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매니저" 오디션장에서 감독 속인 오정세…결국 그가 맡은 배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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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초 어느날이다. 그는 매니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데 오정세씨는 언제 와요"라고 물었다.
오정세의 매니저 연기가 만들어낸 나비효과는 '남자사용설명서'에만 그치지 않았다.
"어떤 감독이나 제작자든 오정세랑 함께 일하면 편할 수 밖에 없다"(양익준 감독)는 말이 나오는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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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 몰랐던 배우 오정세<4·끝>
2012년 초 어느날이다. 이원석 감독은 장편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2013)의 오디션장에 도착했다. 한 남자가 먼저 와 있어서 대화를 나눴다. 남자는 ‘오정세 매니저’로 자기를 소개했다. 오정세는 이날 조연 역할로 오디션을 보기로 약속돼 있었다. 이 감독은 당시 오정세의 얼굴을 아예 몰랐다. 그는 매니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데 오정세씨는 언제 와요”라고 물었다. 매니저는 “제가 오정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오정세가 이 감독을 웃기기 위해 미리 준비한대로 매니저인척 ‘연기’를 한 거다.
이 감독은 이날 오정세와의 만남을 잊을 수 없었다. 재미있고 인상이 깊어 오정세가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남자사용설명서’는 한류스타 이승재가 광고 조감독 최보나(이시영)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웃음으로 전하는 로맨스코미디다. 오정세가 오디션을 본 역할은 진 대표였다. 이승재의 소속사를 이끄는 인물이었다.
이 감독은 오정세를 본 후 역발상이 떠올랐다. 한류스타라고 반드시 꽃미남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남자사용설명서’는 코미디이니 한류스타처럼 생기지 않은 이가 한류스타로 등장하면 더 재미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당초 이승재 역할은 막 떠오르던 젊은 미남 배우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이 감독은 젊은 미남 배우 대신 오정세를 이승재 역에 낙점했다. 투자사와 제작사를 설득했다. 오정세가 결국 캐스팅됐다.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를 연기하려 했던 배우가 소속사 간판 스타로 돌변한 거다. 당초 오정세가 맡을 예정이었던 진 대표는 배성우가 연기했다. 오정세는 독립영화 ‘8월의 일요일들’(2006)로 장편 첫 주연을 경험한 후 상업영화 ‘라듸오 데이즈’(2008)와 ‘커플즈’(2011)에서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라듸오데이즈’와 ‘커플즈’는 주연배우가 많다. 오정세는 주연이라고 하나 비중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오정세와 이시영이 온전히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오정세에게는 사실상 상업영화 첫 주연이라 할 수 있다. 능청스러운 오정세의 매니저 연기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오정세 머리에서 나온 '엉덩이 장면'

‘남자사용설명서’는 연기 순발력 좋고, 여러 상황을 대비해 연기 준비를 하는 오정세의 장점이 잘 발현된 영화다.
‘남자사용설명서’에는 오정세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장면이 있다. 한류스타 이승재가 잘못 온 문자메시지를 오해하고 최보나의 숙소에서 기다리는 장면이다. 보나가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한 승재는 목욕 타월만 걸치고 있다. 마침 보나 숙소에 촬영팀이 몰려오면서 승재는 몸을 숨기려다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매달리게 된다. 타월이 벗겨지고 난간에서 떨어진 승재는 벌거벗은채 어쩔줄 모른다. 그런 승재를 본 아이가 승재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장면이 웃음을 부른다. 원래 엉덩이 때리는 장면은 없었다. 오정세가 제안해 만들어졌다. 관객에게 폭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아역배우에게 연기를 요구하기 난감한 장면이었다. 아역배우 부모가 촬영현장을 지키고 있기도 했다. 잘못 묘사하면 음란하고 폭력적인 모습이 될 수 있었다. 아역배우에게 장면을 차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준 이는 오정세였다. 촬영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이원석 감독은 아주 재미난 장면이 나와 촬영장에서 만족스러 했다. 웃음이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고 그는 판단했다. 각본에는 있었으나 제작비 문제로 촬영에서 빠진 장면을 찍고 싶은 욕심이 났다. 승재가 알몸으로 자가용을 탄 채 집에 가다가 음주단속에 걸려 망신살이 뻗치는 대목이었다. 배우와 스태프가 의기투합해 이 장면 촬영이 즉석에서 이어졌다.
‘남자사용설명서’는 2013년 2월 14일 개봉했다. 로맨스물이니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했다. 하지만 설날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영화들의 흥행 열풍이 거센 시기였다. ‘7번방의 선물’(1월 23일 개봉)은 관객 1,281만 명을 모았고, ‘베를린’(1월 30일 개봉)은 716만 명이 봤다. 두 흥행작 틈바구니에서 ‘남자사용설명서’가 설 자리는 좁았다. 관객은 50만 명에 불과했다.

‘남자사용설명서’는 흥행에서 재미를 못 봤으나 신인 감독 이원석이라는, 알찬 열매를 남겼다. 영화계는 이 감독을 주목했다. 이 감독은 곧바로 ‘상의원’(2014)을 연출할 수 있었다.
오정세의 매니저 연기가 만들어낸 나비효과는 ‘남자사용설명서’에만 그치지 않았다. 영화사 어바웃잇의 김성환 대표는 ‘남자사용설명서’를 보고 잔상이 오래 남았다. 김 대표는 언젠가는 오정세와 함께 일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김 대표는 ‘극한직업’(2019)에 오정세를 캐스팅했다. 마약상 두목 테드 창 역할이었다. ‘극한직업’은 극장에서만 1,626만 명이 봤다. 테드 창은 조연 역할이었으나 오정세는 장면을 제대로 훔치며 관객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오정세는 어바웃잇이 제작한 ‘와일드 씽’(2026)에서 가수 최성곤을 연기하며 주연 강동원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는 조연이 됐다. ‘남자사용설명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오정세는 몇년 전까지 버스타려고 줄을 섰다

오정세는 ‘극한직업’과 더불어 같은 해 방송한 KBS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오정세는 ‘동백꽃 필 무렵’으로 제56회 백상예술대상 드라마 부문 남자조연배우상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위로와 보상이 따라옵니다”라고.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 뒤늦게 연기 이력을 활짝 꽃피운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묻어나는 소감이다.
스타 배우가 됐으나 오정세는 한결 같다. 그와 함께 일해 본 감독과 제작자, 배우들의 공통된 평가다. 무명시절이나 대중의 별이 된 지금이나 똑같이 행동한다. 오정세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대하기도 한다. 어느 영화나 드라마든 촬영이 끝나면 스태프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다 한 후에야 자리를 떠난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2021) 촬영 때는 배역의 크기에 상관 없이 이동이 힘든 배우들을 모아 자기 차로 촬영장에 함께 가고는 했다. 촬영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니 스태프는 오정세 촬영 날을 기다리기 마련이다. “어떤 감독이나 제작자든 오정세랑 함께 일하면 편할 수 밖에 없다”(양익준 감독)는 말이 나오는 이유들이다.

오정세는 스타가 된 후 “달라졌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오히려 조심한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믹스커피를 누군가가 건네도 흔쾌히 받아든다. “유명해지고 건방져 졌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다고 주변에 널리 알리는 것도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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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당신이 잘 몰랐던 배우 오정세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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