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고점 比 20% 급락

30개 주요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17일(현지시간) 1.63% 하락하며 3거래일 연속 하락 흐름을 이어갔다.
이로써 지난달 22일 기록한 고점(종가 기준 14,637.74) 대비 20.2% 하락해 기술적 약세장(베어마켓)에 진입했다.
이날 지수는 장중 한때 5.67%까지 급락했다가 강보합세로 돌아서기도 했으나 장 후반 다시 하락 반전했다.
이날도 AI 관련 반도체주 약세가 시장 분위기를 지배했다.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의 천문학적 투자가 충분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 속에, 중국 AI 스타트업 문샷이 '키미K3' 모델을 공개한 것이 급락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문샷은 키미K3가 오픈AI와 앤트로픽의 최상위 제품들과 경쟁할 수 있다고 밝혔고, 이에 중국 AI 모델이 첨단 AI칩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지난 1월 중국 딥시크가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을 내놓았을 때 미국 기술주가 급락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월가에서는 최근 약세를 두고 건전한 조정인지 거품 붕괴 신호인지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단순한 기술주 조정이 아니라 '디레버리징 사건'이며, 연산 능력 확대만으로 우위를 점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CFRA리서치의 샘 스토벌 수석투자전략가는 반도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며, 반도체가 워낙 앞서 나갔기 때문에 펀더멘털이 따라잡을 시간이 필요한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하락에는 채권시장발 부담도 겹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알파벳, 메타, 아마존, 오라클 등이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발행한 대규모 채권이 투자자들에게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이 지난해 초부터 발행한 채권 규모는 3000억 달러에 이르며, 미국 채권시장이 이를 단기간에 소화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이후 발행된 하이퍼스케일러 채권의 약 79%가 첫 거래일 대비 가산금리가 확대됐다. 채권 가격은 발행가 대비 평균 3.3포인트 하락했다.
조달 비용 상승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차세대 반도체 수주잔고 증가 속도를 둔화시킬 수 있는 선행 지표로 꼽힌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 자본지출이 10% 축소될 경우 HBM 수요 증가율이 기존 전망 대비 12~15%포인트 둔화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6년 HBM 물량은 선행 발주와 장기 계약으로 보호받고 있어 당장의 수주 취소 가능성은 낮지만, 조달 비용 상승이 장기화하면 HBM4 등 추가 주문 협상과 평균판매단가 방어에서 단가 인하 압박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7일째 이어지며 국제유가가 급등한 점도 투자 심리를 악화시켰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8월물은 전장보다 4.48% 급등한 배럴당 82.49달러에 마감해 지난달 15일 이후 처음으로 80달러를 웃돌았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공중급유기를 추가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로 확전 우려가 커졌고, 이란은 보복으로 쿠웨이트의 발전소 및 담수화 시설을 공격했다.
이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406.55포인트(0.77%) 내린 52,146.42에, S&P500 지수는 76.08포인트(1.01%) 하락한 7,457.69에, 나스닥 종합지수는 361.70포인트(1.40%) 떨어진 25,520.24에 마감했다.
대장주 엔비디아는 2.21% 하락했고 마이크론(-0.50%), AMD(-1.03%), 인텔(-2.00%), 샌디스크(-3.99%) 등 주요 반도체주가 모두 약세를 보인 가운데 SK하이닉스 ADR만 1.13% 반등했다. 엔비디아는 장중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애플에 내주기도 했으나 종가 기준으로는 지위를 지켰다.
달러화는 뉴욕 증시 낙폭이 장 후반 축소되면서 약보합권으로 마감했다. 달러인덱스는 전장보다 0.019포인트(0.019%) 내린 100.729를 기록했다. 안전자산인 금값은 온스당 4018.80달러로 0.7% 올랐다.
사진=AI생성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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