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초등에도 담담했는데 모교 산악부 깃발에 눈물이…[히말라야 SAT 초등기]

"나는 왜 산에 가는 거지?"
춥고, 졸리고, 배고팠다. 히말라야 고산등반의 고난 3종 세트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기 위해 바위 아래에 텐트를 넓게 펼쳐 바람만 막을 정도의 간이 피난처를 만들고 버텼다. 다 같이 바위 밑 테라스에 앉아 날씨가 좋아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순간이다.
자연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됐다. 어떤 이유로 산에 가는 것인가, 무엇이 좋아서 산에 다니고, 무엇이 좋아서 힘든 행위를 하며 여기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산에 오르는 것일까? 산을 오르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막상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상에 서는 성취감, 아름다운 풍경, 함께하는 사람들 등 여러 이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지만 뭐랄까. 그런 답들은 조금 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를 담아내는 문장은 되어주지 못했다.
왜 산을 좋아하고, 오르는지. 그 답은 아무리 마음속에 계속 낚싯줄을 드리운다고 해도 낚아 올리진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답은 오직 산 정상에만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히말라야 SAT피크(6,220m) 원정대에 지원했다. 원정대는 안치영 대장을 필두로 최형욱(행정), 이의준(장비), 백종민(기록), 이상국(식량), 배서영(통신), 최지호(수송) 대원까지 총 7명으로 구성됐다.

비행기 + 지프 + 6일 트레킹 = 베이스캠프
SAT피크 베이스캠프는 멀고도 멀었다. 먼저 카트만두에서 바드라푸르까지 1시간 채 안 되게 비행기를 탄다. 이어 지프를 타고 피딤을 거쳐 타플레중마을로 들어갔다. 지프에 너무 오랫동안 타고 있어서 그런지 엉덩이가 저릿저릿했다. 타플레중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트레킹 시작점인 세카튬(1,550m)까지 또 지프를 타고 오프로드를 달린다. 도로 상태 때문에 덜컹덜컹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하좌우 춤을 췄다.
세카튬에서 암지로사(2,482m)~갸불라(2,700m)~군사(3,400m)~나핀다계곡 앞 사이트(3,940m)~베이스캠프(4,800m)까지 총 6일을 걸어야 마침내 도착할 수 있었다. 과거 키르기스스탄 원정을 갔을 때 3,000m에서도 고소증상이 심하게 왔었는데 이번에는 고도를 천천히 높인 탓인지 증상이 거의 없었다. 약간의 두통과 잘 때 호흡이 불편한 정도였다. 그만큼 고산에서는 '천천히'가 중요한 것 같다.
"비스타리(천천히)~ 비스타리~."
현지 가이드 탬바가 늘 하는 말이었다.
베이스캠프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여유 속 분주함. 쉬는 날에도 텐트 사이트를 정비하고 장비담당과 식량담당이 각자 준비해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확인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다.
먼저 고소적응을 위해 무명봉(5,587m)을 하나 올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들 체력을 많이 소진해 버렸다. 이틀간 휴식을 해도 회복이 잘 안 됐다. 급기야 본 등반을 들어가기 하루 전에는 형욱 형이 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베이스캠프에서 지원조를 맡기로 했다. 나도 내심 같이 등반을 못 하게 되어 아쉬웠고, 결정을 내린 대장님은 깊은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았고, 당사자는 더 깊은 아쉬움이 남았을 터다.

