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타보고 죽어야지”… 예약 전쟁 부르는 399만원 침대열차

이경은 기자 2026. 7. 1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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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0대 버킷리스트 1순위
자식들은 ‘효도 티켓팅’ 진땀
6개월 기다린 내돈내산 여행
[왕개미연구소]

“OO가 이번에 해랑 다녀왔다더라…”

요즘 60~80대 여성들의 동창회에서 빠지지 않는 화제가 있다. 코레일의 관광용 침대열차 ‘해랑’이다. “한 번은 타보고 죽어야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예약 창이 열리자마자 객실이 동나서 자녀들 사이에서는 ‘효도 여행 티켓팅’으로 불린다.

동창회에 다녀온 기자 어머니도 “나만 못 가 봤다”며 해랑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들이 하나둘 다녀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걱정 마시라’고 바로 예약해 드리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해랑은 매달 한 차례, 두 달 뒤 출발하는 상품 예약을 홈페이지에서 진행한다. 평생 처음으로 PC방까지 찾아가 클릭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5전 5패. 번번이 고배를 마시자 전략을 바꿨다. 경쟁이 치열한 2인실 대신 3인실을 공략했고, 6개월 도전 끝에 마침내 예약에 성공했다.

해랑은 '해'와 함께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유람하는 기차라는 뜻이다./해랑 홈페이지

◇2인실 321만원인데도 매진... 예약은 전쟁

해랑 이용 요금은 성수기(3~12월) 기준 2인실 321만원, 3인실 399만원, 4인실 439만원이다. 교통비·숙박비·식비·입장료 등 모든 비용이 포함된 2박 3일 국내 여행이라고 해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도 예약 경쟁은 치열하다. 여행을 진행한 해랑플래너 노기택씨는 “부모님 결혼기념일 선물로 예약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며 “직원조차도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직접 타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열차에는 노후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러 온 은퇴 부부는 물론, 가족 단위 여행객,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기자의 부모님을 비롯해 70~80대 고령 승객이 많았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현금이나 물건이 아닌, 오래 기억에 남을 ‘경험’을 선물하는 효도 여행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수요는 높아졌지만 공급은 부족하다. 객실 23~24개 규모의 해랑 열차는 현재 2편성뿐이다. 예약이 워낙 어렵다 보니, 돈을 더 내더라도 3인실을 예약해 부부가 여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행 일정은 3개월 단위로 조금씩 바뀐다. 기자가 이용한 7월 초 코스는 서울역을 출발해 남원·부산·경주·정동진·동해·태백을 둘러본 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1박 2일 코스도 있지만, 충분히 즐기기에는 다소 짧다는 의견이 많다.

하루 일정은 매일 새벽 6시부터 시작돼 다소 빡빡한 편이다. 식사는 기차 안에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정차한 지역의 유명 맛집을 버스를 타고 찾아가 현지 음식으로 맛본다. 관광 명소마다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며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 주요 볼거리를 설명해 준다.

열차 내 식당칸에서는 맥주와 와인, 커피 등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었고, 간식 코너에는 과일과 샌드위치, 과자, 치즈 등이 끊임없이 채워졌다. 열차 안에선 외부 전문가 사회로 난타 공연과 노래방 등 흥겨운 이벤트가 이어져 장시간 이동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여행 첫날 밤에는 해랑플래너들이 직접 진행하는 공연이 열린다. 단순한 관광 안내원을 넘어 사회자와 가수 역할까지 맡으며 승객들과 어울리는 것이 해랑만의 특징이다./이경은 기자

◇91세 자매부터 초등생까지 함께 탄 열차

“집에만 있으니 무료하지 않냐며 조카가 예약해 줬어. 그런데 영감 없이 혼자 자다가 언니랑 둘이 자려니 그것도 불편하네.”

여행 참가자 중 최고령 승객은 91세와 88세의 자매였다. 91세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하지만 이동 거리가 긴 일부 일정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코스를 일행과 함께 소화했다.

침대열차 여행의 진짜 매력은 관광 코스보다 사람에 있을지 모른다. 2박 3일 동안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하다 보니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말을 트게 됐다. 승객들의 사연은 저마다 달랐다.

“뇌졸중으로 10년 넘게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을 돌보고 있어요. 딸이 ‘평생 아버지만 챙겼으니 이번엔 어머니를 위해 다녀오자’고 설득해서 손녀까지 함께 3대가 여행을 왔어요.”

“막내아들이 이번에 제대한 기념으로 같이 왔어요. 제가 아이가 다섯인데, 큰딸이랑 막내아들이랑 남편이랑 넷이 왔어요.”

2~3인실 객실에는 전용 화장실이 마련돼 있지만, 4인실 이용객은 공용 화장실을 써야 한다. 일정 중 매일 사우나 방문 일정이 포함돼 있다./해랑 홈페이지

◇침대열차의 낭만... 뒤에 숨은 불편함

관광용 침대열차라고 해서 호텔 수준의 편안함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객실 침대는 좁은 편이고, 열차가 달릴 때 흔들림과 소음도 적지 않다. 밤에도 발전기 가동음과 진동이 느껴져 잠자리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불편을 느낄 수 있다. 초고속 열차가 아니라서 이동 시간도 꽤 긴 편이다. 4인실 이용객은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열차가 2008년 제작된 만큼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코레일은 현재 차세대 관광용 침대열차 도입을 추진 중이며, 새 열차는 2030년 전후 운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객실과 편의 시설을 대폭 개선한 프리미엄 관광열차를 구상하고 있어 이용 요금은 현재보다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해랑 관계자는 “해외여행은 이미 많이 경험했고 장시간 비행을 부담스러워하는 시니어층이 늘고 있다”며 “기차를 타고 전국을 천천히 둘러보는 색다른 여행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인 대국인 일본에서는 침대열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창밖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고 지역 음식을 맛보며,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여행의 일부로 즐기는 문화가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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