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짜리 캠핑장, 반값에도 안 팔려”...한때 7조 캠핑 제국의 몰락

고유찬 기자 2026. 7. 17. 06: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산업x파일]

“불멍(장작불 보며 멍 때리기) 하러 오라던 캠핑장이 이젠 사장님들 속 타 들어가는 ‘속멍’터가 됐습니다.”

경기도 가평에서 1200평 규모의 글램핑장(침대·싱크대·에어컨 등 편의시설을 갖춘 텐트식 야외 숙소)을 운영하는 김모(69)씨는 요즘 장작 대신 가슴을 태운다. 지난 2021년 4월, 김씨는 퇴직금 4억원에 대출 6억원을 얹어 총 11억5000만원을 들여 이곳을 열었다. 개업 첫 몇 달간은 주말마다 예약이 꽉 차 매달 1000~1500만원씩 통장에 꽂혔다. 대기업 부장 부럽지 않은 제2의 인생인 줄 알았다.

경북의 한 글램핑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반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22년 국제선 운항이 재개된 데 이어 보복 해외여행 붐이 커지자, 야외로 향하던 손님들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김씨는 “주말 28만원 하던 객실 가격을 반값인 14만원으로 낮춰도 예약이 거의 없는 처지”라며 “지난 5월에는 글램핑장을 투자금의 반값도 안 되는 5억원에 매물로 내놓았지만 석 달째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다”고 했다. 이어 “매달 500만원이 넘는 적자가 쌓이는데 대출 원리금 상환 만기까지 겹쳐 한계에 직면했다”고 했다.

실제 국내 캠핑 시장은 2023년을 기점으로 가파른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말에 발간한 ’최신 캠핑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캠핑 이용자 수는 2023년 63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단 1년 만에 546만명으로 13.9%(88만명) 급감했다. 한때 6조9000억원에 육박했던 시장 규모 역시 11.8% 축소되며 6조원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다. 업계에서는 일시적 정체가 아닌, 시장 전반의 본격적인 구조조정 신호로 보고 있다.

경북의 한 글램핑장 전경. 주차장과 야영장 내부가 차량 한 대 없이 텅 비어 있다. /경상북도

◇10억 들인 야영장, 반값에 내놔도 문의 전화 없어

가평의 김씨처럼 전국의 야영장 자영업자들은 퇴로가 막힌 채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해외여행 급증과 고물가로 캠핑 수요가 급감했고 한때 호황을 누리던 야영장 매물들은 매수세가 완전히 실종됐다.

가평·포천 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 일대에만 손절매로 나온 캠핑장 매물이 80개 넘게 쌓여 있지만 보러 오는 발길이 뚝 끊겼다”며 “초기 투자비 10억원 안팎이던 매물을 반값 이하인 4억원대까지 낮춰도 문의 전화 한 통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영장 부지는 토지 용도 변경이나 처분이 까다로워 일반 부동산처럼 팔기도 어렵다”며 “결국 고정비와 대출 이자를 견디지 못해 파산하는 업주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전국 신규 캠핑장 개업 수는 2022년 547개에서 2025년 기준 367개로 32.9% 급감했다. 경영 악화로 문을 닫는 폐업 신고는 매년 60개소 안팎이다. 전국 야영장이 집중된 경기도 가평·포천 일대는 우후죽순 들어섰던 민간 야영장들이 매물로 쏟아지며 매수세가 크게 위축된 상태다.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6년 제5회 킨텍스 캠핑페스타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중고 캠핑카, 수천만원 낮춰도 안 팔려”

캠핑 수요가 줄어들면서 캠핑카와 카라반 시장도 타격을 입고 있다. 제작 업체의 폐업이 중고차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국내에서 제작·판매된 캠핑카 및 카라반은 1525대로 집계됐다. 이는 3년 전인 2022년(6112대) 대비 약 75% 감소한 수치다.

코로나 시기 사업을 확장했던 일부 중소 캠핑카 개조 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사후서비스(AS)가 중단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부품 수급이 어려워 수리가 불가능해진 차량들이 중고 시장에 매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경기 지역의 한 중고차 매매단지 관계자는 “과거 8000만~9000만원 선이던 대형 캠핑카들이 지금은 3000만원 이상 가격을 낮춰도 거래가 어렵다”며 “특히 제조사 폐업으로 AS가 불가능해진 차량은 수리비 부담 때문에 감가 폭이 더 커져 매수인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10일 서울 강남구 세텍에서 열린 2026 국제아웃도어캠핑 & 레포츠페스티벌에서 방문객들이 캠핑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수요 급감에 중국산 초저가 공습까지… 토종 브랜드 ‘이중고’

캠핑 인구의 감소는 캠핑용품 제조업계에도 직격탄이 됐다. 실제 국내 캠핑 가구의 연간 용품 평균 구매액은 2022년 113만4000원에서 2024년 기준 78만6000원으로 2년 만에 30.7% 급감했다. 수요 위축 속에 토종 주요 브랜드들의 실적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계 이커머스의 초저가 공습까지 더해지며 국내 업체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품질 불량 리스크가 있더라도 가격이 국산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에 불과해, 가성비를 우선하는 소비자들이 직구로 대거 눈을 돌린 탓이다.

경기 하남시에서 캠핑용품 전문 매장을 운영하는 이모(42)씨는 “최근 손님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 실물을 확인한 뒤, 온라인 초저가 플랫폼을 통해 저렴한 중국산 유사 제품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성비를 우선하는 소비 경향이 강해지면서 대리점들의 매출 타격이 크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