등정 루트, 남벽에서 동벽으로 전격 수정
드디어 대망의 SAT피크 초등 도전의 첫째 날이다. 원래는 정상을 바라봤을 때 왼쪽 설원으로 올라타 남벽으로 올라갈 계획이었으나 계속되는 러셀 지옥과 푹푹 빠지는 눈 때문에 진행이 안 됐다. 대장님은 동릉으로 오르자고 빠르게 판단해서 경로를 틀었다. 그걸 보며 대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신중하게 검토에 검토를 거쳐 정한 루트를 현장에서 자체 판단으로 바로 수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설원을 걷고, 호수를 돌아, 모레인 지대를 오르다가 오른쪽 세락 지대를 끼고 설원을 올라가서 캠프1(5,400m)을 구축했다. 오버행 바위 밑에 넓은 공터가 있어 아늑했다. 지호랑 서영 형이 지쳐 보이셨다. 짐이 무거운 탓인가 싶어 내가 짐 분배를 좀 잘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 전날 미리 봐둔 루트로 올라갔다. 언제 이 고도에서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는 생각에 선등을 하겠다고 했다. 비록 고난이도의 직벽 등반은 아니었지만 아직 고산등반 배밀이 단계인 나에겐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선등을 양보해 준 종민 형이 감사했고, 뒤에서 길을 봐주며 여러 조언을 해준 상국 형이 든든했다.
해지기 전에 캠프2(5,700m)를 세락으로 둘러싸인 공터에 구축했다. 원래는 내가 다른 곳에 구축하자고 했는데 상국 형이 "거긴 눈사태 위험지역이니 빨리 넘어가서 사이트를 찾으라"고 해서 바뀌었다. 그래서 크레바스를 의심하며 신중히 점검한 후 캠프2를 세웠다.
셋째 날, 하루 종일 날씨가 안 좋았다. 가민 인리치로 날씨 정보를 받아 대장님에게 보고하니 "날씨가 좋아지는 저녁에 출발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하루 종일 싸락눈과 비가 섞여 내렸다. 텐트에는 결로가 생겨 침낭 위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텐트 멤버인 상국 형과 나와 지호는 끝말잇기도 하고 낮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 답답한 텐트에서 벗어나 빨리 등반하고 싶었다.

저녁 11시, 캠프3을 설치하기 위해 위로 향했다. 앞에서 길을 뚫는 사람 3명, 뒤에 짐을 더 메고 올라올 사람 3명으로 나눴다. 선두 3명은 눈삽으로 눈을 치우면서 계속 전진했다. 동이 틀 무렵 넓은 설원에 도착했다. 밤을 새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졌다. 날씨는 전날에 비해 하염없이 맑았다. 러셀하며 등반해 설벽을 올라 능선 위로 올라갔다.
오후 3시쯤 능선 위에 갑자기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끼고 눈이 내리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날씨도 안 좋고 대원들 컨디션도 안 좋아 보였는지 대장님은 아래 설원으로 하강해서 캠프3을 구축하자고 했다.

'4시의 기적' 없었지만 초등 성공
넓은 설원에 캠프3(5,800m)을 설치하고 다음날 정상공격 인원을 선정했다. 3명이 정해졌다. 대장님, 상국 형 그리고 나였다. 기쁨보다는 걱정과 캠프3에 남을 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발목만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으로 건조국과 오니쉬 2개를 셋이서 나눠 먹고 물을 끓이고 잠에 들었다.
다섯째 날 오전 6시, 정상 공격에 나섰다. 계속 쌓인 피로 때문인지 새벽 일찍 일어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잘 때 캠프1, 캠프2 때보다 숨이 잘 쉬어졌다. 신기할 정도로 개운했다.
전날에 하강했던 능선 위로 다시 올라갔다. 상국 형과 둘이 70도의 빙벽을 가로지르는 트래버스를 하는데 국내에서 구한 이중화가 익숙하지 않아 발로 빙벽을 찍을 때 제대로 찍힌 건지 믿지 못해서 팔과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 호되게 힘들었다.
셋이서 번갈아 선등을 했다. 대장님 2번, 상국 형 3번, 나 1번이다. 더 선등을 하고 싶었는데 빙벽 트래버스 이후로 힘이 빠져서 나서지 못했다.
오후 3시경 정상 능선에 올라섰는데 짙은 안개로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늘 4시에 안개가 걷혀서 우리는 "4시의 기적"을 기다렸다. 하지만 4시가 되어도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대장님은 일단 능선을 따라 올라가자고 했다. 셋이 안자일렌으로 걷고, 걷고, 걸었다. 그렇게 능선의 끝에 도착했다.

