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낸드 최강자 日 키옥시아, AI용 차세대 양산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앞서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2026. 7. 1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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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술적 선제공격 날린 셈… 하이브리드 본딩 신기술 주목”
일본 미에현 욧카이치시에 있는 키옥시아 반도체 공장. 키옥시아 제공 
2001년 세계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 1위 기업 일본 도시바가 삼성전자 문을 두드렸다. "낸드를 합작 개발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이다. 1980년대 낸드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도시바 메모리사업부는 1992년부터 삼성전자에 기술 공유를 해주는 입장이었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로선 일견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최종 답변은 노(no)였다. 이미 낸드 플래시 자체 개발을 준비하고 있던 삼성전자가 '편한 길'을 거부한 것이다. 

삼성전자에 기술 공유한 도시바 메모리사업부 후신

당시 독자 노선을 택한 삼성전자는 2002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1위에 오른 뒤 현재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다. 1980년대 세계 메모리 시장의 80%를 차지하던 일본 반도체산업이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까지 한국에 내준 상징적 장면이다. 한때 1인자였던 도시바 메모리사업부는 오늘날 '키옥시아'로 간판을 바꾸고 낸드플래시 시장 3위에 머무르고 있다.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 2위이자 고대역폭메모리(HBM) 강자인 SK하이닉스가 2018년 공동 컨소시엄에 참여해 키옥시아 지분 약 21%를 간접 확보한 것도 한일 반도체산업의 역전된 처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최근 글로벌 메모리 시장이 인공지능(AI) 산업 팽창에 힘입어 가파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왕년의 낸드플래시 최강자였던 키옥시아가 "반드시 정상을 되찾겠다"고 선언해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초 취임해 키옥시아를 이끄는 오타 히로오 사장이 6월 25일 주주총회에서 "우리는 낸드 발명자이나 지금은 1위가 아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반드시 1위를 되찾겠다"고 발언한 사실이 일본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키옥시아는 내년 초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추진하는 등 사세 확장에 여념이 없다. 

최근 AI 개발 트렌드는 기존 '학습'에서 '추론'과 '장기 기억'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AI 빅테크의 메모리 수요도 기존 HBM을 넘어 D램과 낸드플래시로까지 번지고 있다. 특히 낸드플래시는 AI의 신뢰성을 높이는 '검색 증강 생성(RAG)' 기술에 필요한 데이터 저장에 유리해 각광받고 있다. HBM과 D램에 비해 전력 소모량이 적은 것도 장점이다. 이에 따라 낸드플래시 가격(128GB 제품 기준)은 지난해 말 5.7달러(약 8550원)에서 6월 말 기준 28.8달러(약 4만3200원)로 5배 이상 급등했다. 같은 기간 D램 범용 제품 가격이 9.3달러(약 1만3950원)에서 21달러(약 3만1500원)로 2.3배 오른 것과 비교해도 상승폭이 컸다. 

키옥시아라는 사명은 일본어로 기억(記憶)을 뜻하는 '기오쿠(きおく)'와 가치(價値)의 그리스어 '악시아(Axia)'를 합친 것이다. 그 이름처럼 키옥시아는 메모리 중에서도 일종의 장기 기억 장치라고 할 수 있는 낸드플래시를 개발 및 생산하는 기업이다. 현재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키옥시아 점유율은 14% 정도다. 그동안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대규모 투자로 1위에 오른 삼성전자(점유율 29%)와 2위 SK하이닉스(18%)에 밀리는 상황이다. 마이크론, 샌디스크, 양쯔메모리 등이 각각 약 13% 시장점유율을 나눠 가지며 키옥시아를 맹추격하고 있다. 

키옥시아는 최근 반도체 시장을 강타한 AI 붐에 올라타 호실적을 내고 있다. 키옥시아가 5월 15일 발표한 2025 회계연도 연결 실적을 보면 매출은 전년 대비 37% 증가한 2조3376억 엔(약 21조4700억 원), 영업이익은 93.4% 급증한 8762억 엔(약 8조480억 원)이었다. 올해 전망치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키옥시아의 자체 가이던스에 따르면 1분기(2026년 4~6월) 실적 전망치는 매출 1조7500억 엔(약 16조700억 원), 영업이익 1조3000억 엔(약 11조9400억 원)이었다. 이 같은 전망치가 현실화할 경우 영업이익은 2025 회계연도 4분기(2026년 1∼3월) 대비 117% 급등하고 영업이익률은 75%를 기록하게 된다. 일본 시장조사업계에선 키옥시아의 올해 영업이익이 4조 엔(약 36조67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인 디바이스솔루션 부문(약 400조 원)이나 SK하이닉스(300조 원) 영업이익 전망치에 비해 크진 않지만, 일본 재계에서 영업이익·시가총액 1위를 지켜온 도요타자동차(3조 엔·약 27조4900억 원)에 견주면 상당한 수치다. 이 같은 실적 전망에 힘입어 키옥시아 주가는 올해 상반기 8배 이상 급등해 한때 일본 시가총액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낸드 산업 다음 승부처 고대역폭플래시(HBF)"

최근 키옥시아는 차세대 제품 양산에 돌입해 이목을 끌었다. 키옥시아는 7월 AI 데이터센터용 10세대(BiCS 10)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했다. 키옥시아가 밝힌 10세대 낸드플래시의 스펙은 적층단수 332단, 속도 4.8Gbps(초당 기가비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보다 적층 단수가 높은 400단 이상의 10세대 낸드를 개발하고 있으나 아직 양산에 나섰다는 공식 발표는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신현철 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키옥시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기술 선제공격을 날린 셈"이라며 "키옥시아의 '1위 탈환 선언'에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크게 긴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최근 일본 반도체산업의 투자 유치와 기술 개발 노력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신 교수는 키옥시아가 10세대 낸드플래시 양산에서 두 기업보다 앞선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키옥시아의 10세대 낸드플래시는 적층단수 측면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개발 중인 모델에 비해 낮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먼저 양산을 시작했다는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키옥시아가 이번에 첫 도입한 하이브리드 본딩은 낸드플래시의 연산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신기술이라 주목된다. 키옥시아가 속도, 안정성,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무섭게 추격하고, 낸드플래시 산업의 다음 승부처가 될 고대역폭플래시(HBF)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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