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만성적 주택난…오피스의 ‘주거용 변신’이 해법 될까
빈 사무실을 집으로…市, 15년간 10만 가구 공급 추진
(시사저널=김은별 미국 통신원)
뉴욕 맨해튼 중심인 42스트리트. 타임스스퀘어와 그랜드센트럴, 유엔(UN) 본부가 나란히 줄지어 있는 선상에 위치한 37층짜리 건물에서 7월7일 아침 갑자기 벽돌이 떨어졌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뉴욕시 소방국이 도착했을 땐 이미 21층과 22층의 구조 기둥 일부가 휘었고, 건물 상부 층 일부에서 처짐 현상이 발생했다. 인근 건물과 학교 등의 주민들은 일제히 대피했고, 보행자와 차량 통행 모두 인근 지역에서 폐쇄됐다.
사고가 발생한 프로젝트는 1960~70년대에 건설된 옛 화이자 본사 건물 두 동을 주거시설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활발해지면서 사무실에 빈 공간이 많아지자, 사무실을 1600여 세대의 고급 아파트로 전환하는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2024년 착공된 이 프로젝트는 내년 완공될 예정이라 많은 관심을 받던 상태였다. 사무실 구조의 레이아웃을 주거용 유닛으로 바꾸고 기존 건물에 추가 층을 올릴 계획이었다. 계획된 1600채 아파트 중 400채는 '어포더블 하우징(affordable housing·중산층과 서민 대상의 임대아파트)'으로 분류돼 서민에게 공급될 예정이라는 점도 관심을 끈 포인트다.
'건물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결국 인근 도로엔 폐쇄 조치가 내려졌고, 주변 건물 5곳에는 퇴거 조치가 내려진 뒤 현재 안전 점검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당장 건물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도 나왔지만, 시민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한 뉴욕 시민은 "42스트리트는 아예 피해 다닐 정도"라고 말했다. 해당 건물 입주를 고민했다는 한 남성은 "비싼 렌트 비용 때문에 계속 외곽에서 살다가 맨해튼 도심에 살 수 있다니 기대됐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누가 무너질 수도 있는 건물에 살고 싶겠냐"고 반문했다.

시내 오피스 건물을 서민 대상 임대아파트로
뉴욕시는 만성적인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건물을 활용한 공급 확대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24년 뉴욕시의회가 통과시킨 '시티 오브 예스(City of Yes)' 조례안은 향후 15년 동안 약 10만 가구의 신규 주거 유닛 공급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는 주택 지하실 개발, 단독주택 지역의 추가 주거 유닛 허용과 함께 오피스 건물의 주거 전환 확대 방안도 포함됐다.
오피스 건물을 주거용으로 바꾸는 아이디어는 팬데믹 이후 특히 힘을 받았다.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정착됐고, 이로 인해 많은 맨해튼 오피스 건물이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시 감사원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이었던 2019년 말과 비교했을 때 2025년 초 기준 최고급 5스타 오피스는 회복세를 보였지만, 나머지 클래스 B·C 등 일반 오피스 시장은 여전히 높은 공실률과 낮은 수요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시의회는 뉴욕시 오피스 건물주가 주거용 건물로 전환하고, 아파트 유닛의 25%를 어포더블 하우징으로 공급하면 뉴욕시 재산세를 면제해 주는 조례(467-m)를 제정했다. 주거용 건물 전환 대상이 되는 오피스 건물 범위도 확 넓혔다. 기존에는 맨해튼 59스트리트 남단에 위치한 건물의 경우 1961년 말 이전에 건축된 건물에 한해 개조를 허용했지만, 이제는 1991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면 모두 주거용 유닛으로 바꿀 수 있게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달 기준으로 약 1만4500가구가 오피스 전환을 통해 공급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약 3600가구는 어포더블 하우징으로 계획됐다. 이렇게 렌트용 주거 공간이 늘고 있어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한창 개조 중이던 건물이 구조 안전 경고를 받으면서 찬물을 확 끼얹은 셈이다.
뉴욕시가 만성적인 주택 부족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인구 증가세는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뉴욕에는 일자리와 교육 등을 이유로 인구 유입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인구 증가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강한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 확대가 쉽지 않은 구조 때문이다. 특히 맨해튼 외 지역인 퀸즈, 브루클린, 스태튼아일랜드 상당수 지역은 저층 주거 중심으로 용도가 제한돼 있다. 건물 높이나 용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조닝(zoning·용도지역 제한)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하고, 커뮤니티보드(CB)와 시의회 등 여러 단계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건설 비용 상승도 신규 공급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몇 년간 인건비와 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개발 비용 부담이 커졌다. 임대료(렌트) 규제 역시 논쟁적인 요소다. 뉴욕에는 약 100만 채의 아파트가 적용받는 '렌트 안정화(Rent Stabilization)'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기존 세입자의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막고 주거 안정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기 거주 세입자가 시장 가격보다 낮은 임대료를 유지하면서 이사를 꺼리는 '잠김 효과(lock-in effect)'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 결과 시장에 새롭게 나오는 렌트 물량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낡은 건물의 재개발, 안전 리스크는 변수
개발업자들은 높은 건설 비용과 렌트 규제가 결합될 경우 신규 임대주택 사업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개발업자는 세제 혜택과 연계된 임대주택 프로그램 참여를 기피하거나, 규제가 적은 시장 임대 중심으로 사업 방향을 조정하기도 한다.
포화 상태에 다다른 섬, 새로운 땅을 확보하기 어려운 맨해튼에서 기존 오피스 건물을 주거시설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과거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채운 상징적인 건물들이 금융과 기업 활동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일부 오피스 건물이 주거 공간으로 변모하며 도시 구조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번 사고는 오피스 전환 정책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보여줬다. 수십 년 된 건물을 대규모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구조 안전성을 얼마나 철저히 검증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오피스 전환 정책 자체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뉴욕시가 앞으로 추진할 수만 가구 규모의 전환 사업에서는 안전 관리와 공사 감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뉴욕의 만성적인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급 확대가 불가피하다. 다만 이번 사고는 공급 속도만큼이나 안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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