오후 4시 15분, SAT피크의 정상이었다. 다 같이 포옹하며 고생했다는 말로 서로를 다독였다. 태극기와 원정을 후원해 준 후원사 깃발들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론 개인 사진을 찍기 위해 각자 산악회 깃발을 꺼냈다. 나는 내 뿌리, 광운대 산악부 깃발을 꺼냈다.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덤덤했는데 원정 준비를 도와준 산악부 형들, 늘 옆에서 도와주던 여자친구, 원정 가는 걸 지지해 준 부모님이 떠올라 감정이 북받쳤다. 눈물이 펑펑 났다.
오후 5시 30분쯤에 정상 능선을 덮고 있던 구름의 절반 정도가 걷히면서 저 멀리 히말라야의 산봉우리들이 구름을 뚫고 나와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웅장한 자태들을 뽐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운이 올라왔다. 혼자 남아 이 풍경 속에서 느끼는 여운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살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검정고무신 기영이 Vs 하강하는 나
하산을 시작하는데 능선 아래에 비친 3명의 그림자 위로 무지개가 활짝 피었다. SAT피크가 우리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하강하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에 검정고무신 기영이가 있으면 네팔 SAT피크에는 내가 있었다. 사건의 중심엔 늘 내가 있었다. 한 번은 마지막 하강하는 중에 체중을 너무 많이 실었는지 스노바가 뽑혀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밑 앵커에 걸려 있던 로프 덕분에 살았다. 또 한 번은 멍한 상태로 설치한 고정로프가 풀려 하강 중이던 대장님이 설원을 구르기도 했다. 다행히 큰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산에선 약간의 부주의도 동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캠프3으로 밤늦게 하산을 마쳤다. 마지막 날 오후에 캠프3에서 캠프1까지 한 번에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한 세월 걸리던 것이 내려올 때는 하루도 안 되서 내려왔다. 엄청 힘들게 올랐는데 내려오는 건 뚝딱이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굿바이 히말라야
베이스캠프로 하염없이 걸었다. 호수를 다 돌아왔을 때 가이드 탬바와 스태프 2명 그리고 형욱 형이 마중을 나왔다. 포옹하는데 너무 반가운 나머지 눈물이 날 뻔했다. 이들이 들고 온 따뜻한 밀크티는 등반기를 쓰는 지금도 그 맛이 정확히 기억날 정도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스태프들이 목에 카타도 걸어줬다. 환영해 주고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새삼 느꼈다.
철수하는 날이 왔다. 정든 집 떠나려 하니 아쉬움이 한가득 남았다. 하산하는데 몸은 밑 마을로 향하고 있으나 마음은 여전히 남았다. 군사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갸불라로 넘어가 하루를 자고 다음날 세카튬까지 쭉 내려왔다. 내려가는 내내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마지막까지 히말라야를 눈에 담고 싶은 발악이었다.
세카튬에서 지프를 타고 저녁 늦게 타플레중에 도착해 차를 갈아탔다. 밤 12시가 넘었을 때 근처 현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새벽 피딤에 있는 숙소에 도착해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 일찍 바드라푸르로 출발했다. 바드라푸르에서 카트만두행 비행기가 뜨는 순간 히말라야의 혹독하고 포근한 품속에 다시 안기고 싶었다. "나! 돌아갈래!"하고 속으로 외쳐봤다.
지금 돌아보면 이번 원정은 초등이란 결과를 얻은 순간보다 등반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몸소 느꼈던 순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여러 지형에서 확보 지점을 만드는 법, 어디에는 구축하면 안 되는지, 눈삽으로 러셀은 어떻게 하는지, 고소식량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눈사태 지형은 어떻게 읽는지 등 많은 것들을 배웠다.
무엇보다 원정대원들과 사이좋게 한국에 돌아온 것이 최고의 마무리인 것 같다. 모두 원정 준비부터 본 등반까지 맡은 직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는 최고의 원정대였다. 그리고 모든 건 대장님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SAT피크는 내게 책임감과 겸손함을 가르쳐 주었지만, 동시에 왜 내가 산을 좋아하는지도 다시 알려주었다. 벽 앞에 서서 새로운 길을 상상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순수한 즐거움, 나는 그 감정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산을 오를 것이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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