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 피했더니 이번엔 물"…산불 이재민 임시주택 덮친 폭우
주택 단지 인근 주민 주택도 담장 무너지고 차 파손


(안동=뉴스1) 공정식 신성훈 정우용 기자 = 지난해 3월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상처가 아물기도 전 물난리를 만났다. 새 보금자리였던 조립식 임시주택은 흙탕물에 잠겼고, 한 동은 거센 물살에 기초에서 떨어져 30m가량 떠밀려 갔다. 주민들은 젖은 가재도구를 꺼내 놓고 "산불로 놀란 가슴에 이번에는 물로 또 놀랐다"며 망연자실했다.
19일 오전 경북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산불 이재민 임시주택단지. 전날 밤 쏟아진 폭우가 남긴 흙과 토사가 단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진흙이 신발에 달라붙었다. 임시주택 내부까지 들어온 흙탕물을 퍼내던 주민들은 젖은 침대와 가재도구를 하나씩 밖으로 옮겼다. 나무로 만든 가구들은 물을 잔뜩 머금어 다시 사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일직면 귀미리에는 지난해 3월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을 위한 임시주택 19동이 2개 단지에 나눠 설치돼 있다. 한 단지에 10동, 다른 단지에 9동이 들어서 있다.
이 가운데 임시주택 10동이 모인 단지에 밤사이 토사와 빗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안동시 집계로는 5동이 침수됐고, 1동은 기초에서 이탈한 뒤 30m가량 떠밀려 갔다.

단지를 둘러싸고 있던 담장도 무너졌다. 주변 도로 일부가 유실되고 토사가 흘러내리면서 단지 일대는 발을 떼기도 어려운 뻘밭으로 변했다. 안동시는 인근 하천의 수위가 급격히 오르고 토사가 유입되면서 피해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 북부에서는 하천 범람과 도로 유실, 산불 이재민 임시주택 침수가 잇따랐다.
소방당국은 이날 새벽 장비 6대와 인력 16명을 투입해 임시주택에 있던 주민 8명을 구조했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임시주택 주민 김 모 씨(68)는 "밤중에 대피하라는 연락을 받고 나왔는데 순식간에 집이 둥둥 떠내려갔다"며 "산불로 놀란 가슴에 물 때문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런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한탄했다.

지난해 산불로 원래 살던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1년 4개월가량 임시주택에서 생활해 왔다. 집을 다시 지을 때까지 머물 공간이었지만 이번 폭우로 임시 거처마저 침수되면서 당장 생활할 곳과 살림살이를 다시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주민들은 빗물을 퍼내고 바닥과 벽에 붙은 진흙을 걸레로 닦아냈다. 햇볕이 비치자 물에 젖은 이불과 옷가지를 밖에 널었지만, 침대와 가구 등 상당수 살림은 다시 쓰기 어려운 상태였다.
자원봉사자들도 이른 아침부터 현장을 찾아 복구를 도왔다.
자원봉사자 B 씨(55)는 "산불로 집을 잃은 분들이 임시주택에서 다시 수해를 당해 너무 안타깝다"며 "비가 더 올 수 있다고 하니 서둘러 토사를 치우고 배수로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시주택단지 주변의 일반 주택도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일부 주택의 벽돌 담장이 무너졌고 주차된 차량이 물에 잠겼다.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은 양동이와 삽을 들고 주택 안팎에 들어찬 물과 흙을 걷어냈다.

안동시는 이날 오전부터 굴착기 등 중장비를 투입해 유실된 도로를 응급 복구하고 임시주택단지에 쌓인 토사를 제거했다. 추가 강수에 대비해 배수로를 확보하고 피해 주민의 임시 거처와 생활 지원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경북 북부에는 지난 17일부터 200㎜ 안팎의 많은 비가 내렸다. 안동과 의성에서는 하천 범람과 도로 유실이 발생했고, 산불 이재민이 생활하는 임시주택 여러 동이 침수됐다.
호우특보는 해제됐지만 주민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까지 경북을 중심으로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50㎜의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있을 것으로 예보했다.
김 씨는 물에 젖은 살림을 바라보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불이 지나가고 겨우 살 곳을 마련했는데 이번에는 물이 덮쳤다"며 "앞으로 또 비가 온다는데 어디에서 지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newso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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