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만평 ‘안마봉’] 국민 안전을 자른 남자, 문밖에 선 피해자들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2026. 7. 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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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정승혜
‘장윤기 사건'은 충격적이다. 

지난 5월 5일 백주 대낮 광주 도심에서 여고생 이채원 양을 흉기로 살해하더니, 비명을 듣고 달려온 남자 고교생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현직 경찰관이라는 장윤기 아버지와 '짜고 친' 경찰 수사는 더 충격적이다. 

이 사건은 당초 경찰이 장윤기를 형량 하한선이 징역 5년인 일반 살인죄로 송치했지만, 검찰의 보완수사로 실체가 드러났다. 검찰은 블랙박스 영상과 잔혹하게 훼손된 그의 '리얼돌', 그리고 DNA 시료 감정 보고서 등을 토대로 성범죄 목적이 있었다고 보고 '강간 목적 살인죄'로 재판에 넘겼다. 최소 징역 5년이던 죗값이 무기징역과 사형으로 바뀐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담당 수사팀으로부터 수사 상황을 수시로 전달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장윤기는 7월 13일 열린 공판에서 검찰이 제기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묻혔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을 보며 국민은 경찰 내부자 유착 등으로 사건이 은폐·왜곡될 수 있다는 걸 새삼 알았다.

앞서 지난 4월 장모 시신을 캐리어에 담아 유기한 '대구 캐리어 사건'이나, 지난해 10월 '김창민 영화감독 폭행 사망사건'도 모두 검찰의 보완수사로 경찰의 부실 수사가 드러났다.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도 검찰 추가 수사로 피고인 혐의가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바뀌었다. 

민변과 경실련 등 진보 단체와 정부 인사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데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따로 없다. 근심하는 국민을 보고도 여당은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아무리 8월 전당대회에서 강성 당원들의 표 때문이라고 해도 여당 당권 주자들의 '전면 폐지' 속도전에 어안이 벙벙하다. 국민은 제2의 돌려차기 사건을 겪어도 된다는 말인가.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배신한다면 국민의 심판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 

1933년
지구를 자른 여자, 문밖에 선 남자들

- ‘신동아’ 1933년 3월 호
1933년 '신동아' 3월 호에 실린 이 만평은 한눈에 보아도 기이하고 익살스럽다. 한 여성이 거대한 수박처럼 생긴 지구를 칼로 자르고 있고, 문밖에는 남성들이 몰려 있다. 그들은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문밖에서 당황한 듯 보인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점차 확장되던 시기, 남성 중심의 질서가 흔들린다는 불안과 당혹감을 풍자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물론 1930년대 조선에서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시 조선 사회에는 여전히 남존여비 관습이 강했고, 여성의 삶은 결혼·가정·노동·교육의 여러 제약 속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도 있었다. 교육과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여성은 이전보다 훨씬 자주 공적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20~30년대 신문과 잡지에 '직업부인'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 것도 그 변화를 보여준다. 여점원, 교사, 전화교환수, 간호부, 여의사, 산파, 여기자, 여배우, 타이피스트 같은 직업이 새로운 여성 직업군으로 거론됐고, 1920년대 후반에는 데파트걸(백화점 매장에서 안내, 매대 관리 등을 맡는 여직원들의 통칭), 숍걸(물건을 파는 여직원), 버스걸 같은 말도 등장했다. 

공장 노동 현장에서도 여성의 존재는 작지 않았다. 1931년 말 10인 이상 공장을 기준으로, 전체 공장노동자 중 여성은 35.6%에 이르렀다. 방적공업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같은 업종 전체의 78.8%를 차지했다(‘신편 한국사' 50권, 여성노동운동; 高橋龜吉, 現代朝鮮經濟論, 千倉書房, 1935, 420쪽 재인용). 물론 이는 여성의 지위 향상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여성들이 산업화의 하층 노동력으로 동원됐다는 현실도 함께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 숫자는 중요하다. 여성은 더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었고, 사회의 생산 현장과 도시의 일상 속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었다.

이 만평이 흥미로운 것도 바로 그 변화를 과장된 상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지구를 수박처럼 자르는 여성은 현실의 여성이라기보다는 남성 중심 사회가 느낀 상상 속의 위협에 가깝다. 1933년의 이 만평은 흔들리기 시작한 남성 중심 질서의 불안을 익살스럽지만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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