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왜 '디 오픈(The Open)'인가

[골프한국] 매년 7월이면 전 세계 골프 팬들은 잠을 설친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바닷가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를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미국에는 US오픈이 있고 프랑스에는 프랑스오픈이 있으며 호주에는 호주오픈이 있다. 그런데 유독 이 대회만은 '브리티시 오픈'이 아니라 '디 오픈(The Open)'이라고 부른다.
왜일까.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1860년 스코틀랜드 프레스트윅에서 이 대회가 처음 열렸을 때는 세상에 다른 '오픈'이 존재하지 않았다. '열린 대회(The Open)' 하나뿐이었다. 이후 미국, 프랑스,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오픈 대회를 만들었지만, 원조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USGA(미국골프협회)와 함께 세계의 골프 관련 모든 규칙을 총괄하는 영국의 R&A(왕립골프협회) 역시 160년 넘게 공식 명칭을 한 번도 브리티시 오픈'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애초부터 세계 모든 선수에게 문을 여는 대회라는 뜻에서 'The Open'이었던 것이다. 'The'라는 정관사는 우월함을 드러내려는 표현이 아니다. '처음'이라는 역사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마치 성경을 그냥 'The Bible'이라고 부르듯, 골프에도 원전이 있다는 뜻이다. '디 오픈'은 바로 골프의 원형(Archetype)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저 황량한 해안에서 경기를 치를까. 답은 간단하다. 골프는 원래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링크스(Links)'라는 말은 원래 골프 용어가 아니었다. 바다와 농경지 사이에 놓인 모래언덕 지대를 뜻하는 스코틀랜드 고어다. 소금기 때문에 농사도 짓지 못하고 집도 지을 수 없던 버려진 땅, 황무지였다. 사람들은 그곳을 걸으며 돌멩이를 막대기로 치며 놀았고, 그것이 골프가 되었다.
링크스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가 대부분이다. 언덕은 바람이 만들었고, 벙커는 모래가 만들었으며, 페어웨이는 양 떼가 다듬었고, 잔디는 바닷바람이 길렀다. 나무가 거의 없는 이유도 자연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인간보다 바람이 먼저 설계자였다.
그래서 디 오픈은 다른 메이저와 전혀 다른 질문을 선수에게 던진다. "얼마나 멀리 치느냐?"가 아니라 "자연과 어떻게 대화하느냐?"고 묻는다. 같은 홀이라도 아침 바람과 오후 바람이 다르고, 맑은 하늘이 몇 분 뒤 폭우로 바뀐다. 어제의 정답은 오늘의 오답이 된다. 링크스에서는 거리보다 상상력이 중요하고, 스윙보다 판단력이 먼저다. 그래서 R&A는 디 오픈을 "자연이 만들어내는 영원한 시험"이라고 표현한다.
디 오픈을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프로들이 드라이버 대신 롱아이언으로 티샷을 한다. 공을 높이 띄우지 않고 일부러 낮게 굴린다. 그린 앞 수십 미터에서 퍼터를 잡는다. 파를 하고도 환하게 웃는다. 이것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겸손이다. 링크스에서는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디 오픈 우승자는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순응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야말로 골프의 원형이다. 오늘날의 골프장은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잔디를 깎아 인간이 자연을 통제한다. 그러나 링크스는 정반대다. 인간이 자연의 규칙을 배운다. 골프는 원래 자연을 정복하는 운동이 아니라 자연을 읽는 공부였다. 그래서 디 오픈은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대회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바람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고, 모래는 여전히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자연은 누구에게도 특혜를 주지 않는다. 그 앞에서는 세계 랭킹도, 비거리도, 최신 드라이버도 모두 평등하다. 아마 이것이 디 오픈이 지금까지 골프의 성지로 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골프는 바다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년에 단 한 번, 디 오픈은 우리를 그 탄생의 자리로 다시 데려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골프는 스윙을 겨루는 스포츠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겸손할 수 있는지를 겨루는 오래된 철학이라는 사실을.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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