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소아 심장수술의 마지막 보루... 서울대병원에 저 혼자 남습니다

김지원 기자 2026. 7. 18. 00: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곽재건 서울대병원 소아심장 전문의
“아기 심장에 눈 빛나던 인턴들… 힘든 현실에 다른 선택”
“주 130시간 근무에 소송 부담, 누가 이 일을 한다고 하겠나”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에서 곽재건 소아흉부외과 교수가 담당 환아를 진찰하고 있다. /장경식 기자

지난 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 5시간에 걸쳐 수술을 마친 곽재건(51) 흉부외과 교수가 소아중환자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심실중격결손(좌우 심실 사이의 벽에 구멍이 생겨 혈액이 새는 병)을 갖고 태어난 생후 3개월 아기를 수술하고 중환자실로 옮긴 직후였다. 곽 교수는 “원래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수술했는데, 떠난 동료가 맡던 수술까지 맡게 되면서 최근에는 거의 매일 수술을 하고 있다”며 “응급 환자가 생기면 나눠 대응하던 구조가 사라져 요즘엔 거의 매일 퇴근 후에도 병원을 쉽게 떠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연간 600건이 넘는 소아 선천성 심장 수술을 맡아온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가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는 일반 병원에서 수술하기 어려운 선천성 소아 심장기형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갖고 문을 두드리는 곳이다.

이 병원에서 소아 심장 수술이 가능한 집도의 3명 중 한 명이 지난달 개인 사정으로 사직 후 미국으로 떠났고, 나머지 한 명은 1년 반 뒤 정년 퇴임한다. 후임을 구하지 못하면 서울대병원에 소아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곽 교수 홀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후임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소아흉부외과 전문의는 27명. 이 중에서도 독립적으로 고난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는 15명에 불과하다.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서울대병원이 다른 병원의 집도의를 데려오면 해당 병원은 인력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픽=김성규

소아 심장 수술은 의료계에서도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이 필요한 분야로 꼽힌다. 체중 2~3㎏의 신생아는 물론, 1㎏이 채 되지 않는 미숙아를 수술하기도 한다. 환자마다 심장과 혈관의 구조, 중증도가 다르기에, 풍부한 경험을 갖춘 집도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최소 3~4명의 집도의가 있어야 정상적인 수술·진료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곽 교수의 설명이었다. 이래야 수술과 외래 진료, 응급 환자 대응을 나눠 맡으면서 후배 의사 교육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만약 정말 혼자 남게 된다면 수술 건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저마저 (버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가장 어려운 수술을 도맡아 하던 서울대병원이 수술 건수를 줄이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수술 대기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면서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 소아흉부외과에 신규 인력 유입이 사실상 끊기면서 예고된 위기가 현실화한 것에 가깝다. 대한소아심장학회에 따르면 소아 흉부외과 세부 전문의는 2008년만 해도 15명이 배출됐지만, 이후에는 매년 0~3명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한 명도 배출되지 못했다. 또 국내 소아 흉부외과 집도의의 절반 이상은 10년 내 은퇴를 앞둔 50대 이상이다. 곽 교수는 “지금 소아 심장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는 한 세대에 4~5명 정도뿐”이라며 “선배들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새로 하겠다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입원 병동에서 곽재건 소아흉부외과 교수가 회진을 끝내고 커튼이 내려진 병상 사이에 섰다. 곽 교수는 “지금까지 이 일이 정말 재밌고 보람이 있기에 계속할 수 있었다”면서도 “(의료진 책임은 크고 보상은 없는) 열악한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후배들에게 이 일을 선택하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장경식 기자

곽 교수는 수술의 어려움과 소송 부담 등 책임은 큰 반면, 낮은 수가와 ‘적자 진료과’라는 병원 내 인식 등 충분한 보상은 뒤따르지 않는 구조를 문제로 꼽았다. 실제로 소아 심장 수술은 수술 난도와 인력·시간 투입에 비해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부가 지난 2023년부터 소아 심장 수술 항목을 난도에 따라 세분화하고 저체중·신생아 수술 가산을 확대하는 등 보상 체계 개편에 나섰지만, 이미 고착화된 인력난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형두 대한소아심장학회 이사장은 “소아 심장 분야는 수술 자체도 힘든 데다, 장시간 당직과 응급 대응, 의료 사고 발생 시 소송 부담까지 모두 떠안아야 하는 복합적인 구조”라고 했다.

곽 교수는 “수술방에 들어온 인턴들이 아기 심장을 직접 만져보면서 눈을 빛내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다”면서 “그러나 막상 진로를 선택할 때가 되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그는 “나이 쉰이 다 되어서도, 주 130시간씩 일하던 전공의 때와 비슷하게 일하는 선배들을 보며 후배들은 ‘어떻게 저렇게 사느냐’고 한다. 그러니 누가 이 일을 하려고 하겠냐”고 했다.

☞곽재건 교수

1995년 서울대 의대 입학 후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까지 모두 같은 병원에서 마쳤다. ‘소아 심장’ 전문가다. 보건복지부 지정 심장 전문 병원인 부천세종병원에서 2008~2016년 소아흉부외과 진료과장을 지냈고, 이후 서울대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