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과 김용범[전성인의 난세직필](52)

2014년 7월 16일, 최경환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취임사에서 “한겨울에 한여름의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부동산시장의 낡은 규제를 조속히 혁파”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LTV, DTI 규제를 완화하는 ‘7·24’ 대책이 뒤를 이었다. 소위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 이것이다.
이 정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본인은 자랑스러워하는 듯하다. 최 전 장관은 올해 2월 한 언론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당신 말 들어서 그때 집 사기를 잘했다”며 주위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다고 털어놓았다.
부동산에 불 지른 2014년 최경환
그때 집을 산 사람들은 그 이후 폭등한 집값을 보며 뿌듯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집을 못 산 사람은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특히 그때는 아직 학생 신분이어서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기회가 없었던 2030세대는 ‘영끌’을 해도 가질 수 없는 신기루가 된 아파트를 보며 ‘모든 것을 누린 기성세대’와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는 자신들’ 간의 넘을 수 없는 간극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젊은 세대가 찾아간 곳은 어디였을까? 적은 돈을 가지고도 제법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곳. 바로 주식시장이었다. 주식 투자는 어쩌면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부의 축적 수단’이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였을지 모른다.
이번 정부는 그런 젊은 세대의 절박함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주가지수 5000’ 공약이 그 대표적 예다. ‘나를 뽑아주면 주식에 목맨 너희들 돈 벌게 해줄게.’ 물론 주식시장을 중시하는 정책의 장점도 있다. 부동자금의 물꼬를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 돌려 생산과 투자를 장려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주가 상승의 정치적 효능을 알게 된 이번 정부는 그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주가 상승은 자본시장의 구조를 정상화할 때 결과적으로 얻는 성과가 아니라 그 자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해야 할 지상 목표가 돼버렸다.
그래서 주가 상승을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왜곡도 서슴지 않는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 대신 ‘망국적인 삼전닉스 투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식시장의 투기는 또다시 부동산 투기를 자극하며 ‘망국적 투기의 쌍두마차’가 날뛰는 형국이 된 것이다.
혹자는 최근의 삼전닉스 열풍은 이재명 정부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AI 붐이 초래한 반도체 산업의 유례없는 호황 때문이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때 정상적인 정부라면 시장의 과열과 과속 그리고 탐욕에 경종을 울리며 시장의 안정을 다질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의 정책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름이 김용범 정책실장이다. 올해 1월 김 실장은 주요 금융투자회사 대표들과 비공식 간담회를 가진 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고배율·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도입을 금융위원회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지난 5월 27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라는 ‘몰빵 빚투 상품’이 출시됐다.
물론 이런 상품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도 있고 홍콩에도 있다. 따라서 이런 상품의 출시를 검토하라고 했다고 하여 조리돌림을 하는 것은 심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만일 새로운 금융상품을 도입해 투자자의 선택폭을 넓히는 것이 정책 목표였다면 상품의 설계, 시장에 미칠 효과, 투자자 보호 방안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충분한 준비를 거쳐 출시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전광석화처럼 추진됐다. 이번 정책의 목적이 투자자의 선택폭을 넓히는 데 있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반론이 소위 ‘서학 개미 환류론’이다. 서학 개미들의 해외 주식 투자 때문에 환율 문제가 심각하니, 서학 개미를 국내로 유인하기 위해 ‘매력적인 상품’을 출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몰빵이 나왔고, 수익률 더블 구조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학 개미들이 바보인가? 잠시 국내로 향했던 서학 개미들의 시선은 최근 다시 AI 관련 미국 주식이나 하이닉스 ADR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상품이 초래한 국내시장 급등락의 경제적 비용은 개미투자자들이 대부분 떠안았다.
물론 주식 투자는 자기 책임으로 하는 것이고, 금융투자상품은 기본적으로 원본 손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높은 수익률에는 높은 위험이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개미투자자들이 이런 점을 몰랐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전체적인 위험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투자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주식 광풍 부추긴 2026년 김용범
그럼 이들의 손해는 온전히 자기 책임이니 별도의 정책은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금융안정 측면에서 대책이 시급하다. 이미 많은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삼전닉스에 대한 레버리지 ETF는 시장의 상승 또는 하락 추세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시장의 변동성을 증폭시킨다. 또한 투자자 상당수가 제1금융권은 물론 제2금융권으로부터 투자자금을 차입해서 이런 상품에 투자했기 때문에 다른 금융기관으로 불안정이 파급될 수도 있다. 따라서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정 가능성을 평가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졸속 대책으로 일하는 척하는 ‘시늉’만 내서도 안된다. 졸속 대책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또 다른 불안정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지난 7월 16일에 부랴부랴 내놓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ETF·ETN) 보완방안 마련」 대책은 기본적으로 투자자 예탁금을 상향 조정하는 것인데, 과연 이것이 시장의 변동성 증폭을 막는 본질적인 해결책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왜 젊은 세대가 위험을 알고도 불나방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 상품이 위험을 수반하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는 젊은 세대가 왜 영끌에 빚투를 불사하면서 몰빵 상품에 올인한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다른 곳에서는 삶을 의미 있게 영위할 가능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번듯한 직장을 잡기 어렵고,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좌절감. 어쩌면 그것이 젊은 세대를 이런 막장으로 내몰았을지 모른다.
2014년에 최경환 전 장관의 말을 믿었던 사람들은 지금 든든한 노후를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부동산에 불을 지르는 정책은 그 광풍에 탑승할 기회조차 없었던 젊은 세대를 좌절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다. 현재 주식시장에서 보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씨앗은 훨씬 이전에 뿌려졌던 것이다.
전성인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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