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배민의 ‘동의의결’ 기각 이유는?[박상영의 경제본색](20)

최근 쿠팡과 배달의민족이 각각 3000억원, 600억원 규모의 상생안을 담은 동의의결안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 소상공인 단체는 “수수료 인하와 다양한 지원책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며 공정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동의의결이 무산되면서 공정위는 조만간 전원 회의를 열어 두 회사의 법 위반 여부와 제재 수위를 최종 판단한다. 수천억원 규모의 상생안까지 내놨는데도 동의의결이 기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동의의결은 기업이 스스로 시정 방안을 마련하면 위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 후 거래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과징금 등 제재 대신 자진 시정과 상생 방안을 이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최근 기업들의 동의의결 신청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동의의결 신청은 13건으로, 제도가 도입된 2014년 이후 전체 신청 건수(31건)의 약 40%가 지난해에 집중됐다. 이는 2022년 7월 대규모유통업법과 하도급법 사건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서 과징금 대신 신속한 피해 구제와 자발적인 상생을 선택하려는 기업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기업 동의의결 신청 큰 폭으로 늘어
지난해에는 편의점 4사가 납품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 혐의와 관련해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 등 5개사는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혐의와 관련해 동의의결 절차를 밟았다.
기업들이 동의의결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 위반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위법 판단이 확정되면 이후 민사 손해배상 소송이나 집단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지만, 동의의결은 법 위반을 인정하는 절차가 아닌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플랫폼 기업처럼 이용자와 입점 업체가 많은 사업자는 장기간 이어질 수 있는 법적 분쟁과 평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의의결 유인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가 과징금 상·하한을 모두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면서 동의의결 신청은 당분간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동의의결 문턱 역시 높다. 올해에만 쿠팡과 배달의민족을 포함해 4건의 동의의결안이 기각됐다. 공정거래법은 사업자가 제시한 시정방안이 예상되는 제재와 균형을 이루고 경쟁 질서 회복과 소비자 보호에 적절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절차 규칙 역시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경쟁 질서 회복과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요구한다. 최근에는 시장 영향력이 큰 사건에서는 지원 규모보다 경쟁 제한 행위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보고 있다.
실제 공정위는 경쟁 제한 행위를 직접 해소하는 시정방안을 제시한 경우는 동의의결을 받아들여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브로드컴이다. 브로드컴은 국내 셋톱박스 제조사에 자사 시스템반도체(SoC)만 사용하도록 요구한 혐의와 관련해 앞으로 특정 반도체 사용을 강요하지 않고, 경쟁사 제품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계약 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시정안을 냈다. 공정위는 이를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하는 실질적인 거래질서 개선 방안으로 인정해 동의의결을 의결했다.

구글 역시 유튜브 프리미엄과 유튜브 뮤직을 묶어 판매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동의의결을 신청한 뒤 유튜브 뮤직을 제외한 동영상 전용 상품인 ‘유튜브 프리미엄 라이트’를 국내에 출시하기로 했다. 소비자가 다른 음악 서비스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확대한 점이 반영됐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단순한 금전 지원이 아니라 문제가 된 거래 관행 자체를 바꾸겠다는 약속을 담았다는 점이다. 공정위도 이러한 구조적 개선 방안을 경쟁 질서 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조치로 평가했다.
동의의결 성패 거래질서 회복 관건
반면 공정위는 2023년 가맹 택시에 대한 이른바 ‘콜 차단’ 혐의를 받은 카카오모빌리티의 동의의결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카오모빌리티는 100억원 규모의 경쟁촉진·상생기금을 조성해 택시기사 자녀 장학금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법 위반 여부가 비교적 명확하고 시정방안도 구체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시정방안이 거래질서 회복과 소비자 보호 등 공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고, 동의의결 절차가 개시되더라도 신속한 사건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신청을 기각했다. 최근 공정위가 동의의결을 기각한 사건에서도 이처럼 피해구제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 동의의결을 기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쿠팡과 배달의민족도 거래질서 개선 방안을 동의의결안에 담았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이미 시행 중인 조치를 담은 데다 외식산업 활성화를 위한 프로모션과 마케팅 지원, 성장 단계별 맞춤 프로모션 패키지 지원 등 홍보성 마케팅 수단이 다수 포함됐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생 방안에 홍보성 마케팅 수단을 포함해 가져왔기 때문에 순수한 자진 시정 노력으로 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며 “소상공인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해온 ‘전반적인 수수료율 인하’ 등의 핵심적인 대책은 교묘하게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동의의결의 성패를 가른 것은 상생안의 규모가 아니라 거래질서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지다. 수천억원 규모의 지원책도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할 구체적인 시정방안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동의의결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이번 사례가 보여준 셈이다. 여기에 법 위반 여부가 비교적 명확하고 시장 파급력이 큰 사건이라는 점도 공정위가 동의의결에 신중한 판단을 내린 배경으로 꼽힌다.
이번 기각은 향후 플랫폼 기업들의 동의의결 활용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영향력이 큰 사건일수록 단순한 상생기금이나 지원책보다 경쟁 제한 행위를 직접 해소할 수 있는 구조적인 시정방안이 동의의결 성립의 핵심 요건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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