는 듣기보다 더 복잡한 인지 과정을 거친다. 전달할 내용을 떠올리고 알맞은 단어를 골라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말하기에 더 많은 인지 자원이 쓰이면서 걷기에 투입할 여력이 줄어든 것으로 해석했다.

◆인간의 뇌는 ‘걷기’와 함께 발달했다=인간의 이족 보행은 네 발로 걷는 동물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 좁은 두 발로 높은 무게중심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걷는 동안 뇌는 몸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었는지 살피고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주변 지형과 장애물을 확인하며 다음 발을 어디에 디딜지도 판단해야 한다.

평평하고 익숙한 길에서는 이런 과정이 힘들지 않다. 하지만 길이 울퉁불퉁하거나 장애물이 나타나면 뇌는 균형을 잡고 발 디딜 곳을 찾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대화하면서 걸을 때 속도가 느려지고 장애물을 뒤늦게 발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런 환경이 인류의 뇌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복잡한 자연환경을 이동하면서 길을 찾고 동료와 소통해야 했던 생활이 인지 능력의 발달을 이끌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실험에서는 실제 수렵 채집 때 쓰는 다양한 두뇌 활동을 ‘7씩 빼기’라는 단순한 수학 계산 하나로만 대체해 한계가 있었다. 현장에서도 카메라 각도나 옷차림 등의 제약으로 걸음걸이의 다양한 지표 대신 오직 ‘걸음 빈도’만 측정할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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