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패니메이션 따라가기보다는 韓 고유성 살려야 K애니 성공”
50주년 앞두고 ‘스튜디오 지브리展’
정동훈 대표 “지브리서 배운건 명확
모방은 의미 없어… 재미 창출 고민”

1977년 한국에선 최초의 애니메이션 기업이 탄생했다. 애니메이터 출신인 설립자는 일본 회사들과 손잡고 ‘은하철도 999’ 등을 하청 제작하며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문을 열었다. 이후 1986년,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브리’와 인연을 맺으며 이들 작품을 국내에 수입·배급하는 유일한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반세기 가까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 힘써 온 ‘대원미디어’의 역사다.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대원미디어가 11일 ‘스튜디오 지브리展 in Jeju’를 개최했다. 제주 동화마을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일본 본토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선보이는 지브리의 체험형 공간이다.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 ‘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지브리 IP를 활용한 다양한 설치물을 볼 수 있다. 15일 서울 용산구 대원미디어 본사에서 만난 정동훈 대표는 “지브리는 저희에게 매우 상징적인 회사”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튜디오 지브리는 판권 활용은 물론이고 마케팅과 이미지 사용에 무척 엄격하다. 그런 지브리가 영화나 전시, 굿즈 등 사업 전반을 한 회사와 전개하는 건 세계에서 대원미디어가 유일하다. 정 대표는 “일본 대중문화 전면 개방 전에도 회장님(정욱 설립자)께서 지브리를 찾아가 아티스트로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설득해 왔다”며 “어려운 시기에도 꾸준히 지브리의 가치와 철학을 존중해 왔던 게 신뢰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일본 기업들과 협업하며 배운 건 명확했다. 우선 일본은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굿즈 등 상품화에 능숙했다. 대원미디어는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국내 시장에 접목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 다른 교훈은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일본 애니메이션)을 모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세계적인 아성을 구축한 일본을 따라가기보다는 한국만의 고유성을 부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정 대표도 “K가 붙은 다른 문화 산업은 잘되는데, 애니메이션만 아직 미진한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반복적으로 지적한 한계는 ‘시장 규모’다. 드라마에 비해 애니메이션 업계는 활용할 IP도, 영상화로 이어질 시스템도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정 대표는 “성공한 장르에 인력과 자본이 쏠리다 보니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며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성공 사례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대원미디어가 오리지널 IP에 집중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지난해 10월 자체 IP인 ‘아머사우루스’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북미에 공개했다. 2020년 100% 국내 자본과 기술로 완성한 공룡 특수촬영물 ‘아머드 사우루스’를 리부트한 작품이다. 이 밖에도 무협소설 ‘묵향’의 웹툰화, 캐릭터 ‘무직타이거’ 등 밸류체인 전반에서 IP를 육성하고 있다.
“‘읽다, 보다, 듣다, 경험하다’ 같은 재미의 기본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를 즐기는 방식은 바뀔 수 있죠. 어떤 식으로 재미를 창출하고 세상을 즐겁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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