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기억 품은 보물창고’ 강원에 둥지…문화향기 짙어진 횡성길
소장품 7만점 중 2600점 공개
로봇·패션·회화 장르 초월 전시
QR코드로 작품 설명 바로 확인
9월 정식 개관 … 무료개방 예정

강원 횡성이라 하면 대개 한우나 안흥찐빵 같은 풍성한 먹거리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이 고장에 예술과 사색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들어섰다.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깊숙이 간직해온 소장품을 옮겨와 일부를 관람객에게 공개한, 서울시 최초의 통합 수장고 ‘서울문화유산센터 횡성’이다.
서울의 문화예술품이 왜 횡성까지 왔을까. 시내 박물관·미술관의 수장 공간이 한계에 다다르자 서울시가 KTX와 고속도로망을 모두 갖춘 이곳에 통합 수장고를 지었다. 다만 이 센터는 여느 수장고와 결이 다르다. 유물을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 7만여점 가운데 2600여점을 ‘열린 수장고’ 형태로 관람객 앞에 내놨다.

본격적인 관람은 건물에 들어서기 전 잔디밭에서부터 시작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해온 조각 26점이 펼쳐진 야외 전시장이다.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2층 열린 수장고가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층층이 짜 올린 철제 선반이 천장까지 뻗어, 고개를 젖혀 예술품을 올려다보게 된다. 그리고 입구 근처 공중에 떠 있는 반짝이는 드레스 한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최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오픈런(문 열기 전 줄을 서는 것) 열풍을 일으켰던 금기숙 작가의 창작품이다. 가느다란 철사 뼈대에 수놓인 작은 구슬이 조명을 받아 신비롭게 일렁인다.
이곳은 문화유산 보존이 가장 큰 목적인 수장고를 투명하게 열어둔 곳이라 관람 방식이나 동선은 따로 없다. 그렇다고 관람객을 불친절하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선반들 사이, 유물 곁에는 작은 큐알(QR)코드가 붙어 있다.

서정현 서울문화유산센터 학예연구사는 “일반 전시와 달리 이곳은 관람객이 자기 기호대로 작품을 선택해 만날 수 있다”며 “궁금한 전시품은 QR코드를 스캔해 설명을 확인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해놓은 해석의 틀에 갇히지 않기에, 오히려 내 눈길이 닿는 대로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고 오래 머무는 해방감을 누릴 수 있다.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거닐다 마주치는 소장품의 면면은 그야말로 예사롭지 않다. ‘로보트 태권브이’ 피규어와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대표 의상이 한자리에서 어우러지고, 영화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의 빛바랜 비디오테이프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유물 사이를 걷다보면 마치 거대한 창고에서 나만의 보물을 찾아내는 듯한 재미에 빠진다.

얼핏 자유롭게 놓인 듯 보이지만 유물 배치에도 나름의 법칙이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볕에 강한 도자기는 창가 가까이 자리 잡았고 빛에 약한 목함과 염직물, 회화는 해가 닿지 않는 안쪽 깊숙이 물러났다. 어느 작품이 왜 창가에 있고 안쪽에 있는지 눈으로 좇다보면 공간이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됐는지 깨닫는다.
수장고 안쪽을 둘러보고 나오면 커다란 통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유리창은 횡성의 자연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액자 역할을 한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서울이 소중히 보관해온 유산과 횡성이 빚어내는 계절의 수채화가 번갈아 눈에 들어온다.
다채로운 문화예술품이 자리 잡은 센터는 향후 최대 72만점까지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규모를 갖췄다. 7월22일까지 시범운영한 뒤 9월 정식 개관하는 이곳은 누구나 무료로 둘러볼 수 있다. 풍성한 먹거리와 수려한 자연을 품은 고장, 이제 이 횡성의 푸른 산자락 아래서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 시간의 변주를 오롯이 음미해볼 차례다.

여운을 완성하는 곳은 원두부터 세심하게 엄선해 선보이는 카페다. 산장 같은 아늑한 온기 속에서 통창 너머 숲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기 좋다. 맑은 날의 청량함도 좋지만, 비가 내려 신록이 짙어지는 날이면 주변을 가득 채운 풀내음과 빗소리로 사색에 깊이가 더해진다.
위치 : 강원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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